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초의 여황제가 된 측천무후(則天武后)는 당나라 태종의 후궁이었다가 고종의 황후가 되었다. 고종이 죽고 중종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자 무후가 섭정했다. 중종이 친정(親政)할 나이가 되어도 자리에서 물러나려 하지 않자 소안환(蘇安桓)이 상소했다. “아직은 섭정의 자리에 계시지만, ‘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하고, 그릇도 가득 차면 넘친다[物極必反...
측천무후(則天武后) 때 재상을 지낸 적인걸(狄仁傑)이 모함을 받아 병주(幷州)의 법조참군(法曹參軍)으로 좌천돼 타이항산(太行山)에 올라 한 말에서 유래했다. “우리 부모님은 저 구름 아래 살고 계시겠지” 라며 흰 구름을 쳐다보면서 부모님을 생각하고[望雲之情] 비탄에 잠겼다.
☆ 시사상식 / 테레사효과
남을 돕는 활동을 할 때 생기는 정신적, 신체적, 사회적...
우둔한 황제 혜제의 황후였던 가남풍(賈南風)은 중국 역사상 측천무후에 비견될 만큼 절대권력을 행사했던 여성이었다. 그녀는 딸만 셋 있었고 아들이 없었는데 다른 후궁에서 낳은 황태자를 끝내 암살하였고 대신(大臣)을 비롯하여 많은 정적들을 잔혹하게 죽였다. 다른 후궁들이 임신하면 창으로 복부를 마구 구타하여 유산시켰으며, 또한 음란하여 몰래 자기 침실에...
당나라의 여제(女帝) 측천무후 만년, 나라 정세는 어지러웠지만 당 현종(玄宗)이 즉위한 뒤 비로소 혼란 국면은 안정되었다. 장기간에 걸친 궁정 정변으로 중앙집권은 쇠퇴하고 관리들은 부패했으며 변경에서 이민족과의 충돌도 잦아졌다. 특히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반란은 당 왕조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었다. 토지겸병도 심해졌고 농민들은 집단적으로...
중국 최초의 여황제 측천무후(則天武后)가 중종이 친정(親政)할 나이가 되어도 물러나지 않자, 소안환(蘇安桓)이 올린 상소에서 유래했다. “무후께서는 아직까지는 섭정의 자리에 계시지만, 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하고, 그릇도 가득 차면 넘친다[物極必反 器滿則傾]는 이치를 아셔야 합니다.”
☆ 시사상식 / OOTD
오늘 입은 옷차림, ‘오늘의 패션(Outfit Of...
측천무후(則天武后) 때 황제의 총애를 받던 누사덕(婁師德)이 아우가 대주자사(代州刺史)로 부임할 때 한 충고에서 유래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네게 침을 뱉는다면 침 같은 것은 닦지 않아도 그냥 두면 자연히 마르게 되니, 그럴 때는 웃으며 그냥 침을 받아 두는 게 제일이다.”
☆ 시사상식 / 매버릭 매니지먼트
(Maverick Management)
1800년대 미국 텍사스에선...
당(唐)나라 고종(高宗)이 무씨(武氏:측천무후(則天武后))를 황후로 맞을 때 중심 역할을 한 재상 허경종(許敬宗)은 오만해 사람들을 만나도 곧 잊어버리곤 했다. 한 사람이 그의 행동을 꼬집었다. “경은 스스로 알기가 어렵네”라고 하자 그의 대답. “만약 하손·유효작·심약·사조와 같은 사람이라면 어둠 속에서 더듬어 찾더라도 확실히 알 수 있다네.” 원전은...
서태후(1835.11.29~1908.11.15)는 한고조 유방의 처인 여후, 당나라의 측천무후와 함께 중국 3대 악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청나라는 서태후가 사망한 후 3년 지나 신해혁명으로 멸망했다. 그러나 서태후는 보수파의 수장으로 권력만을 추구해 정국을 혼란스럽게 하고 사치스러운 생활로 국가 재정을 좀먹어 결국 나라를 멸망하게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서태후는 청나라...
차이 신임 총통은 대만의 첫 여성총통이자 당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 이래 중화권 최초의 여성 통치자라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또 대만 역사상 세 번째 정권교체로 민진당으로서는 8년만의 재집권에 성공했다.
차이 총통은 대만 국립정치대 법학 교수를 지내다 2000년 대륙위원회 주임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입법위원, 행정원 부원장을 거쳐 2008년 민진당 주석에...
19일 불광출판사에서 펴낸 ‘흘반난(吃飯難), 밥 먹기 어렵다’는 최치원, 두보, 이백, 원효, 소동파, 이황, 조식, 측천무후, 임제 등 역사의 굽이에 살다간 사람들이 남긴 글 126편을 담은 시문집이다.
한문에 능통한 것으로 알려진 저자는 검찰총장에 오른 뒤 열린 첫 간부회의에서 “자리가 사람을 빛나게 하는 게 아니라 어느 자리에 있건 최선을 다하면 그 자리가 빛나는...
