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전한 프로이센은 철혈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 주도하에 독일제국(빌헬름 1세) 통일의 위업을 달성했다. 프랑스 제3공화국 위정자들은 패전의 원인을 규명하고 해결책을 찾으라는 비등한 여론에 밀려 희생양을 내부의 적에서 찾고자 했다.
군부의 모든 장교에 대한 신원조사와 사상 검증을 끈질기게 진행했다. 더불어 나날이 강성해지는 독일제국의 위협을 피부로...
하이델베르크대, 베를린대에서 교수를 지낸 그는 프로이센을 지도자로 하는 독일의 통일(소독일주의)을 주장했다. 국민 자유당에 속한 그는 군국주의·애국주의를 제창하고 강경외교를 주장했다. 식민지 획득을 주장해 비스마르크 정책에 공헌하였으며 독일 발전에 정신적 지도자 역할을 했다. ‘19세기 독일 역사’는 그의 대표 명저다. 오늘은 그가 출생한 날. 1834~1896....
프로이센 왕국의 프리드리히 2세(1712~1786)는 종교에 대한 관용 정책을 펼치고, 재판과정에 고문을 근절한 인권 계몽 군주였다. 정치도 잘 펼쳐 합리적인 국가경영으로 프로이센을 최강의 군사대국으로 성장시켰다. 그 공적을 기려 후세 독일인들은 지금도 그를 ‘프리드리히 대왕’ 혹은 ‘영광의 프리드리히’라고 부른다.
그런 프리드리히 왕도 참지 못하는 부분이...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때 ‘런던 스탠더드’지의 특파원으로 활약한 저널리스트다. ‘내셔널 리뷰’지 발간부터 편집에 참여해 주필을 지냈다. 20여 권의 시집을 낸 그는 산문 작품집 ‘사랑하는 나의 정원’으로 더 알려졌다. 오늘은 그가 태어난 날. 1835~1913.
☆ 고사성어 / 지어지선(止於至善)
‘지극한 선(善)에 머물러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늘의 이치에...
18세기 말 러시아와 프로이센과 같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여 나라를 잃어버렸던 폴란드에서 가톨릭은 민족주의와 정체성의 상징이었다. 소련의 공산주의 압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동성애가 가족을 약화시켜 국가를 혼란에 빠트린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간의 동성애자, 광범위한 의미에서 성소수자 권리 보장은 아주 격차가 크다....
영국에 포도주를 수출하던 포르투갈이 가장 먼저 대륙봉쇄령에 저항한 데 이어 네덜란드와 프로이센 그리고 러시아가 공공연하게 대륙봉쇄령을 어김으로써 세계 무역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때 가장 이득을 본 나라가 미국이었다.
미국은 독립전쟁 때 자신을 지원해준 프랑스와 원래 돈독한 관계였다. 대서양에 면한 프랑스 남부의 보르도에 도착한 미국...
독일 동쪽 베를린은 프로이센의 최대 위협이었던 러시아를 막는 곳이었고, 신성로마제국의 중심이었던 오스트리아 빈은 오스만투르크의 침공에 대항하는 거점이었다. 중국 베이징은 북방 민족과 대치한 전방 교두보였으며, 일본 도쿄는 서양 세력이 밀려드는 태평양의 정면에 자리한다.…조선의 도읍 서울은 풍수론에 의해 정해졌다. 그럼에도 가장 올바른 수도의...
나폴레옹 전쟁에서 패한 프로이센이 위기에 처하자 ‘독일 국민에게 고함’ 강연을 했다. 종군 간호사였던 아내가 발진티푸스에 걸리자, 정성을 다한 간호 덕에 아내는 회복했지만, 자신이 감염되어 생을 마감했다. 그는 오늘 태어났다. 1762~1814.
☆ 고사성어 / 후목분장(朽木糞牆)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고 썩은 벽은 칠할 수 없다’는 뜻. 지기(志氣)가 썩은...
이탈리아 출신인 드라기가 ECB 총재에 취임한 8년 전, 빌트는 “토박이 프로이센 사람 같다”고 높이 평가하고, 독일 북부 프로이센풍의 투구를 씌운 드라기 사진을 게재했다.
하지만 불과 1년 후, 그리스발 유럽 재정위기 전 “유로화가 붕괴 직전에 내몰리면 유로존의 생존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할 것”이라며 대규모 국채 매입을 단행했다.
이에 대해...
주로 프로이센 시대의 베를린을 무대로 신분의식에 의한 인간관계를 풍자적이고 심리분석적 필치로 묘사한 ‘미로(迷路)’, ‘에피 브리스트’ 등의 작품을 남겼다. 그는 오늘 숨졌다. 1819~1898.
