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도는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의 상흔이 묻어 있는 곳이지만, 이제는 힐링과 여유, 낭만의 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마지막은 전남 영광에 있는 '낙월도'다. 낙월도는 편의 시설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만큼 관광객의 손을 타지 않아 고요한 섬 여행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인 여행지다. 실제로 낙월도에는 마트가 없다. 상낙월도선착장 대기실에...
그는 1993년 10월 전북 위도 해상에서 발생한 서해 훼리호 침몰 사건 당시 배에 탔던 13명의 공정위 직원들 중에서 살아남은 3명 중 한 사람이다. 시장감시본부장으로 재직하면서 신문사들의 경품·무가지 제공 등 신문고시 위반행위를 적발해 제재를 내린 바 있다.
한철수 전 사무처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최고의 공정거래 정책 전문가로 부하직원들이 올리는...
그날의 조선일보 사설엔 “1993년 10월의 서해 훼리호 침몰 사건과 비교해볼 때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사고였다”는 회상과 더불어 “세월호의 운항부터 구조(救助) 과정에 이르기까지 뭔가 말도 안 되는 실수와 과실들이 겹쳤을 것”이란 추론이 등장한다.
반면 한겨레는 “이번 참사는 불가항력의 재해가 아니다. (중략) 지금까지 전개된 상황이나 생존자 증언 등에...
1993년 292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빚어졌던 서해훼리호 사건에서 재판에 넘겨진 선박회사 직원과 공무원 등 7명에게는 전원 집행유예형이 선고됐다. 또 2011년 과실로 선박을 전복시켜 4명을 숨지게 하고 4명을 다치게 한 한모 선장에게도 역시 집행유예형이 내려지면서 '국민의 법 감정과 동떨어진 처벌이 이뤄지고 있다'는 비난이 일었다.
한편 1등 항해사 강모(42)씨와...
여객선 서해훼리호가 침몰해 292명 사망
서울대 규장각, 국내 최고의 지도로 추정되는 동국지도 공개
해병대, 해군에 통합됨
서울가정법원 개원
북한 김일성,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 설치. 1946년 7월 북조선노동당으로 개편된 뒤 49년 6월 남조선공산당을 흡수해 조선노동당으로 확대 개편
일제 강점기에 일본 히로히토 천황에게 폭탄을 투척한 애국투사 이봉창, 일본...
손 경정은 사고 관련죄로 △권한은 없고 책임만 지겠다고 한 죄(해운법) △형님이 있어 해운조합을 너무 믿은 죄(한국해운조합법) △1993년 서해훼리호 사고로 지도·감독에 대한 무늬만 바뀌었다고 아무 말 안 한 죄(해운조합에서 그대로 운항관리함, 해수부 걱정거리를 책임짐) △법적 근거도 미약한 특별점검을 한 죄 △해수부도 기술적이고 전문적인 분야라...
그러나 많은 사람은 서해훼리호 등 대형 참사 때마다 그랬듯 그때뿐인 대책이나 막연한 담론에 머물 것을 우려하고 있다.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김영란법처럼 비싼 교훈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똑 부러진 메시지가 필요하다. 또한 2기 내각은 1기와 달리 공약대로 책임 총리 및 장관제를 가동해 후속 작업을 능동적으로 이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과가 상처 난 민심을...
적폐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까지 확실히 드러내고 해결해야 할 것"이라며 대대적 개혁을 예고했다. 벌써 20년도 더 지난 서해훼리호 사고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이 그대로 세월호 참사까지 이어진 것은 공직사회의 비정상적인 관행과 봐주기식 행정문화 때문이라는 게 박 대통령의 인식이다.
이같은 박 대통령의 의지가 부동층 증가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1970년 남영호 침몰사고, 1971년 대연각 호텔 화재, 1976년 동해어선 27척 침몰사고, 1984년 한강 대홍수, 1993년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1999년 씨랜드 화재 사고,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등 반세기 동안 끊임없이 일어났던 참사들은 선진국에선 일어날 수 없는 인재(人災)가 대부분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29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1993년 10월10일 서해 훼리호 사고가 나자 발생 8일 만인 18일 임시국무회의를 소집해 "새 정부 출범 이래 대형안전사고가 수차례 발생하고 있는데 대해 국민 앞에 거듭 죄송하고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사과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이듬해 10월21일 성수대교 붕괴사고가 나자 사흘만인 24일...
