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제17회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지난주 런던 로열 페스티벌 홀 공연은 2500석이 매진됐다. 국내에서는 앨범을 사려는 사람들이 새벽부터 줄을 서고, 내년 2월로 예정된 콘서트가 일찌감치 매진됐다.
지난 주말 KBS 1TV를 통해 그의 연주를 보는 것은 즐거웠다. 음악을 모르는 사람도 누구나 조성진이 멋있고 예쁘다고...
어제 11월 9일은 119, 소방의 날이었다. 다른 주제를 이어 가느라 다루지 못한 화재와 소방에 관해 하루 늦게 이야기한다. 화재 예방이라면 맨 먼저 생각나는 말이 곡돌사신(曲突徙薪)이다. “굴뚝을 굽게 만들고 땔나무는 옮기라고 한 사람은 상을 받지 못하고 머리를 그슬리고 이마를 데며 불을 끈 사람은 상객이 된다.”[曲突徙薪無恩澤 焦頭爛額爲上客] 이 말에서 나온...
고운 최치원(857~?)이 ‘양양 이 상공에게 관급을 사양하겠다고 올린 계문’[上襄陽李相公讓館給啓]에는 걸어 다니는 시체라는 행시주육(行尸走肉)과 함께 주옹반낭(酒甕飯囊)이라는 말이 나온다. 술독과 밥주머니라는 뜻이다. 둘 다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하는 걸 일컫는 말이다. 특히 주옹반낭은 먹고 마실 줄만 알 뿐 일을 할 줄 모르는 무능한 사람을 가리킨다.
최치원은...
학문을 대강대강 하는 것을 광학(曠學)이라 하고, 아예 그만두는 것을 작철(作轍)이라고 한다. 曠은 넓은 들판, 광야와 함께 비다, 공허하다는 뜻을 가진 글자다. 배움의 길은 끝이 없다. 광학과 작철을 경계해야 한다.
공부가 얼마나 엄숙하고 치열한 일인지 잘 알게 해주는 말이 있다. “무릇 사람이 배우기를 좋아하면 비록 죽어도 살아 있는 듯하고, 배우지 않는 자는...
섭렵(涉獵)은 물을 건너 찾아다닌다는 뜻이다. 많은 책을 널리 읽거나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경험을 쌓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박섭(博涉)과 같다. 섭(涉)은 건넌다는 뜻인데, 섭세불심(涉世不深)이라고 하면 세상일에 어둡다는 말이다. 엽(獵)은 사냥하다, 추구하다는 뜻이다.
섭렵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정밀하지 못하면 그런 공부는 수박 겉핥기가 된다. 어린이들 교재인...
인간은 왜 배워야 아는 것일까. 살아가는 방법을 태어나면서 절로 아는 동물과 달리 인간은 예의도, 지식도 애써 배워야 살아갈 수 있다. 자식을 낳아 기르는 부모는 양육과 교육의 어려움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것이다.
‘중용(中庸)’에 성인(聖人)은 나면서부터 알고[生而知之], 대현(大賢)은 배워서 알고...
권학문(勸學文)으로는 주희(1130~1200)의 글이 가장 널리 알려졌지만, 진종(眞宗)황제(968~1022)와 왕안석(王安石·1021~1086)의 글도 좋다. 주목할 것은 세 명 모두가 북송(北宋·960~1127) 시대의 인물이라는 점이다.
북송은 조광윤(趙匡胤)이 개봉(開封)에 세운 나라다. 국호가 송이었으나 금(金)에 의해 쫓겨나 남하한 뒤 남송과 구별하기 위해 북송이라 부르게 됐다. 송은...
학생은 문자 그대로 배우는 사람, 공부하는 사람이다. 배움과 공부에는 다 때가 있다. 10대에는 10대의 공부를 해야 하고, 차장 시절에는 부장이 되는 공부를 해야 한다. 건너뛰거나 골라서 빼먹는 공부에는 ‘허당’이 생기기 마련이다.
배움과 공부의 시간은 많고 긴 것 같아도 금세 사라질 만큼 짧고 적다. 어제가 여름이었던 것 같은데 섬돌 앞 오동나무에는 벌써...
11월 3일은 학생 독립운동 기념일이다. 1929년 이날 광주에서 학생들이 항일 투쟁운동을 벌였다. 전남 나주에서 통학하는 기차 안에서 일본 학생들이 우리 여학생을 놀리다 말리며 항의하던 우리나라 학생들과 집단싸움을 벌였다. 일본 경찰이 불공평한 수사를 하자 광주 시내 학생들이 나서 시위를 벌였고, 점차 전국적인 학생운동으로 확산됐다.
정부는 이날을...
다산 정약용(1762~1836)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不亦快哉行]라는 연작시 20수 중 일곱 번째로 노래한 늦가을의 풍광은 이 즈음이리라. “나뭇잎은 우수수 강 언덕으로 떨어지고/우중충한 날씨에 흰 파도 넘실대는데/옷자락 휘날리며 바람 맞고 섰노라면/흰 깃을 쓰다듬는 선학과도 같으리니/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騷騷木葉下江皐 黃黑天光蹴素濤...
날씨가 일변했다. 지난주 말부터 겨울로 직행할 듯 수은주가 뚝 떨어졌다. 기온이 다시 오른다 해도 한번 꺾인 기상은 회복하기 어려우리라.
