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로 백성은 양이요 벼슬아치는 목자(牧者)라고 했다. ‘牧’은 소를 뜻하는 ‘牛(우)’와, 몽둥이 든 손을 그린 ‘攵(복)’이 합쳐져 ‘소나 가축을 치다’는 뜻이 된 글자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牧은 소를 기르는 사람을 뜻한다’고 돼 있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牧民心書)’는 벼슬아치들이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을 기록한 책이다.
그런데 양은 열...
을미년 양의 해를 보내려니 늦었지만 양과 관련된 말을 살펴보고 싶어진다. 삼양개태(三羊開泰) 독서망양(讀書亡羊) 자양조우(自羊徂牛)처럼 이미 언급한 것은 제외한다.
양이 들어간 성어에는 좋은 말이 적어 보인다. ‘속은 양인데 거죽은 호랑이’라는 양질호피(羊質虎皮)는 표리부동(表裏不同)과 같다. ‘겉은 호랑이인데 속은 양’이라고 할 수도 있다. ‘빛 좋은...
서울지하철 3호선에 하트 스티커가 등장했다. 바닥에 그려진 하트 모양의 오렌지색 스티커에 발을 올려놓고 앉으라는 표지이다. 다른 승객들에게 피해를 주는 쩍벌남(다리를 쩍 벌리고 앉은 남자) 다꼬녀(다리를 꼬고 앉은 여자)가 없게 하려는 것이다. 다꼬남이나 쩍벌녀도 물론 있지만, 하트 스티커를 보면 저절로 얌전하게 앉게 된다.
하트 스티커는 불에 타지 않는...
12월 10일은 세계 인권의 날이다. 유엔총회는 1948년 오늘 세계 인권선언을 채택했다. 제1조는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서 평등하다.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서로에게 형제의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고 돼 있다. 이어 1950년 12월 4일 유엔총회는 12월 10일을 세계 인권의 날로 정했다.
인류가 인간의 천부적 권리에 눈을 뜬...
12월 6일자에 이야기한 빈천교인(貧賤驕人)은 가진 게 없어 오히려 당당한 선비를 말할 때 쓰는 성어다. 이와 달리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지만 무능하거나 제 욕심만 챙기는 벼슬아치들을 낮춰 부를 때 육식자비(肉食者鄙)라고 한다. ‘고기 먹는 자들은 식견이 낮고 속되다’는 뜻이다. 춘추좌씨전 노장공(魯莊公) 10년 기사에 나오는 말이다.
제환공의 군대가 노나라를...
지난주에 재미있는 기사를 읽었다. 국무회의에서 행정자치부 장관과 서울시장이 설전을 벌였다는 보도였다. 초점은 서울시가 내년부터 만 19~25세의 청년 3000명에게 매달 50만원씩 보조금을 지원하는 제도였다. 12월 1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은 지자체의 임의 복지사업인 이 제도를 범죄로도 규정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범죄이긴 하지만) 처벌조항이...
눈은 오지 않지만 눈 이야기를 더 해보자. 눈에 관한 글로는 독문학자였던 수필가 김진섭(金晉燮•1903~?)의 ‘백설부(白雪賦)’가 인상 깊다. 1939년에 발표된 이 글은 “백설이여, 잠시 묻노니 너는 지상의 누가 유혹했기에 이곳에 내려오는 것이며, 또 너는 공중에서 무질서의 쾌락을 배운 뒤에 이곳에 와서 무엇을 시작하려는 것이냐! 천국의 아들이요, 경쾌한 족속이요...
중국의 4대 기서(奇書) 가운데 하나인 수호지(水滸誌)에 송강(宋江)이 입춘 무렵 휘하 두령들과 함께 눈 구경을 하는 대목이 나온다. 봄맞이를 하려고 나섰는데 큰눈이 내린 모양이다. 두령 가운데 지문성(地文星) 성수서생(聖手書生) 소양(蕭讓)이 눈송이는 모양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며 이렇게 말한다.
“한 잎은 봉아(蜂兒), 두 잎은 아모(鵝毛), 세 잎은 찬삼(攢三), 네...
중국 전국시대에 위문후(魏文侯)는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에게 글을 배우고, 도가 계통의 인물인 전자방(田子方)을 스승처럼 대한 사람이다. 그가 수레를 타고 전자방과 함께 이동할 때 태자 격(擊)이 수레에서 내려 걸어서 따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전자방은 수레에 앉은 채 태자에게 자기 대신 할 일을 부탁했다. 기분이 상한 태자가 “부귀한 사람이 남을 업신여깁니까...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許生傳)’은 그의 실학사상이 집약된 한문소설이다. 묵적골의 선비 허생은 10년 계획으로 공부를 하다가 아내의 성화에 중단하고 돈 벌이에 나선다. 한양 갑부 변씨(卞氏)를 찾아가 빌린 만금으로 과일 말총 등을 매점매석(買占賣惜)해 큰돈을 벌었다.
그 돈으로 도적들을 모아 무인도로 들어간 허생은 농사를 지어 수확한 양곡을 일본 나가사키...