이어 지난 1993년 서해 훼리호 사고와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등을 언급하며 “대형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재발방지대책을 만들어 왔지만 계속해서 유사한 사고가 반복되고 이런 대참사가 또 발생하고 말았다”고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냈다.
또 “이제 더 이상 사고 발생과 대책마련, 또 다른 사고발생과 대책마련이라는 악순환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며 “이번이야말로...
지난 2010년 천안함 침몰 당시 민ㆍ군 합동조사단이 시뮬레이션을 통해 두 동강 난 선체의 절단면 정보와 균열 정보 등을 3차원 도식으로 재현해 원인 분석에 이용했다. 1993년 서해 훼리호 사고 때도 시뮬레이션이 이뤄졌다.
하지만 모의실험이 어디까지나 가설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최종적인 사고원인은 세월호를 인양한 후에야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서해훼리호 침몰,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씨랜드 참사, 여수 보호소 화재 참사, 대구지하철 참사 그리고 이번 참사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그동안 정말 많은 참사를 겪었다. 여기서 북한의 공격에 의해 침몰된 천안함은 제외했다. 그건 북한의 공격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 인재로 볼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참사들을 가만히 보면, 거의 모든...
292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 21년 전 서해훼리호 침몰 등 되풀이되는 대형 참사 데자뷰를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대형 참사는 우리 경제 전반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이번 역시 모든 기업들은 각종 행사를 취소하는가 하면 화려한 광고나 마케팅도 극력 자제하고 있다.
여행업계 역시 5월 가정의 달 황금연휴, 일본의 골든위크, 중국 노동절 등을 앞두고 단체관광...
지난 1993년 서해 훼리호 사건 때 정부의 미숙한 대응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아 안전 시계는 오히려 거꾸로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당시 서해 훼리호 참사 담당 검사를 맡았던 김희수 변호사가 이번 참사를 보고 “정부의 대응이 21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나아진 게 없다”며 오히려 초기 구조작업이 서해 훼리호 때보다 뒷걸음쳤다고 지적했을까.
이번...
뉴욕타임스(NYT)는 수백 명이 사망한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사고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한국은 배운 게 없다고 비판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이번 사건으로 대한민국 정부와 공무원은 이미 국민으로부터 불신의 낙인이 찍혔다”며 “정부기관이 제각각 움직이고 허위 문자와 악성 댓글이 판치는 현 상황은 한국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사건을 지휘했던 진교중 전 SSU 대장은 YTN에 출연해 "민간 잠수사가 기법이 우수하다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진 전 대장은 "현역에 있으면서 서해 훼리호사건, 천안함 등 각종 사건 사고에 투입됐지만 민간이 우수하다고 볼 수 없다"며 "상황에 따라서 차이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장비, 인원, 기법이 군이 우수하다"고 말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 선장, 서해훼리호 침몰사고
진도 해상에서 벌어진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선장이 가장 먼저 탈출한 것으로 드러나 비난이 일고 있다. 1993년 10월 전북 부안군 위도 해상에서 일어난 서해훼리호 사고 당시 선장 백운두(당시 56세)씨와 전혀 다른 행적이다.
세월호 '탈출 1호'인 선장 이 씨는 마지막까지 승객을 구조해야 하는 선장의 의무를 저버진...
이번 사고가 1993년 전북 부안 앞바다에서 발생한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이후 최악의 선박사고로 기록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금까지 가장 많은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한 사고는 1953년 부산 다대포앞 해상의 창경호 침몰로 330명이 사망, 32명이 실종됐다. 이어 1970년 전남 여수 소리도 해상에서 남영호가 침몰해 323명이 숨졌으며 서해훼리호 사고로 292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