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7년(조선 인조 5년) 3월 1일(음력 1월 14일) 3만의 후금(後金) 군사가 압록강을 넘어 침략해왔다. 정묘호란의 시작이다. 1616년 만주에서 건국한 후금에 대해 광해군은 명과의 등거리 외교정책으로 큰 마찰 없이 지냈으나 뒤를 이은 인조가 ‘향명배금(向明排金)’정책을 표방한 게 화근이었다.
조선은 랴오둥[遼東]을 되찾으려는 명의 군대를 평북 철산(鐵山)의 가도...
1212사태는 신군부 세력이 육군참모총장 등을 강제로 연행하고 권력을 장악한 군사 반란이다. 모든 과정에서 최규하 당시 현직 대통령의 재가는 없었다.
1979년 12월 육군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한 '10·26사건' 수사를 지휘하던 합동수사본부장이었다. 그는 사건수사 및 군 인사를 두고 육군참모총장 겸...
즉 군사반란사건이다.
강제 연행은 당시 대통령이던 최규하의 승인 없이 이뤄졌다. 신군부세력은 최 전 대통령을 협박해 사후 승인을 받았다.
1948년 12월 12일에는 대한민국이 유엔으로부터 정부로써 승인을 받았다. 당시 유엔 총회 결의안 제195호(Ⅲ)는 "유엔 선거 감시단의 감독하에 실시된 선거 가능 지역에 통치력과 사법권을 가지고 있는...
그는 또 신군부의 12·12 군사 쿠데타와 5·16 쿠데타가 각각 '반란'과 '군사정변'이라는 현행 교과서의 규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황 후보자는 또 대입 수능시험 난이도 논란에 대해서는 "학생의 지나친 학업 부담과 사교육비 부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일관성 있는 대입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학교 교육을 충실히 받으면 별도 사교육 없이...
이학봉 전 처장은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주도한 1212 군사 반란 당시 보안사 대공처장으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수사하는 등 신군부의 쿠데타 성공에 기여했다.
이듬해 5·17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조치 됐을 당시 보안사 대공처장으로 정치인과 학생들에 대한 체포·조사를 총지휘해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촉발시켰다.
육군사관학교 18기이자...
1997년 4월 12·12 반란모의 참여죄 등에 관련한 대법원 재판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았지만 다음해 건국 50주년을 맞아 5·18 특사로 사면됐다.
특히 정호용과 최세창 전 국방부 장관 등 12·12 군사 쿠데타에 가담한 인물 10명과 함께 최근 "군인연금을 못 받는 것은 부당하다"며 국방부를 상대로 연금지급 거부 취소소송을 제기해 논란이 됐다.
빈소는...
이학봉 전 안기부 차장은 육군사관학교 18기이자 ‘하나회’ 회원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제5공화국 출범 후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과 안기부 2차장 등을 지내며 권력 중심에 섰다.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경남 김해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997년 4월 12·12 반란모의 참여죄 등에 관련한 대법원 재판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았지만 다음해 건국 50주년을...
이학봉 전 안기부 차장은 육군사관학교 18기이자 ‘하나회’ 회원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제5공화국 출범 후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과 안기부 2차장 등을 지내며 권력 중심에 섰다.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경남 김해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997년 4월 12·12 반란모의 참여죄 등에 관련한 대법원 재판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았지만 다음해 건국 50주년을...
고인은 신군부 쿠데타 주역 중 한명으로, 1979년 12·12 군사 반란 때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을 수사하는 등 쿠데타 성공에 일조했다.
그는 1980년 5월 보안사 대공처장으로 5·17 쿠데타 당시 이에 반발하는 정치인과 학생들에 대한 체포 조사를 총지휘하며 제5공화국의 실세로 급부상했다.
1980년 육군 준장으로 예편해 청와대 민정수석과 안기부...
12.12 군인연금 소송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해 유죄 판결을 받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측근 10명이 군인연금 권리를 박탈 당했다며 국방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6일 정호용·최세창 전 국방장관, 황영시·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 장기오 전 육군교육사령관, 장세동 전 3공수특전여단장, 허화평 전 보안사 비서실장, 허삼수 전 보안사...
12.12 군사 반란 중 순직한 故 김오랑 육군 중령에게 훈장이 추서된다.