가난을 말하는 성어에 삼순구식(三旬九食)이 있다. 따로 이야기하려고 어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순(旬)은 열흘이니 삼순은 한 달인데, 한 달에 겨우 아홉 번 밥을 먹는다는 뜻이다.
‘설원’ 입절(立節)편에 공자의 손자 자사(子思) 이야기가 나온다. ‘중용’을 지은 인물이다. 그가 위(衛)나라에 살 때 거친 옷에 겉옷조차 없었고 먹는 건 스무 날에 아홉 끼가 고작이었다....
12월 3일은 소비자의 날이다. 우리는 1997년에 이날을 소비자의 날로 정했지만, 대부분의 국가는 케네디 미 대통령이 1962년 ‘소비자 보호에 관한 특별교서’를 발표한 3월 15일을 소비자 권리의 날로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가난한 이들은 소비자의 권리는커녕 생존 자체가 문제다. 가난에 관한 성어는 참 많기도 하다. 이미 이야기한 천한백옥(天寒白屋) 가도벽립(家徒壁立)...
중국 한(漢)나라 때의 문인 사마상여(司馬相如•BC 179~BC 117)는 고향 쓰촨(四川)성에 있을 때 임공(臨邛)이라는 곳의 부호 탁왕손(卓王孫)으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그 집에 갔다가 남편과 사별하고 친정에 와 있던 탁왕손의 딸 탁문군(卓文君)에게 첫눈에 반해버렸다. 그는 탁문군을 사로잡을 생각으로 ‘봉구황(鳳求凰)’이라는 거문고 곡을 연주했다. 그녀도 사마상여에...
12월이다. 날마다 조금씩 더 추워지는 이 겨울에 집 없는 이들이나 집이 있더라도 너무 허술한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까. 천한백옥(天寒白屋)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추운 날의 허술한 초가집, 그러니까 엄동설한에 떠는 가난한 생활을 뜻하는 말이다.
이 말은 오언시에 능했던 당 시인 유장경(劉長卿)의 ‘봉설숙부용산(逢雪宿芙蓉山)’에 나온다. 눈을 만나 부용산에서...
제환공은 궁궐 뜰에 정료(庭燎)를 늘 밝혀 놓도록 했다. 원래는 나라에 대사가 있을 때만 밤새 횃불을 켜두는데, 선비들이 밤중에라도 찾아오라고 상징적으로 불을 밝혔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록 찾아오는 이가 없었다.
어느 날 구구법을 잘한다는 사람이 왔다. 김이 샌 제환공이 “구구법이 정치에 무슨 소용이 있나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구구법을 자랑하러 온 게...
유비(劉備)와 제갈량(諸葛亮)은 물과 고기처럼 잠시도 떠날 수 없는, 이른바 수어지교(水魚之交)의 관계였다. 둘이 갈수록 친밀해지는 것을 관우 장비가 불평하자 유비는 “나에게 공명이 있는 것은 고기가 물을 가진 것과 같으니 다시는 불평하지 말게”[孤之有孔明猶魚之有水也 願諸君勿復言]라고 타일렀다. 수어지교를 군신수어(君臣水魚)라고도 한다.
유비가...
좋은 선비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춘추시대 주(周)의 위공(威公)이 영자(寗子)에게 물었다. 영자는 “궁한 자는 현달시켜 주고 끊어지려는 자는 존속시켜 주고 넘어지려는 자는 일으켜 주면 사방의 선비들이 몰려옵니다.”라고 대답했다. 선비를 얻고도 잃는 경우는 반드시 틈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어 영자는 이렇게 말했다. “선비가 바르게 자리 잡고...
소설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 ‘은마는 오지 않는다’를 발표한 안정효씨(74)는 원래 코리아타임스 기자이며 탁월한 영어 번역자였다. 그를 기자로만 알았다가 소설을 읽고 깊은 내공에 놀란 일이 있다. 그는 ‘한 마리의 소시민’(1977)이라는 장편 에세이도 냈다. 도시인의 비루하고 서글픈 삶과, 일상의 애환을 다룬 글이다.
그 제목을 알고부터 내가 한 마리의...
중국 춘추시대에 천자는 미약하고 제후들은 종주국에 복종하지 않았다. 그런 제후국 중 왜 어떤 나라는 흥하고 어떤 나라는 시들어 망했나? 간단히 말하면 어진 이를 임용했느냐 그러지 못했느냐로 운명이 갈렸다. 백성의 마음을 따르지 않고 어진 이를 멀리한 나라는 망할 수밖에 없었다.
‘설원(說苑)’의 존현(尊賢) 편에 이런 말이 있다. “국가는 어진 이를 임용하면...
중국 전국(戰國)시대에 연(燕) 소왕(昭王)은 거의 망한 나라를 수습하고 스스로 몸을 낮추어 어진 이들을 불러들였다. 그는 곽외(郭隗)라는 현인을 찾아가 제(齊)나라에 당한 수모를 설욕할 방법을 물었다. 곽외는 이렇게 말했다. “몸을 굽혀 남을 모시고 북면(北面)하여 학문을 배우면 자신보다 100배 나은 이가 찾아오는 법입니다.” 왕은 원래 남면(南面)을 하고 앉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