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지도자 사과의 위대한 淨化작용 - 김경철 경제국장 겸 정치경제부장

입력 2014-05-14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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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의 ‘눈물 사과’에 대해 네티즌의 해석이 엇갈린다. ‘아빠의 눈물’이냐, ‘정치인의 눈물’이냐는 것이다.

정 후보는 12일 압승 직후 수락 연설에서 “제 아들의 철없는 짓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막내아들 녀석을 너그럽게 용서해주기 바랍니다”며 돌연 흐느끼기 시작했다. 부모란 자식의 허물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며 동감하는 입장도 많았다. 반면 재벌가 출신의 7선 의원이 정치적 계산 없이 허투루 눈시울을 붉혔을 리 없다는 의구심 역시 적지 않았다.

정 후보는 현재 세월호 참사에 아들의 ‘철없는 짓’까지 겹치면서 ‘시장이 될 수 있는 후보’에서 ‘되기 힘든 후보’로 추락했다. 눈물은 사과와 반성의 대표 아이콘이다. 진정성에 대한 의문표에도 지지층 이탈을 진정시키고, 이탈 이후에도 야권으로 ‘이적’하지 않은 채 무당파로 남아 있는 지지층을 원점으로 복귀시키는 등 본선 경쟁력을 높이는 데 나름 효과가 있을 법하다.

정치 지도자에게 대국민 사과는 그냥 1보 후퇴가 아니다. 2보 전진을 위한 카타르시스가 돼야 한다. 꺼내 들기 힘들던 자신의 허물을 표출해 국가와 사회의 불안과 긴장을 해소해 도약을 향한 새 전기를 마련하는 고도의 정무적 행위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는 그런 점에서 참 안타깝다. 지난해 2월 취임 이후 네 차례나 사과했지만 안 한만 못하다는 힐난까지 들어야 했다.

박 대통령은 13일 “많은 의견을 수렴했고, 연구 검토한 내용을 바탕으로 조만간 이에 대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국민 사과를 포함해 관료 마피아 척결을 위한 공직사회 개혁 방안, 국민안전 종합계획 마련을 위한 정부조직 개편 등 세월호 참사 수습을 위한 광범위한 사안이 포함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불안하다. 국무회의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집중 토론까지 벌이는 등 범정부 차원의 중지를 모으고 있다는데도 그렇다. 그간의 사과를 보면 구조적 결함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사과는 당연히 사과다워야 한다. 반성하는 자세로, 책임을 인정하고, 잘못이 반복되지 않을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 만족하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진정성이다. 진심 어린 정중한 사과는 절대적이다. 그러나 진심은 사과의 시발점이지만 그 실체를 명확하게 증명하기 어려운 만큼 태도, 대상, 언행, 타이밍 등과 같이 진심을 헤아릴 수 있는 형식적 요건을 소중하게 챙겨야 한다.

박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주로 자신이 임명한 국무위원들에게 했다. 피해자와 아픔을 공유하고 그들에게 사과의 뜻을 겸허하게 전하지 못하면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곧 있을 대국민 담화는 어떤 형태로든 희생ㆍ실종자 가족을 포함한 국민에게 한 걸음 다가가는 것이 순리다. 또 메아리 없는 일방 발언보다 기자회견 등을 통해 메시지를 더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도 좋다.

책임을 명확하게 인정하고 관련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사과의 충분조건이다. 박 대통령의 “과거로부터 겹겹이 쌓여온 잘못된 적폐(積弊)를 바로잡지 못해 한스럽다”는 사과는 과거 정권에게 책임을 돌리는 듯한 인상을 줬다. 오히려 적폐라 해도 현 정부에서 빚어진 인재(人災)란 점을 정면으로 인정하는 것이 낫다. 수습과정에서 치명적인 문제를 노출한 장관 등 고위직 인사에 대한 문책인사를 포함한 개각은 마땅히 뒤따라야 할 자동수순이라 할 수 있다.

사과는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이를 실천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국가안전처 신설에서 관피아 퇴치, 국가개조 같은 거대한 해결 방안까지 이미 제시됐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서해훼리호 등 대형 참사 때마다 그랬듯 그때뿐인 대책이나 막연한 담론에 머물 것을 우려하고 있다.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김영란법처럼 비싼 교훈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똑 부러진 메시지가 필요하다. 또한 2기 내각은 1기와 달리 공약대로 책임 총리 및 장관제를 가동해 후속 작업을 능동적으로 이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과가 상처 난 민심을 또다시 제대로 어루만지지 못할 경우 정부가 준비한 대책까지 전체가 사실상 무용지물로 전락하면서 국민과 정부가 함께 무기력과 불신의 늪으로 빨려들 수도 있다. 정화(淨化)작용이 더욱 절실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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