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퇴진에는 ‘중국정부 압력설’이 제기되는 등 뒷말도 무성하다. 하지만 일선 후퇴와 관계없이 그의 행적이 앞으로도 세계인들의 뜨거운 관심사가 되리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 국제관계학과 석·박사, ‘사마천 사기 56’, ‘중국을 말한다’ 등 저서 다수.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의 ‘이광(李廣)열전’에 인용된 속담이다.
복숭아나무는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사람들을 향해 꽃구경 오라고 부르지도 않고 과일을 먹으러 오라고 손짓을 하지도 않는다. 그저 말없이 있어도 복숭아나무 아래에는 길이 생길 정도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꽃구경하러 모여들고 열매를 따러 모여들고… 실력을 갖출 일이다. 실력만...
마지막으로 그는 ‘사마천’을 언급하면서 “가장 좋은 리더는 조직 구성원들을 유도하고 함께 가는 것”이라면서 “소상공인들이 연합회의 주인이고 방향성을 만드는 게 맞다. 소상공인 회원사들이 겪는 문제에 대해 더 관심을 갖고 근본적인 문제부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지난달 30일 소상공인연합회 회장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 앞으로 3년 더 700만...
사마천의 ‘사기’ 고조본기에 보면 진나라 패현(沛縣)의 유지였던 여문(呂文)은 동네 건달 유방(劉邦)이 장래 제왕이 될 관상임을 일찍부터 알아본다. 유방에게 자신의 맏딸 여치(呂雉)와 결혼해줄 것을 청하며 “(내 딸이) 키질하고 비질하는 데 소용되게 하겠다”라고 말한다. 요즘 웹툰 ‘며느라기’가 며느리의 시집살이 어려움을 다뤄 인기인데 상통하지 않는가....
‘한서(漢書)’라는 중국 최초의 체계적 단대사(斷代史:한 시대dynasty의 역사)를 저술함으로써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司馬遷)과 더불어 중국의 양대 역사가로 추앙받는 반고(班固)의 대고모(고모할머니)인 반첩여는 성품이 어진 데다 총명하고 문학적 소양이 풍부하여 성제의 총애를 독차지했다.
그러나 조비연(趙飛燕)이라는 날씬하기로 이름난 궁녀가 새로...
경영을 잘못하면 나라가 어떻게 하기 전에 주주들이 알아서 징벌합니다.”
일자리 대책을 비롯한 박 회장의 생각은 ‘사기(史記)’ 화식열전(貨殖列傳)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살리는 경제활동을 강조했던 사마천(司馬遷)의 철학에 닿아 있는 것 같다. 사마천은 “소매가 긴 옷을 입어야 춤을 잘 출 수 있고, 돈을 많이 가져야 장사를 잘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의...
사마천은 사기 ‘공자세가’에서 소정묘가 정치적 혼란을 조성했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요즘 말로 하자면 소정묘는 포퓰리스트였던 셈이다.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공자의 중심 사상은 인(仁)이 아닌가. 노나라 실권자 계강자가 “무도한 자를 죽여 사회를 바로잡으면 어떠냐”고 물을 때 “어찌 사회를 바로잡는다면서 백성을 죽일 생각부터 하느냐”고 정색하며 반격하던...
‘사기’를 쓴 사마천의 아버지 이름은 담(談)이다. 그래서 바른 사실로 역사를 기록하는 그조차도 자신이 편찬한 사기에 장맹담(張孟談)을 장맹동(張孟同)으로, 조담(趙談)을 조동(趙同)으로 이름을 바꾸어 놓았다.
우리나라 대구의 지명이 대구(大丘)에서 대구(大邱)로 바뀐 것도 먼저 쓰던 언덕 구(丘)자가 공자의 이름이기 때문에, 성현의 이름을 지명으로 감히 쓸 수...
예를 들면, 윤내현은 ‘고조선 연구’에서 사마천의 ‘사기’ 등 중국 사료를 통해 낙랑이 지금의 요서 지역에 있었다고 논증했다. 세 명의 저자들이 한문 원전은 고사하고 윤내현의 이 책을 정독했는지 묻고 싶다. 낙랑군이 요서 지역에 있었다는 많은 중국 기록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다른 1차 사료로 비판하면 될 일이다. 그런 1차 사료가 없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당시 연나라의 위만이 경계인 패수를 건너 고조선의 서쪽 변경에 망명해 왔다가 반란을 일으켜 위만조선을 세웠는데, 이 위만의 조선에 대해 기록한 역사서가 사마천의 ‘사기’ 중 ‘조선열전’이다. 이 ‘조선열전’을 통해 패수의 위치를 확인해 보면, 학계에서 패수를 압록강이나 청천강 등 한반도의 강이라는 주장이 명백한 잘못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즉...
“돈 없는 사람이 돈 버는 방법을 배우는 데는 사마천의 ‘화식열전’이 최고이며 유일하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지금 돈으로 약 3억 원이 없어 남성을 제거하는 처형을 받고 ‘돈 버는 비결’을 쓴 사마천은 말했다. “부(富)는 인물지야(人物之也)”라고. 다시 말해 인(人)과 물(物)이 부(富)라는 것이다.
