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한 마리의 소시민’이 되어

입력 2015-11-2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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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소설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 ‘은마는 오지 않는다’를 발표한 안정효씨(74)는 원래 코리아타임스 기자이며 탁월한 영어 번역자였다. 그를 기자로만 알았다가 소설을 읽고 깊은 내공에 놀란 일이 있다. 그는 ‘한 마리의 소시민’(1977)이라는 장편 에세이도 냈다. 도시인의 비루하고 서글픈 삶과, 일상의 애환을 다룬 글이다.

그 제목을 알고부터 내가 한 마리의 소시민임을 실감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주로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거나 거리를 보행할 때다. 특히 횡단보도를 가득 점령하다시피 무질서하게 정차한 버스 사이를 비집고 길을 건널 때 그런 기분이 든다.

요즘 나는 지하철로 여의도역까지 와서 마을버스로 갈아타고 출근을 한다. 매일 접하는 버스 정거장의 교통시스템은 정말 대단하다. 몇 번 버스가 몇 분 후에 오는지, 주변에 무슨 시설이 어디에 있는지 다 알 수 있고, 눈이 어두운 사람들을 위해 안내판의 글자를 키우거나 색깔을 바꿔 볼 수도 있게 해놓았다.

그렇게 훌륭한 교통정보시스템과 반대로 나는 나날이 소시민→소소시민→소소소시민이 돼가는 기분이다. 버스 기사들은 승객을 별로 배려하지 않는다. 정거장에는 차를 세우는 위치가 그려져 있지만 지키는 기사는 거의 없다. 먼저 온 버스가 뒤차를 배려하지 않고 적당히 미리 서 버리는데, 승객들은 서둘러 타려고 저 뒤에 선 버스까지 우르르 뛰어간다.

기사들이 앞차가 떠날 때를 기다려 정거장 맨 앞까지 와서 문을 열어주면 좋겠지만, 이리 닫고 저리 뛰는 승객들도 문제다. 어디까지나 시민의 품위를 지켜 버스가 제자리에 와 설 때까지 기다리면 어디 덧나나? 나는 오기로 차가 더 앞에 오기를 기다리다가 그냥 가버리는 바람에 버스를 놓친 적이 몇 번 있다.

버스에 탄 뒤에는 더 문제다. 승객이 자리에 앉거나 말거나 버스는 내달린다. 흔들리는 몸을 겨우 가누며 자리에 앉다 보면 나도 이렇게 어지러운데 더 나이 드신 분들은 오죽할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기사들은 그렇게 해도 승객들이 다 잘 적응하고, 사고도 나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것 같다. 그들은 왜 승객 수나 안전에 관심이 없을까? 운행시간에 쫓기나? 아마 승객이 많건 적건 매달 일정한 월급을 받기 때문인 것 같다. 손님을 더 많이 태울 필요도 없고 안전에 신경 쓸 겨를도 없다.

젊었을 때는 기사에게 따지거나 천천히 가라고 하고, ‘시민 여러분!’ 그러면서 ‘선동’하는 글도 썼지만 이제 그러는 것도 싫다. 확실하게 소시민이 되어가는 중이다.

버스 차내에는 기사 모집 광고가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모집인원이 ‘0명’이다. ‘○명’이라고 기호로 표시해야 할 곳에 아라비아 숫자를 써놓은 것이다. 우리 사회가 한자를 많이 사용할 때에는 약간 명을 모집한다고 ‘若干名’으로 써놓곤 했다. 그런데 ‘若千名’으로 잘못 쓰는 바람에 약 천 명이나 모집하는 게 됐다는 만화를 본 적이 있다.(그게 아니던가? 한자를 잘 모르는 구직자, 요즘 말로 취준생이 지 멋대로 약 천 명을 모집한다고 읽었던가?)

하여간 그 구인광고를 보면서 나는 ‘흥, 0명을 모집하는데 누가 지원하겠어?’ 하고 속으로 비웃는다. 그러나 혼자 흉보고 트집이나 잡을 뿐 대놓고 말은 하지 않는다. 한 마리의 소시민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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