☆ 고사성어 / 조송지근(照松之勤)
등불을 켤 돈이 없어서 관솔불(송진이 많이 엉긴 소나무 가지나 옹이에 붙인 불)에 글을 읽는 일을 뜻한다. 한마디로 면학(勉學)의...
☆ 비스마르크 명언
“현재의 큰 문제는 언론이나 다수결에 의해서가 아니라, 철과 피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가 ‘철의 수상’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프로이센 총리 취임 연설에서 이른바 ‘철혈정책(鐵血政策)’의 의지를 밝히며 한 말. 그는 군비 확장을 강행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최초로 독일 통일을 이룩했다. 초대 총리가 된 그는 20여 년간 재임하며...
1815년 벨기에 남동부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의 프랑스군과 영국, 프로이센 연합군의 결전이 벌어졌다. 유대계 금융재벌 로스차일드 가문은 이 전투에 정보원을 비밀리에 보냈고, 반프랑스 동맹이 이겼다는 소식을 가장 먼저 접했다. 창업자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 아들 네이선 로스차일드는 런던 주식시장에 나타나 처참한 표정을 지었다. 이를 본 주식 투자자들은 영국이...
이 교수는 일찍이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부터 온 국민의 존경을 받은 국가 정치인 헬무트 슈미트까지 이 책에서 위안과 가르침을 받았다며 철학이 없는 대통령은 실패해 단지 통치자로 남을 뿐이라고 경고한다.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는 “가사노동 문제 해결이 사회 발전의 답”이라며 애너벨 크랩의 ‘아내 가뭄’을 추천했다. 서 교수는 “여성 관련...
이미 한전기술은 2015년에 독일의 프로이센일렉트라(Preussen Elektra GmbH : PEL)사와 원전해체 기술전수 협약을 체결하고 관련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연구용 원자로인 트리가 마크와 우라늄 변환시설 해체사업 등에 참여함으로써 원전 해체기술의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이번 원전해체사업실의 신설은 그동안 연구개발(R&D)에 치중했던...
엄청난 분량의 논문을 썼지만, 그의 저술 중에 가장 많이 읽힌 책은 프로이센의 샤롯데 공주에게 보낸 200여 개의 서신을 모은 책이다. 프레더릭 왕의 요청으로 수학과 물리학을 가르치게 된 독일 공주에게 교육을 위해 보낸 서신인데, 보통 사람의 눈높이로 수학적 통찰을 보여준다는 평을 받아 유명해졌다. 위대한 과학자가 대중적 글에도 능했던 사례랄까.
널리...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 종군한 후에는 작풍은 점차 밝아졌다. 1874년 제1회 전람회에는 ‘판자 관람석’(1874)을 출품했고, 제2회와 제3회에도 참가해 한동안 인상파 그룹의 일원으로 더욱더 눈부시게 빛나는 색채표현을 전개했다. 대작 ‘물랭 드 라 갈레트’(1876)와 ‘샤토에서 뱃놀이를 하는 사람들’(1879)이 인상파시대의 대표작품이다.
그러다가 전환점이...
△1918년 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독일 제국’(프로이센)이 붕괴되고 ‘바이마르 공화국’ 선포 △1923년 히틀러가 뮌헨에서 바이에른 정부를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킨 날(성공하지 못했으나 그의 이름이 독일 전역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고, 감옥에 갇힌 히틀러는 ‘나의 투쟁’(Mein Kampf)을 기술. 1933년 권력을 잡은 히틀러는 11월 9일을 기념일로 제정했다)...
그녀는 프랑스와 앙숙인 오스트리아 출신 공주였으나 프로이센을 견제하려는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루이 16세와 정략결혼을 한다. 출신 배경이 다른 그녀는 늘 외로워했다. 사교에 빠진 것도 그 때문이었으리라. 당연히 경계하는 세력이 있었을 것이고, 그들은 악의적인 소문을 퍼트린다. 그녀가 혼외정사를 하고 아들을 성추행했다고 하면서 말이다.
사실...
나폴레옹을 타도하기 위해 프로이센과 연합했던 영국이 이제는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프랑스와 손을 맞잡은 것이다. 이후 영국과 프랑스는 EU와 NATO의 회원국으로, 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국제무대에서 공조한다.
현재 영국에는 약 35만 명의 프랑스인들이 거주하고 있고, 프랑스에는 약 40만 명의 영국인들이 살고 있다. 영국해협은 세계에서...
정보를 이용한 그의 영업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당시 프랑스 정부에 자금 원조를 하는 데까지 뻗쳤다. 제1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영국과 프랑스 정부를 고객으로 끌어들이며 오늘날 세계 최고 국제금융그룹으로 키워냈다.
미국금융을 떠받치던 그가 1913년 이탈리아 여행 중 갑자기 사망하자 급해진 미국은 그해 말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RB)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