지난 13일 정부는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고 김 중령에게 보국훈장을 추서하는 영예 수여안을 심의·의결했다.
김오랑 중령은 지난 1979년 12·12 쿠테타 때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하기 위해 왔던 신군부에 맞서다가 총탄을 맞고 숨졌다.
그 후 그는 그 공을 인정받아 1990년...
5·16 군사반란의 정점에는 박정희가 있었지만 실제 거사는 김재춘 등 육사 5기와 김종필 등 8기가 주도했다.
5·16 성공 이후 권력투쟁은 김종필을 중심으로 한 육사 8기가 주도했고 지배권을 장악했다. 이때 김종필이 조직한 중앙정보부가 핵심 역할을 했다. 5기 출신 김재춘은 박정희와의 남다른 인연으로 방첩대장을 맡아 중정과 함께 실세에 속했다. 이후 육사...
12.12 사태는 1979년 10월29일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암살된 뒤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고 있던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 등을 중심으로 신군부세력이 일으킨 군사반란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12 12사태를 통해 전두환은 정권을 쥐게 되었고, 노태우 전 대통령 등 신군부세력은 정치적 실세로 등장하게 됏다.
이후 신군부세력은 1980년 5월 18일 자신들에게 항거한...
전두환 전 대통령이 갖고 있던 훈장은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등 9개로 대부분이 12ㆍ12 군사반란 이후부터 대통령 재임 시절에 받은 것들이다.
이는 대통령 '전두환'이 개인 '전두환'에게 서훈을 내렸다는 비난 여론을 형성하며 반납을 요구하는 여론을 초래했다.
앞서 정부는 전두환ㆍ노태우 두 전 대통령이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무력 진압의...
채동욱 총장은 검 중수과장·중수부장을 거치지 않아 '정통 특수통'으로 분류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 전 대통령의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사건의 검찰 논고문을 작성할 정도로 인정을 받았다.
2003년 서울지검 특수2부장 시절에는 '굿모닝시티 분양 비리'를 파헤치기도 했다. 당시 집권 여당이던 정대철 민주당 대표를 구속했다. 이외에...
군인 및 군무원에 대한 형법상 내란·외환의 죄, 군형법상 반란·이적의 죄, 군형법상 군사기밀누설죄 및 암호 부정사용죄, 국가보안법 위반죄,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위반죄, 국가보안법 위반자 중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죄 등이 기무사 업무에 해당된다.
민간인에 대해서도 간첩, 군사기밀 누설 등 행위는 기무사가 수사한다.
기무사는...
결국 무르시는 시민들을 앞세운 군부의 반란으로 1년 만에 정권에서 쫓겨났다.
무르시의 실각은 독재정권을 몰아내고 민주화의 궤도에 오르려는 인근 국가에 무서운 전례를 남기게 됐다. 민심에 부합하지 않으면 합법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언제든 군부가 축출하는 것을 당연시하게 된다는 점에서다.
문제는 군부가 이집트 정권을 이대로 장악하면 상황은...
이슬람주의자 연합은 성명에서 “우리의 대규모 시위는 군사 쿠데타가 철회하고 정당성을 갖춘 무르시 대통령이 복귀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르시 퇴진 운동을 전개해 온 ‘타마로드(반란)’는 이날 무르시 반대파들에게 다시 한번 거리로 나와 줄 것을 촉구해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최근 유골이 발견된 고 장준하 선생님, 중앙정보부에서 시체로 발견된 후 ‘간첩’으로 몰렸던 서울대 법대 최종길 교수님, 조작된 ‘인혁당 사건’으로 목숨을 빼앗긴 여덟 분의 민주화운동가, 전두환 노태우가 이끄는 군사반란에 맞서다가 온 몸에 총을 맞고 숨진 김오랑 소령, 광주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도청을 지키다가 숨져간 수많은 시민들,
그리고 공안경찰의...
기념재단은 "12·12쿠데타, 5·18 광주학살 등 군사반란, 내란 및 내란목적 살인의 수괴범이자 수천억에 이르는 비자금 사건의 주범인 전두환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법질서 위에 군림하고 있는 듯 한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념재단은 "남은 재산이 29만원뿐이라는 그가 벌금과 추징금을 내지 않으면서 호화골프를 즐기고 타국에서 특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