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성명을 통해 “당시 조선은 일본 점령지가 아니고 조선 여인은 일본 국민이다”라며 “위안소는 납치, 강간 등 전쟁범죄 방지를 위해 설치, 운영된 합법적 매춘 공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위안부’는)주인과 계약 체결한 후 영업허가를 얻어 돈을 번 직업여성”이라며 “당시 일본군 위안부는 17세 이상이어야만 허가를 받을 수 있어 13~15세 소녀는...
로이터 통신은 “징용과 일본군 위안소에 강제 동원된 여성들과 관련한 의견충돌은 (미국의) 두 동맹국 간 관계를 오랜 기간 괴롭혔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양국 관계 회복을 추진해왔다”며 “이번 제안은 일본 측 환영을 받았지만, 한국에서는 정부가 일본에 굴복했다는 피해자와 야권의 반발에 부딪혔다”고 전했다.
또한, “미국의 동북아시아 동맹국인 두 나라는...
2차대전 중 일본군에 의해 아시아와 유럽 여성들이 일본군 ’위안부’제도로 인해 피해를 본 사실과 함께 독일군 역시 부대 내에 군인들을 위한 위안소(Wehrmacht Bordelle)를 운영한 점이 명시됐다.
한정화 코리아협의회 대표는 “이번 소녀상은 정의기억연대나 코리아협의회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독일의 대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전시 및 여성에 대한 일상적 성폭력...
위안부 문제 기술 축소…문부과학성, 수정 지시하기도
일본군 위안부 동원 강제성이나 위안소 운영 과정에서 벌어진 인권침해 및 폭력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고 모호하게 기술한 교과서들도 많았다.
다이이치가쿠슈샤는 역사 교과서 2종이 검정에 통과했는데 한반도 출신 여성을 위안부로 강제 동원한 것에 관해 "많은 여성이 위안부로 전지(戰地)에 보내졌다...
태평양 전쟁 중 일본군 위안소에서 어린 소녀들에게 가해진 성폭행이 합법적 계약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윈터 교수는 “매우 문제가 있다”면서 “열 살인 오사키가 정말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있었겠는가. 이런 믿기 어려운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논문에 단 하나도 없다”라고 비판했다.
오사키가 나이가 든 뒤 인터뷰했다는 야마자키라는...
당시 일본군이나 정부가 선정한 업자들이 일본 여성들을 작부라는 명목으로 계약하고 위안소에 도착하면 매춘만을 강요당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폭력이 동원됐다는 증언도 많다. 소위 속여서 연행해 사람의 신체를 구속하는 유괴행위가 일본이나 한국에서 자행된 것이다.
여기서 일본군은 왜 자국 여성들에게 창기 계약 대신 작부 계약을 맺게 했느냐는 의문이 생길...
또는 위안소와 체결한 실제 계약을 단 한 건도 찾아보지 않았다고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또 “어떻게 읽지도 않은 계약에 대해 극히 강한 표현을 사용하며 주장을 만들어냈는지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특히 논문에는 미얀마의 한국인 위안부 일부가 6개월에서 1년간 계약을 맺고 일했다는 주장과 함께 일본어로 된 1937년 계약서가 인용됐는데, 이 시기는 일본군이...
매춘부들이 일본군을 따라다녔기 때문에 강제동원할 필요가 없었다고 써놨다.
이 논문을 본 미국 학자들은 램지어 교수가 역사적 진실을 외면했다고 지적했다.
더든 코네티컷대 역사학과 교수는 SBS와의 인터뷰에서 “램지어 교수는 완벽하게 틀렸다”며 “많은 역사학자는 한국인 피해자들이 납치돼 위안소로 끌려갔다는 충분한 증거를 발견했다”고 비판했다....
정의연에 따르면 1923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난 이막달 할머니는 17세였던 1940년께 '좋은 곳에 취직시켜 주겠다'며 동행을 강요하는 일본인 2명을 따라갔다가 대만의 위안소에서 일본군 성노예로 극심한 피해를 봤다.
해방 후 부산으로 귀국한 이 할머니는 2005년 정부에 피해자로 정식 신고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시위에 참여하고 외국에서...