이광필(708~764)은 거란 사람인데, 거란의 수령이던 아버지 이해락(李楷洛)이 측천무후가 집권하던 해 당나라에 귀순함에 따라 당의 신하가 됐다. 어려서부터 활쏘기 말타기에 뛰어났던 이광필은 757년 안사(安史)의 난 당시 1만도 안 되는 병력으로 10만의 반란군을 태원(太原)에서 막아내는 큰 공을 세웠다. 그는 당시 방어를 하면서도 주동적으로 출격하는 적극적 전략으로...
중국사상 유일한 여제(女帝)인 당(唐)나라의 측천무후(則天武后) 시대에 누사덕(婁師德)이라는 신하가 있었다. 온후하고 어질어 아무리 무례한 일을 당해도 흔들림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대주자사(代州刺史)로 부임하는 동생을 불러 “우리 형제가 다 같이 출세하고 황제의 총애를 받는 것은 좋지만 남의 시샘도 클 것이다. 시샘을 면하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고...
이어 영화 ‘레지던트 이블5:최후의 심판 3D’를 비롯 ‘설화와 비밀의 부채’, ‘적인걸:측천무후의 비밀’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두터운 팬층을 가지고 있는 중화권 여배우 리빙빙은 동양적인 분위기, 서구적인 외모의 특별한 매력으로 중국 4대 미녀로 손꼽힌다.
이번 작품을 통해 리빙빙은 지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펼치며 니콜라 펠츠와는 또 다른...
‘만추’에 이은 탕웨이의 두 번째 시애틀 로맨스이기도 한 ‘시절인연’은 ‘화피’, ‘황후화’의 미술감독과 ‘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 촬영감독 등 홍콩의 실력 있는 제작진들이 참여한 작품이다. 진정한 삶의 가치와 사랑을 찾는 주인공에게 많은 관객들이 공감하며 중국 개봉 당시 압도적인 스코어로 첫 주 박스오피스 1위로 진입, 역대 중국 박스오피스...
특히 고우영의 삼국지는 지난 2001년 배철수씨의 해설과 함께 MBC라디오 드라마로 방송돼 인기를 끌었고, 그 해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수상했다. 이밖에 십팔사략, 열국지, 초한지, 측천무후 등 중국 고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다뤘다.
그러나 이듬해인 2002년 대장암이 발병해 2005년 향년 66세로 별세했다. 정부는 그에게 은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측천무후(則天武后)의 최측근이었던 상관완아(上官婉兒·664∼710)의 무덤이 발견됐다고 서안만보(西安晩報)가 12일 보도했다. 측천무호는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성황제다.
당(唐) 초기 여류 문인이자 정치인인 상관완아의 무덤은 산시(陝西)성 셴양(咸陽)공항 근처에서 묘비와 함께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상관완아는 당 고종 때 재상(宰相)으로 측천무후의 폐위(廢位)...
진시황릉, 병마용, 양귀비 목욕탕 화칭츠(華淸池), 측천무후 건릉 등 문화유적지도 즐비한 곳이다.
박 대통령이 시안을 방문하는 것 자체가 중국 문화에 대한 존중으로 해석돼 중국인들에게 더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박 대통령이 중국과의 경제협력에서 새로운 '모멘텀'을 시안에서 찾으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향후...
류샤오칭 동안 미모를 접한 네티즌들은 "류샤오칭 동안 미모, 대단하네" "류샤오칭 동안 미모, 어떻게 저게 60대 미모야?" "류샤오칭 동안 미모 비법이 뭘까?" 등 반응을 보였다.
류샤오칭은 측천무후 역만 3번을 맡은 배우로 최근 국내에서도 방송되고 있는 '수당 영웅'에서 수양제 소황후 역으로 장서희와 호흡을 맞췄다.
7%)을 모아 전주보다 2계단 하락한 5위를 차지했다. 아만다 사이프리드 주연의 로맨틱코미디 ‘레터스 투 줄리엣’은 7만7천963명(7.1%)을 동원, 전주보다 1계단 떨어진 6위다.
이밖에 ‘검우강호’(5만8천772명), ‘참을 수 없는’(3만8천689명), ‘적인걸:측천무후의 비밀’(2만9천36명), ‘된장’(2만7천560명) 등이 10위 안에 들었다.
특히 베이징 덕은 오랜 시간 여러 번 양념을 발라가면서 구워내어 만드는데 바삭한 오리껍질을 밀전병, 파와 함께 싸먹는 것으로 중국 유일한 여황제 측천무후의 총애를 받은 장역지의 음식 사치에서 시작됐다고 할 정도로 역사가 오래됐다. 청 말의 서태후를 비롯해 모택동, 등소평도 즐겨먹었을 정도로 중국 오리 요리뿐 아니라 베이징을 대표하는 요리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