가을은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 옛날엔 일각(一刻)이 여삼추(如三秋), 맹추(孟秋) 중추(仲秋) 계추(季秋) 석 달 같다고 했다. 몹시 기다려지는 일이나 지루한 기분을 이르는 말이다. 지금은 반대로 삼추가 여일각이라고 해야 할...
선물은 받는 사람이 꼭 필요한 것을 골라서 보내야 좋다. 벗에게 보낸 짚신은 날 찾아오라는 초청장이다. 그렇게 짚신처럼 보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붉은 콩을 보내는 관습이 있었다. 상사자(相思子)라고도 부르는 콩 홍두(紅荳)다. 콩과에 딸린 늘 푸른 덩굴나무로 높이 2.5m쯤 자라며 붉은색, 자주색, 흰색 꽃이 핀다. 상사의 의미로 쓰이는 이유는 잘...
연암 박지원은 “벗은 제2의 나”라고 했다. 담헌 홍대용에게는 “그대와 나눈 대화가 10년 독서보다 낫소”라는 말도 했다. 두보가 이백을 생각하는 시에 춘수모운(春樹暮雲)이라고 한 이후 이 말은 멀리 있는 벗을 그리는 성어가 됐다.
이덕무의 이런 글은 어떤가. “만약 나를 알아주는 한 사람의 벗을 얻게 된다면, 나는 마땅히 10년간 뽕나무를 심고, 1년간 누에를 쳐...
할아버지는 손자 몰래 벽장에 홍시를 숨겼다. 그걸 할아버지 몰래 훔쳐 먹으면 정말 맛있었다. 할아버지는 모르는 척하셨지만, 모르는 척하실 바에야 미리 손자에게 나눠주면 좋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렇게 하면 철없는 손자는 홍시를 한꺼번에 다 먹지 할아버지처럼 아끼면서 홍시의 맛을 음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홍시를 먹는 것에서도 삶과 나이의 오묘함을 알 수...
홍시는 노인들이 아주 좋아하는 과일이다. 붉은 구슬 같다고 홍주(紅珠), 소의 심장을 닮았다고 우심(牛心)이라고도 부른다.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1561∼1642)의 시조 ‘조홍시가(早紅枾歌)’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반중(盤中) 조홍(早紅) 감이 고와도 보이나다/유자(柚子) 아니라도 품음직도 하다마는/품어 가 반길 이 없을 새 글로 설워하노라.”...
이회창 전 국무총리는 대통령선거에 몇 번 나왔을까? 한나라당 후보로 두 번, 무소속으로 한 번, 도합 세 번 나왔다. 1997년 15대 김대중, 2002년 16대 노무현, 2007년 17대 이명박이 각각 당선된 선거였다. 왜 이런 걸 묻느냐고? 2007년 대선 청문회에서 이회창 후보가 틀린 대답을 했던 게 기억나서다. 대선에 두 번 나왔다는 그에게 두 번이 아니라 세 번이라고 누가(아나운서?)...
너무 가난해서 종이는 물론 필기도구도 없던 시절, 모래에 나무 막대기로 글을 써서 자식을 가르친 어머니가 있다. 그런 시절엔 넓고 판판한 감잎도 필기장으로 잘 쓰였다.
중국 당나라 때 광문관(廣文館) 박사였던 정건(鄭虔·705~764)은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로 불릴 만큼 뛰어났지만 늘 가난에 쪼들렸다. 어려서는 종이가 없어 감나무가 많은 자은사(慈恩寺)라는...
아름다운 가을풍경 중 하나가 빨갛게 익은 감이다. 감잎은 또 어떤가. 붉은색 노란색이 자연스럽게 섞인 감잎은 단풍잎보다 더 멋지고 황홀하다. 다음은 조선 전기의 문신 강희맹(姜希孟·1424~1483)의 시. “감잎이 막 떨어지니 붉은 것이 온 성에 가득하고/뽕나무 그늘 드리워 푸른빛이 집을 숨기네.”[枾葉初稀紅滿城 桑陰重合綠藏屋] “색은 금빛 옷보다 더 좋고/맛은...
국화를 운치 있게 감상하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은가. 밤에 촛불을 이용해 꽃과 꽃의 그림자를 겹으로 완상하는 것이 선비들의 풍류였다. 천주교도로 몰려 유배됐던 고단한 선비 이학규(李學逵· 1770~1835)의 시 ‘등불 앞의 국화 그림자’[賦得燈前菊影]를 보자. “등불이 국화 남쪽에 있으면 그림자는 북쪽/등불이 국화 서쪽에 있으면 그림자는 동쪽/상 하나에 책 몇 권과...
“가을 잎은 서리 앞에서 떨어지고, 봄꽃은 비 온 뒤에 붉어진다네”[秋葉霜前落 春花雨後紅] 한문 초학자들을 위해 5언으로 된 대구(對句)를 뽑아 묶은 ‘추구(推句)’에 나오는 말이다. ”가을이라 서늘하니 누런 국화 피고/겨울이라 추우니 흰 눈이 내리도다”[秋涼黃菊發 冬寒白雪來]라는 대구도 있다.
그렇게 국화가 핀 가을에 꽃과 사람의 품격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