‘사기’를 쓴 사마천의 아버지 이름은 담(談)이다. 그래서 바른 사실로 역사를 기록하는 그조차도 자신이 편찬한 사기에 장맹담(張孟談)을 장맹동(張孟同)으로, 조담(趙談)을 조동(趙同)으로 이름을 바꾸어 놓았다.
우리나라 대구의 지명이 대구(大丘)에서 대구(大邱)로 바뀐 것도 먼저 쓰던 언덕 구(丘)자가 공자의 이름이기 때문에, 성현의 이름을 지명으로 감히 쓸 수...
예를 들면, 윤내현은 ‘고조선 연구’에서 사마천의 ‘사기’ 등 중국 사료를 통해 낙랑이 지금의 요서 지역에 있었다고 논증했다. 세 명의 저자들이 한문 원전은 고사하고 윤내현의 이 책을 정독했는지 묻고 싶다. 낙랑군이 요서 지역에 있었다는 많은 중국 기록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다른 1차 사료로 비판하면 될 일이다. 그런 1차 사료가 없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당시 연나라의 위만이 경계인 패수를 건너 고조선의 서쪽 변경에 망명해 왔다가 반란을 일으켜 위만조선을 세웠는데, 이 위만의 조선에 대해 기록한 역사서가 사마천의 ‘사기’ 중 ‘조선열전’이다. 이 ‘조선열전’을 통해 패수의 위치를 확인해 보면, 학계에서 패수를 압록강이나 청천강 등 한반도의 강이라는 주장이 명백한 잘못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즉...
사마천 사기의 화식열전(貨殖列傳)에는 부에 관한 명언이 많다. “부는 사람의 성정으로, 배우지 않아도 모두 바라는 것이다.”[富者 人之情性 所不學而俱欲者也] 승진 합격을 위한 노력이든 문서 위조, 사기 강간 등 각종 범죄든 일체의 인간 행동의 동기는 재물을 얻으려는 것이다.
그래서 “무릇 일반 서민이라면 상대의 부가 열 배면 졸아들고 백 배면 두려워하고 천...
사마천의 사기 상군(商君)열전에 나온다. “돌이켜 자기 마음속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을 총이라 하고 마음속으로 성찰할 수 있는 것을 명이라 하며 자신을 이기는 것을 강이라 합니다. 순 임금도 ‘스스로 자신을 낮추면 더욱더 높아진다’고 했습니다.”[反廳之謂聰 內視之謂明 自勝之謂强 虞舜有言曰 自卑也尙矣]
후한서 왕윤(王允)전에는 “무릇 내시반청이면 힘과...
출전은 사마천의 ‘사기’ 혹리열전(酷吏列傳). 중국 한 무제 때 전쟁으로 살기가 힘들어진 농민들이 여러 곳에서 봉기했다. 조정에서는 진압군을 보냈지만 반란군은 '대규모로 험한 산천을 끼고 고을에 자리 잡고 굳게 막아 지키는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하여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復聚黨而阻山川者 往往而郡居無可奈何].'
이 글에서 보다시피 원래는 무가내하...
사마천의 사기 위기무안후열전(魏其武安侯列傳)에 나온다. 한무제 때 외척 위기후(魏其侯) 두영(竇嬰)의 편을 들던 장군 관부(灌夫)가 실수를 저지르자 두영의 정적 무안후(武安侯) 전분(田蚡)은 그를 옥에 가두고 여러 죄를 씌워 사형에 처하려 했다.
이때 두영이 무제에게 상소를 올려 관부의 처리가 조신들의 공론에 부쳐졌다. 어사대부 한안국(韓安國)이 천자의 재단...
사마천의 ‘사기’ 세가(世家)에 나오는 범려(范蠡)는 최고의 상인이었다. 월왕(越王) 구천(句踐)을 도와 오왕(吳王) 부차(夫差)를 무찌른 그는 구천과는 환난은 함께 할 수 있어도 안락은 함께 누릴 수 없다며 떠나버렸다. 이른바 장경오훼(長頸烏喙)의 고사다. 그 뒤 도(陶)라는 곳에 가서 도주공(陶朱公)이라고 칭하며 농사와 목축으로 물건을 사두었다가 때를 기다려...
사마천의 사기열전에 나오는 원문은 ‘家居徒四壁立’이다. 徒는 한갓, 헛되이, 보람 없이라는 뜻이다. 도난인의(徒亂人意)라고 하면 ‘공연히 남의 마음만 뒤숭숭하게 만든다’는 말이다.
“문장은 서한(西漢)의 두 사마(司馬)요, 경제는 난양(南陽)의 와룡(臥龍)이다”라는 말이 있다. 문장이라면 한무제 때의 문인이었던 사마상여와 사마천(司馬遷)을 꼽고 경세제민...
아버지가 참수됐는데도 대업을 이룬 우는 궁형(宮刑)의 치욕을 무릅쓰고 대를 이어 사기(史記)를 완성한 사마천을 연상케 한다.
순은 재위 33년이 되어 나이 백 살을 바라볼 때, 우를 설득해 임금 자리를 물려주었다. 이때 고요(皐陶)가 순을 칭송한 말이 인상 깊다. “임금의 덕에 허물이 없고 아랫사람을 대함에 대범하고 백성을 관대하게 다스리며 벌을 주되 자손에게...
