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인물] 7월 24일 알렉상드로 뒤마 페르 대중의 인기를 독차지한 19세기 프랑스 소설가

입력 2016-07-24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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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호 미래설계연구원 연구위원

알렉상드르 뒤마 페르(1802.7.24~1870.12.5)는 대중과 코드를 기막히게 맞췄던 19세기 프랑스 소설가다. 박영만 프리윌출판사 대표는 자신이 쓴 ‘세계명작 다이제스트’에서 “‘수술 환자에게 마취제 대신 뒤마의 소설을 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의 소설은 대중에게 흥미를 줄 요소가 그득하다”고 칭찬했다.

그는 빌레르코트레에서 출생했다. 집에 돈이 없어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없었지만 독서를 좋아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황제에 오르자 아버지가 프랑스대혁명 때 나폴레옹 휘하에서 장교로 활약했던 인연으로 뒤마는 파리 권세가 루이 필리프의 궁전 사무실에 취직하게 됐다. 안정된 직장을 얻게 된 그는 극본을 잡지에 기고하기 시작했다. 1829년에는 ‘앙리 3세와 그의 궁정’이라는 희곡을 단행본으로 만들어 내놨는데 꽤 인기를 끌었다. 같은 해 내놓은 ‘크리스틴’, 1830년에 출간한 ‘찰스 10세’도 호평받았다.

극작가로서 위치를 굳히자 그는 당시 신성장산업이었던 신문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38년 연재된 첫 소설 ‘자본가 폴’은 자신의 동명 희곡을 각색한 것이었다. 그는 이후에도 이런 식으로 많은 소설을 발표했다. 이어 1839~41년 유럽의 유명한 범죄 사건을 뽑아 8권짜리 ‘유명한 범죄자들’을 내놓았다. 1840년에는 펜싱 마스터 아우구스틴 그리시에르와 함께 ‘펜싱마스터’를 출간했다. 특히 그는 1844년 ‘삼총사’, 1845~46년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내놓아 전 지구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는 작품마다 성공하면서 엄청난 수입을 올렸으나 여성 편력 때문에 자주 파산했다. 그리고 그의 후견인인 루이 필리프마저 쫓겨나자 1851년 벨기에 브뤼셀로 추방됐다. 하지만 그는 브뤼셀에서 탈출해 러시아로 가서 작품을 계속 썼고, 1861년에는 이탈리아로 가서 통일운동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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