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칠레의 아옌데 사회주의 정권의 붕괴와 피노체트 군부정권의 등장 배경에 미국의 물밑 작업이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군사적 개입이나 침공도 서슴지 않았다. 1961년 쿠바에서 반공 게릴라 세력의 정권 침탈 작전을 지원하는가 하면, 1989년에는 파나마를 침공해 노리에가 정권을 직접 붕괴시키기도 했다.
1991년 소련의 붕괴로 인한 냉전 종식으로...
22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좌파 성향의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은 앞서 20일 TV 연설에서 자국의 첫 사회주의자 대통령인 살바도르 아옌데 전 정권 시절인 1971년의 구리 국유화를 언급하면서 “리튬 생산을 담당하는 국유기업을 설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 하반기 국유기업을 설립하기 위한 법안을 의회에 제출할 것이라는...
최연소 대통령으로, 1970년대 사상 최초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정부를 수립한 살바도르 아옌데 전 대통령 이후 가장 진보적인 지도자가 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날 뉴욕타임즈(NYT)에 따르면 좌파 연합 ‘존엄성을 지지하다’의 보리치 후보가 55.8%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경쟁 상대인 극우 성향의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55) 후보의 득표율은 44.2% 수준으로, 10...
‘산티아고에 비가 내리다.’ 1973년 9월 11일 칠레의 아옌데 정부를 무너뜨리고 산티아고를 인간 도살장으로 만들었던 피노체트의 군사 쿠데타를 그린 영화. 이 영화의 제목이 바로 쿠데타의 암호명이었다. 1980년 전두환의 광주 작전명이 ‘화려한 휴가’였던 것처럼.
모네다 궁 앞에서 권총을 들고 싸웠던 아옌데는, 이제 모네다 궁 앞의 공원에 동상으로 당당히 서...
1952년 오랜 망명 생활을 끝내고 귀국한 그는 1970년 아옌데 정권이 들어선 뒤 주 프랑스대사가 됐고, 이듬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1973년 쿠데타로 아옌데 정권이 붕괴하자 그는 병상에서 항의 시를 쓰다가 세상을 떠났으나 독살설이 제기됐다. 칠레 정부는 민주화 이후에야 의혹을 규명하려고 2013년 4월 유해를 묘소에서 꺼낸 뒤 3년 만인 올해 4월 수도...
의원, 애브너 미크바 전 하원의원, 팻시 타케모토 밍큰 전 하원의원 등이 수상의 영광을 얻게됐다. 그밖에 작가 이사벨 아옌데, 과학자 밀드레드 드레슬하우스, 경제학자 로버트 솔로, 골프선수 찰스 시포드, 뮤지컬 작곡가 스티븐 손하임, 안무가 앨빈 애일리, 여배우 마를로 토머스도 수상자 명단에 포함됐다. 한편 인디언활동가인 수전 하르호도 자유의 메달을 받게 됐다.
최 대표는 취임식 참석에 앞서 10일 바첼레트 대통령과 이자벨 아옌데 상원의장 등 최고위 인사들을 예방한다. 이 자리에서 양국간 우호협력 관계의 심화·확대를 희망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우리 정부의 의지를 밝힐 예정이다.
또 바첼레트 대통령에게 박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할 예정이다. 바첼레트 대통령은 지난 2006년 칠레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당선, 첫...
히메네스는 코아차코알코스의 비야 아옌데 지역에서 발생하는 납치 사건을 취재하고 있었다. 히메네스는 이와 관련한 기사를 최근에 연재하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히메네스의 납치 사건을 취재하면서 협박을 받기도 했으나 이에 굴하지 않았다”고 했다.
치안 당국은 히메네스의 가족과 친인척들을 보호하는 한편 지역 언론인들에게 납치 경계령을 내렸다. 주...
바첼레트의 아버지인 알베르토 바찰레트 장군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에 의해 축출된 살바도르 아옌데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공군 군사학교에서 고문을 받아 그 후유증으로 다음해 사망했다. 당시 공군 군사학교의 총책임자가 마테이 후보의 아버지인 페르난도 마테이 장군이다. 마테이 장군은 이후 보건부 장관을 역임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두 가족은 마테이...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1973년 미국의 지원을 받아 쿠테타를 일으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을 살해하고 집권했다. 1990년까지 이어진 그의 철권통치 기간 정치적 이유로 최소 3197명이 사망했으며 1197명이 행방불명됐고 수만여명이 망명했다.
권좌에서 물러난 피노체트 역시 영국으로 망명했으나 1998년 영국 사법 당국은 살인·납치·고문 등의 혐의로 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