子毋讀書遊說 安得此辱乎 張儀謂其妻曰 視吾舌尙在不 其妻笑曰 舌在也 儀曰 足矣] ‘내 혀가 아직 있다’[吾舌尙在], 사마천 사기의 장의열전에 나온다.
‘혀가 아직 있다’는 말은 치망설존(齒亡舌存), 치폐설존(齒弊舌存)에도 나온다. 한(漢)의 유향(劉向)이 지은 ‘설원(說苑)’의 경신(敬愼) 편에 노자(老子)와 상종(常樅)의 고사가 실려 있다. 樅은 ‘전나무 종’자다....
비어(蜚語)는 사마천의 사기 ‘위기무안후열전(魏其武安侯列傳)’에 나온다. 위기후 두영(竇嬰)과 무안후 전분(田蚡)은 모두 한(漢) 황실의 외척으로, 둘 다 오초(吳楚)의 반란군을 진압하는 공을 세웠다. 두영은 조정의 실세였고 전분은 그에 아부하는 신세였다. 그러다가 전분의 누이가 황후가 되면서 상황이 반전돼 갈등이 생기고 서로 대립하다가 두영이 옥에 갇힌다....
삼촌지설은 사마천의 사기 ‘평원군(平原君)열전’에서 유래된 말이다. 중국 전국시대에 진(秦)이 조(趙)를 공격해오자 평원군 조승(趙勝)은 원병을 얻으려고 초(楚)에 달려갔다. 이때 평소엔 존재감도 없던 식객 모수(毛遂)가 스스로 나서 자기를 데려가라고 하더니 초 효열왕을 거침없이 설득했다. 언변에 탄복한 초 효열왕은 원병을 내주었다. 평원군은 “모 선생의 세...
다음은 사마천의 사기 골계열전(滑稽列傳)에 나오는 문장이다. “제나라 위왕의 시대에 왕이 수수께끼를 좋아했다. 왕은 음탕하게 놀면서 밤늦게까지 술 마시기를 즐겼다.”[齊威王之時 喜隱 好爲淫樂長夜之飮] 그래서 순우곤이 수수께끼로 넌지시 왕에게 말했다. “나라에 큰 새가 있는데 궁전 뜰에 살고 있습니다. 3년간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았습니다. 왕께서는 이...
싸워 함께 다치고 죽는다는 점에서는 양패구상(兩敗俱傷)과 뜻이 같고, 둘이 싸우는 바람에 제3자가 이익을 본다는 점에서는 어부지리(漁父之利) 종중어리(從中漁利) 좌수어리(坐收漁利)와 같다.
전국책(戰國策)은 중국 전한(前漢)의 학자 유향(劉向· BC 79?~BC 8?)이 전국시대(BC 403~BC 221년) 전략가들의 책략과 일화를 모은 책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버금갈 만큼 고사가 많다.
한 무제와 동시대 인물인 사마천의 사기(史紀)에 ‘낙랑군에는 수성현이 있고 갈석산이 있고, 만리장성의 기점이다’라고 명백히 기록돼 있다. 중국 지도에서도 바로 찾을 수 있다. 하북성 현지 기록은 이덕일, 심백강 등 다수 학자들이 입증했다. 그런데 이병도를 계승한 현 역사학계에서 주장하는 황해도 수안현은 이 세 가지 조건 중 한 가지도 일치하는 게 없다. 당대...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춘추시대 말기, 나중에 의성(醫聖)으로 불린 편작(扁鵲)이 괵(虢)이라는 나라에 갔을 때다. 태자가 병으로 숨졌다는 소식을 듣고 편작은 시의를 찾아가 무슨 병인지, 지금 어떤지 물었다. 환자의 상태를 파악한 그는 “내가 살려 보겠다”고 했다. 시의는 “어린애도 그런 말은 곧이듣지 않을 것”이라고 무시했다.
편작은 이렇게 말했다....
두주불사는 사마천의 ‘사기’ 항우본기(項羽本紀)에서 유래된 말이다. 진(秦)나라 말기, 초왕(楚王) 항우와 패공(沛公) 유방(劉邦)은 수도 함양(咸陽)을 향해 각기 진격했다. 함양을 선점한 사람이 관중의 왕이 되기로 했는데, 먼저 입성한 것은 유방이었다. 그러나 그는 군사력이 항우에 미치지 못하자 재물과 궁궐을 그대로 둔 채 패상(覇上)으로 물러나 진을 쳤다. 유방에...
따라서 사마천도 이 제도가 실패한 것으로 평가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대목은 다음과 같다. 즉, 물가의 등락 내지는 지역별 물가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직접 개입한 결과, 정부의 수입은 크게 늘었지만 가격은 더욱 비싸졌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정부가 물가를 관리하기 위해 직접 유통업에 뛰어들면 정부가 사업을 독점하게 되고, 그러면 독점에...
사마천의 사기에는 아방궁이 동서 700m, 남북 120m에 이르는 2층 건물로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적혀 있다. BC 207년 항우가 아방궁에 불을 질렀을 때 3개월 동안이나 탔다고 한다.
중국은 산시[山西]성 시안[西安] 서쪽 아방촌에 당시를 재현한 건물을 세워 관광객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그러나 중국 고고학자들은 2007년에 “5년 동안 발굴 조사했으나 아방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