“사람도 1000명 정도 모으면 얼마든지 돈을 만들어 낼 수...
사마천 사기의 화식열전(貨殖列傳)에는 부에 관한 명언이 많다. “부는 사람의 성정으로, 배우지 않아도 모두 바라는 것이다.”[富者 人之情性 所不學而俱欲者也] 승진 합격을 위한 노력이든 문서 위조, 사기 강간 등 각종 범죄든 일체의 인간 행동의 동기는 재물을 얻으려는 것이다.
그래서 “무릇 일반 서민이라면 상대의 부가 열 배면 졸아들고 백 배면 두려워하고 천...
사마천의 사기 상군(商君)열전에 나온다. “돌이켜 자기 마음속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을 총이라 하고 마음속으로 성찰할 수 있는 것을 명이라 하며 자신을 이기는 것을 강이라 합니다. 순 임금도 ‘스스로 자신을 낮추면 더욱더 높아진다’고 했습니다.”[反廳之謂聰 內視之謂明 自勝之謂强 虞舜有言曰 自卑也尙矣]
후한서 왕윤(王允)전에는 “무릇 내시반청이면 힘과...
출전은 사마천의 ‘사기’ 혹리열전(酷吏列傳). 중국 한 무제 때 전쟁으로 살기가 힘들어진 농민들이 여러 곳에서 봉기했다. 조정에서는 진압군을 보냈지만 반란군은 '대규모로 험한 산천을 끼고 고을에 자리 잡고 굳게 막아 지키는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하여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復聚黨而阻山川者 往往而郡居無可奈何].'
이 글에서 보다시피 원래는 무가내하...
사마천의 사기 위기무안후열전(魏其武安侯列傳)에 나온다. 한무제 때 외척 위기후(魏其侯) 두영(竇嬰)의 편을 들던 장군 관부(灌夫)가 실수를 저지르자 두영의 정적 무안후(武安侯) 전분(田蚡)은 그를 옥에 가두고 여러 죄를 씌워 사형에 처하려 했다.
이때 두영이 무제에게 상소를 올려 관부의 처리가 조신들의 공론에 부쳐졌다. 어사대부 한안국(韓安國)이 천자의 재단...
사마천의 ‘사기’ 세가(世家)에 나오는 범려(范蠡)는 최고의 상인이었다. 월왕(越王) 구천(句踐)을 도와 오왕(吳王) 부차(夫差)를 무찌른 그는 구천과는 환난은 함께 할 수 있어도 안락은 함께 누릴 수 없다며 떠나버렸다. 이른바 장경오훼(長頸烏喙)의 고사다. 그 뒤 도(陶)라는 곳에 가서 도주공(陶朱公)이라고 칭하며 농사와 목축으로 물건을 사두었다가 때를 기다려...
사마천의 사기열전에 나오는 원문은 ‘家居徒四壁立’이다. 徒는 한갓, 헛되이, 보람 없이라는 뜻이다. 도난인의(徒亂人意)라고 하면 ‘공연히 남의 마음만 뒤숭숭하게 만든다’는 말이다.
“문장은 서한(西漢)의 두 사마(司馬)요, 경제는 난양(南陽)의 와룡(臥龍)이다”라는 말이 있다. 문장이라면 한무제 때의 문인이었던 사마상여와 사마천(司馬遷)을 꼽고 경세제민...
아버지가 참수됐는데도 대업을 이룬 우는 궁형(宮刑)의 치욕을 무릅쓰고 대를 이어 사기(史記)를 완성한 사마천을 연상케 한다.
순은 재위 33년이 되어 나이 백 살을 바라볼 때, 우를 설득해 임금 자리를 물려주었다. 이때 고요(皐陶)가 순을 칭송한 말이 인상 깊다. “임금의 덕에 허물이 없고 아랫사람을 대함에 대범하고 백성을 관대하게 다스리며 벌을 주되 자손에게...
경제활동을 지향하는 인간의 속성을 정확히 통찰한 사마천이나 비효율적인 이데올로기보다 실사구시를 중시한 덩샤오핑을 봐도 이런 중국인의 의지를 알 수 있다.
책은 중국 역사의 번영기와 쇠락기, ‘재물의 신’이라 불린 역사 속 부호들을 짚어보며 중국이 어떻게 오늘의 경제 발전을 이뤘는지를 살핀다. 사마천의‘부자가 되는 일곱 가지 방법’을 부록으로 주는...
子毋讀書遊說 安得此辱乎 張儀謂其妻曰 視吾舌尙在不 其妻笑曰 舌在也 儀曰 足矣] ‘내 혀가 아직 있다’[吾舌尙在], 사마천 사기의 장의열전에 나온다.
‘혀가 아직 있다’는 말은 치망설존(齒亡舌存), 치폐설존(齒弊舌存)에도 나온다. 한(漢)의 유향(劉向)이 지은 ‘설원(說苑)’의 경신(敬愼) 편에 노자(老子)와 상종(常樅)의 고사가 실려 있다. 樅은 ‘전나무 종’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