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헌재에 따르면 박한철 헌재소장과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 이정미·안창호 재판관 등 재판관 상당수와 헌법연구관 등이 이날 출근해 법리 분석에 돌입했다.
헌재는 박 대통령 측이 “탄핵 사유가 없다”며 내놓은 사안별 대응 논리를 분석해 이번 심판의 쟁점을 추리고 이를 토대로 신속심리를 위한 절차를 논의할 방침이다.
또 헌재가 검찰 및 박영수 특별검사로부터...
개별 팀장은 헌법 재판소 연구관 출신 이명웅 변호사 외에 문상식, 김현수, 최규진 변호사 등 총 4명이 맡았다.
국민의당 김관영 간사는 “국회도 탄핵심판을 가결하고 손 놓고 있을게 아니고 (헌재를 도와) 탄핵심판을 가장 신속히 내라는 게 민심”이라며 “국회에서 탄핵심판 추진업무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
황도수 전 헌법재판소 연구관은 “헌재가 어떤 식으로 입장을 취할지는 모르겠지만 법대로 한다면 신속하게 결정할거라고 본다”며 “박 대통령의 파면 사유 중 한 두 가지에 집중하면 된다”고 했다. 황 전 연구관은 대표적으로 헌법 7조에 규정된 직업공무원제 정신을 위반한 사실을 지적했다. 그는 “박 대통령의 행위는 금고이상의 형이 당연하다”면서 “박...
또 헌법연구관 20명 규모의 테스크포스(TF) 팀을 꾸려 재판관들의 이론 구성을 뒷받침할 예정이다.
국회는 지난 9일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다. 소추안에는 △공무상 비밀 누설 △최순실 씨 등 비선실세에 의한 국정농단 △사기업에 대한 금품출연 강요 △특정 언론사 사주 퇴임 강요 등 언론 탄압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직무공백 등 5가지 헌법 위반...
경찰은 서울 안국동 헌재 청사에 기동대 1개 중대를 배치해 주변 순찰 활동을 벌이고 있다. 경찰은 평소 헌재 청사 인근에 경비병력을 배치하지 않지만, 탄핵 심판 청구 심리를 하면서 24시간 경비태세를 유지하기로 했다.
헌재는 오는 12일 전체 재판관 회의를 열어 향후 심판 절차와 헌법연구관들이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 구성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미 특검 수사에 대비해 4명의 변호인단을 구성한 박 대통령은 헌법재판관이나 재판연구관 또는 판사 출신 변호인들을 별도로 선임해 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권한대행 보좌 체계로 재편될 청와대 참모진으로부터 주요 현안에 관한 최소한의 보고를 받으면서 국정 흐름을 놓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노 전 대통령도 직무정지 상태에 놓이기는 했지만...
민원기 미래창조과학부 기획조정실장, 권덕철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 등도 31회 출신 현직 1급이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법제연구원의 이익현 원장도 행시 31회 출신이다. 법제처 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해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관, 법제처 경제법제국장, 법제처 법제지원단장, 법제처 법령해석정보국장 등을 지냈다.
이 인권보호관은 사법연수원 23기로, 대구지검 부부장검사,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등을 역임했으며, 2007년부터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총리실은 “이 인권보호관은 헌법학계에서 신망이 높은 법률 전문가로서 법무부 인권정책자문단 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인권 분야에 학식과 경험이 풍부하다”며 “법률전문가로서 직무의 독립성을 갖고, 관계기관의...
통상 헌법연구관들이 검토를 마치고 보고서를 올린 사건을 공개변론 사건으로 선정하기 때문에 이렇게 장기간 동안 결론을 내리지 않는 것은 이례적이다.
공개변론에서 합헌 주장을 펼쳤던 김선수 변호사는 "같은날 공개변론을 같이 한 기간제법은 4개월만에 선고를 했는데, 파견법만 공개변론 이후 3년여간 결정을 하지 않아 (근로자들의)신속한 재판을...
2년간 헌법재판소 연구관으로 파견 근무한 박 원장은 2008년부터 헌법연구회장을 맡았고, 2012년 서울행정법원장을 역임하는 등 법원 내에서 손꼽히는 공법 분야 전문가로 인정받았다.
1980년 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2년 뒤 춘천지법 판사로 임관했다. 이후 30여년 간 판사로 재직하며 창원지법 부장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 의정지법원장, 서울행정법원장...
1972년 서울민사지법 영등포지원 판사로 임관해 광주고법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가정법원·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를 역임했다.
1990년 변호사로 개업해 3년 뒤 화우의 전신인 법무법인 화백을 설립했다. 1999년에는 사법개혁추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2003~2007년 대한중재인협회 회장을 지냈고, 2009년 제1회 대한민국 중재인 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