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켓ㆍ신발 후원사 물품 사용 강제 등 부조리 적발
협회 임원들, 후원사 유치 명목으로 인센티브 수령
'국고보조금 운영관리지침' 위반 사항 곳곳 드러나
2024 파리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안세영의 ‘작심 발언’을 계기로 대한배드민턴협회 운영 전반을 살핀 문화체육관광부가 “김택규 배드민턴협회장이 횡령·배임 사태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정우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은 10일 배드민턴협회에 대한 중간 조사 결과 브리핑에서 “현재까지 파악된 사항만으로도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라며 “이미 회장에 대한 고발 사건이 수사기관에 접수된 만큼 추가적인 조사를 마치는 대로 조사 내용을 수사 참고자료로 제공할 예정”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번 조사는 안세영 선수의 인터뷰로 논란이 된 미흡한 부상 관리, 대회 출전 강요 의혹뿐만 아니라 협회의 보조금 집행 및 운영 실태까지 종합적으로 살피기 위해 실시됐다.
문체부는 지금까지 안세영 선수를 포함해 총 22명의 국가대표 선수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선수들은 협회가 경기력과 직결되는 라켓·신발 등 후원사 용품만 일괄적으로 사용하도록 강제했다며 불만을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국장은 "국내 올림픽 44개 종목 중 이렇게 예외 없이 의무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라며 "미국과 일본, 프랑스 등은 선수의 선택권을 존중하고 있으며 덴마크는 선수의 라켓과 신발 사용 권리를 명문화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문체부는 경기력과 직결되는 용품은 선수의 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판단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국가대표 선수가 국제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 후원사로부터 직접 개인 보너스를 받았는데, 현재는 협회가 그 보너스를 일괄 수령하고 있는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 국장은 "협회의 전체적인 상금 지원 체계를 확인하고, 다른 종목과 비교해 개선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수 선발 방식의 불공정성도 확인됐다. 배드민턴 단식은 선수의 경기력으로 100% 선발하지만, 복식은 경기력을 포함해 평가위원의 점수가 30% 반영된다. 선수들은 이 같은 선발 방식이 실력과 무관한 선발을 가능케 한다고 토로했다.
이 국장은 "국가대표 선발은 매우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다. 문체부는 국가대표 선수단, 청소년ㆍ후보 선수, 지도자, 전문가를 포함해 관계 기관과의 폭넓은 의견 수렴을 통해 가장 공정한 대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협회 돈으로 물품을 구매하면서 이른바 '페이백'을 받아 임의로 쓴 정황에 대해서도 이 국장은 "현재까지 파악된 사항만으로도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 횡령 및 배임의 가능성도 있다"라고 말했다.
문체부에 따르면, 지난해 김 회장은 라켓ㆍ셔틀콕 등 물품을 구입하면서 협회 직원들 몰래 후원 물품 지급 계약을 구두로 체결했다. 이후 약 1억5000만 원 규모의 물품을 수령했는데, 협회는 이렇게 받은 물품을 공식 절차 없이 배부했다.
아울러 이 국장은 "국가 예산을 사용할 때 협회 임직원이 운영하는 업체와는 거래가 금지되지만, 협회는 감사가 대표이사로 재직 중인 회계법인과 2016년부터 지금까지 거래를 지속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문체부는 해당 회계법인에 약 1600만 원이 지급된 사실도 확인했다.
협회 운영 실태에 관한 문제점도 드러났다. 일부 임원들이 이른바 '성공 보수'를 수령한 것. 정관에 따라 임원은 보수를 받을 수 없지만, 일부 임원들이 협회의 마케팅 규정을 이용해 후원사 유치에 기여했다는 명목으로 유치금의 10%에 달하는 인센티브를 받고 있었다.
이 국장은 "문체부는 이번 조사를 통해 잘못된 것은 바로잡고, 협회가 선수와 지도자를 위한 서비스 기관으로 거듭나도록 하는 계기로 삼겠다"라고 말했다.
한편 협회에 대한 문체부의 최종 조사 결과는 9월 말에 발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