여성가족부는 일본군의 위안부 동원과 위안소 운영 실태를 보여주는 위안부 관련 명부의 최신 연구 성과를 한 데 모은 연구서인 ‘덧칠된 기록에서 찾은 이름들’을 발간했다고 27일 밝혔다.
여가부는 “명부는 기존에 발굴된 자료들과 대조하면서 일본군부 등에 의해 여성들이 일본군 위안부에 구조적으로 동원된 방식을 밝힐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며 “특히...
이어 "여가부는 앞으로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보다 섬세하게 보살펴드릴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고 이귀녀 할머니는 1943년 17세 때 중국에 가서 일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러허(열하)성 소재 위안소로 끌려갔다.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고초를 겪었다. 해방 이후에도 중국에서 거주하다가 201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귀녀 할머니가 14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92세.
이귀녀 할머니는 뇌경색 등 건강악화로 2016년부터 용인서울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이날 오전 8시께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3년 중국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중국에 갔다가 위안소에서 고초를 겪었다.
해방 후 중국에서 생활하다가...
소재 위안소에서 고초를 겪었다. 할머니는 1945년 해방이 된 이후에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중국에서 거주하다가, 2005년 여성가족부 지원으로 국적을 회복하고 귀국하여 나눔의 집에서 생활해 왔다.
진 장관은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조문할 예정이다. 여가부가 장례비용을 지원한다.
이날 김 할머니의 별세로 올해 6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20세 때 공장에 취직할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중국 헤이룽장성(흑룡강성) '석문자' 위안소에 끌려가 피해를 본 김순옥 할머니는 해방 이후 생계를 위해 중국인과 혼인해 중국 둥닝(동녕)에 정착했다.
2005년 여성부, 한국정신대연구소, 나눔의 집의 도움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하고 나눔의 집에 들어와 생활했다.
김순옥 할머니는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해...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1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득 할머니 별세 소식에 깊은 애도의 뜻을 전했다.
정 장관은 "올해 들어 벌써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다섯 분을 떠나보내게 돼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고인이 가시는 길에 최대한의 예의를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10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김 할머니는 1937년 고향 통영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득 할머니가 별세했다. 향년 101세.
1일 여성가족부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따르면 김 할머니는 이날 새벽 4시께 건강상태가 악화돼 숨을 거뒀다.
김 할머니의 별세로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27명으로 줄었다.
1918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22세 되던 해 공장에 취직시켜주겠다는 말에 속아 필리핀 소재 위안소로...
이어 "임 할머니는 13세 무렵 공장에 데려다주겠다는 말에 속아 일본군에 강제 동원돼 만주에서 끔찍한 성노예 생활을 하셨다"라며 "해방 후 남한으로 돌아왔으나 위안소에서의 피해로 얻은 몸과 마음의 병으로 고통스러운 생활을 하셨다"고 설명했다.
임 할머니는 올해 들어 별세한 첫 위안부 피해자로, 이제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는...
일본군은 민간인의 빨간 기와집을 빼앗아 임시로 방 7개를 만들고 위안소로 사용했다. ‘아키코’가 된 배봉기는 그곳에서 ‘위안부’가 되어야 했다.
연합군의 공습이 점점 심해지는가 싶더니 1945년 3월 25일 위안소가 폭격 당했다. 탈출 과정에서 ‘위안부’ 3명이 사망했다. 배봉기 등은 일본군 제3전투부대와 함께 계곡으로 피신했다. 전쟁을 견디는 동안...
김 할머니는 2007년 2월 마이크 혼다 미국 연방하원이 주체한 미국 의회의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에서 “해방 후 38일을 걸어 조국에 돌아왔다”며 “위안소에서 하루 40여 명을 상대했고 죽지 않을 만큼 맞았다”고 증언했다.
전쟁 뒤에는 함경북도 성진으로 가 두만강을 넘었다. 죽을 고비 끝에 고향에 돌아와 위안소로 끌려가기 전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와...
아울러 서울시와 서울대 연구팀은 영상을 촬영한 페이 병장이 일본군 위안소로 활용했던 건물을 촬영한 영상도 함꼐 공개했다. 이 건물은 용릉에 위치한 그랜드 호텔이라 불리던 곳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런 불행한 역사도 기록하고 기억해야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 만큼 앞으로도 서울시가 할 수 있는 모든 역량과 자원을 집중해 역사를 기억하고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