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온 세상 덮는 흰 눈을 기다리며

입력 2017-01-12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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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에는 눈이 내려야 제맛이다. 깨끗하게 온 세상을 덮는 눈은 예로부터 시인들의 또 하나의 중요한 테마였다.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 문학에 많은 힘을 쏟은 동진(東晋)의 진군(陳郡) 사씨(謝氏) 가문의 일화가 있다.

당시 동진의 가장 유명한 재상이었던 사안(謝安)이 조카들과 함께 펄펄 내리는 눈을 보고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를 논한 내용이, 유명 인사들의 대화만 모아놓은 책인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言語)편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눈이 내리는 날, 사안은 자제들과 문장의 의의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잠시 후 눈이 더욱 크게 내리자 공(公)은 흔연히 “백설이 펄펄 날리는 게 무엇과 같은가?”라고 물었다. 이에 형인 사혁(謝奕)의 아들 사랑(謝朗)이 “소금을 공중에 뿌린다[撒鹽空中]고 하면 비슷하지 않을까요?”라고 대답했다. 이에 비해 형의 딸인 사도온(謝道韞)은 “버들 솜이 바람에 흩날린다[柳絮因風起]는 표현만 못합니다”라고 했다. 공이 크게 웃으며 “과연 형님의 여식이다!”라고 즐거워했다.

당시에 진군 사씨 가문은 이러한 문학 집회를 자주 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오의지유(烏衣之遊)’라 불렸던 당시 집회에서 마침 눈이 내리자, 가장인 사안이 자연스럽게 영설(詠雪)을 주제로 제의하고 자유로운 토론을 벌인 것인데, 이를 통해 가족 구성원 간에 상호 절차탁마(切磋琢磨)할 수 있는 기회를 유도한 것이다.

사씨 가문의 이러한 문학에 기울인 깊은 노력의 결과가 결국 뒷날 사혼(謝混)이라는 뛰어난 시인에 이어 마침내 사령운(謝靈運 385~433)이라는 대시인을 탄생시키게 된다. 사령운에게는 사혜련(謝惠連 397~433)이라는 요절(夭折)한 종제(從弟)가 있었는데, 사혜련이 남긴 대표작이 바로 눈을 노래한 설부(雪賦)다.

중국 역사상 눈을 노래한 문학작품 중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 글은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쳐 잔설부(殘雪賦), 의고설부(擬古雪賦), 신설부(新雪賦) 등의 작품으로 이어진다. 사혜련의 글 중에서 밤새 하얗게 내린 눈과, 이 눈이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이는 모습을 표현한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흰눈이 어찌나 희고 고운지) 백학이 깨끗함[鮮]을 빼앗기고, 흰 꿩이 흰 빛[素]을 잃었으며, 새하얀 비단이 그 예쁨[冶]을 부끄러워하니, 미인의 옥 같은 얼굴도 그 아름다움[姱]을 가리고 싶을 지경입니다. 쌓인 눈이 녹지 않은 채 아침 햇살이 그 위를 비추면, 그 눈부신 찬란함이 마치 촉룡(燭龍)이 입에 문 여의주로 곤륜산(崑崙山)을 비추는 것 같습니다.[皓鶴奪鮮 白鷳失素 紈袖慚冶 玉顏掩姱若 乃積素未虧 白日朝鮮 爛兮若燭龍銜耀照崑山]

우리나라의 한시 가운데 영설(詠雪)에 관한 시로는 조선시대 최고의 천재 여성 시인 이옥봉(李玉峰)의 시가 있다. ‘영설’이라는 제목의 이 시는 정작 내용 중에 ‘눈[雪]’이라는 글자가 한 자도 나오지 않지만 다음과 같이 훌륭하게 눈 내리는 광경을 표현하고 있다.

雲深山徑飄如席 구름 깊은 산길에선 흩날리는 것이 마치 돗자리에 휘둘리는 듯하고,

風捲長空聚若塵 바람이 말아 올린 허공에선 휘몰리는 것이 마치 무게 없는 먼지인 듯

渚白非沙欺落雁 하얀 물가엔 모래로 속은 기러기 내려앉고

窓明忽曉㤼愁人 창문 환해지니 벌써 (임 떠날) 새벽인가 근심스러운 마음 두려움으로 바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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