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칼럼] 찬 대통령에 ‘언 국무회의’

입력 2015-12-08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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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지난주에 재미있는 기사를 읽었다. 국무회의에서 행정자치부 장관과 서울시장이 설전을 벌였다는 보도였다. 초점은 서울시가 내년부터 만 19~25세의 청년 3000명에게 매달 50만원씩 보조금을 지원하는 제도였다. 12월 1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은 지자체의 임의 복지사업인 이 제도를 범죄로도 규정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범죄이긴 하지만) 처벌조항이 없어 (행자부가 지원하는) 교부세로 컨트롤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에 대해 박원순 서울시장은 정책의 차이를 범죄로 규정하는 건 지나친 발언이라고 반발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도 고용부의 ‘취업성공 패키지’와 중복된다고 말했고, 최경환 경제부총리 역시 박 시장을 비판했다. 박 시장은 여러 국무위원에 의해 ‘조리돌림’을 당한 셈이다.

결국 회의를 주재한 황교안 국무총리가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고 자리를 수습했다고 한다. 이날 국무회의에서는 지자체가 사회보장기본법상의 사회보장제도를 신설·변경할 때 정부와 협의·조정 절차를 거치지 않을 경우 지방교부세를 감액토록 한 지방교부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뒤끝은 길다. 곧바로 정 장관의 발언에 대한 시위와 항의가 벌어졌다. 정 장관은 범죄라고 언급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고, 행자부는 국무회의 발언 초록을 공개했다. 이를 읽은 박 시장 지지자들은 정 장관의 발언이 내용상 범죄라고 말한 것과 다름없다면서 이번엔 국무회의 발언을 공개한 것을 문제 삼고 나섰다. 국무회의 녹취록은 국가기록법상 공개되면 안 되는 비밀문서라는 것이다.

이 와중에 서울시보다 먼저 이런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해 ‘포퓰리즘’ 논란을 유발한 경기 성남시의 ‘청년배당’제도가 부실 논란에 휩싸였다. 수의계약으로 단 3개월간 정책연구를 하면서 배당금 조달방안 등 중요한 재정대책을 다루지 않았으며 1인당 배당금 규모와 수혜대상 등에 대한 의식 조사도 고작 시민 10여 명을 대상으로 한 게 전부였다고 한다(한국일보 12월 8일자 보도).

이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일단 돈을 주기 시작하면 없애지 못한다. 정부와 지자체 간의 알력과 갈등도 심화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제도에 반대하지만, 이 글의 초점은 사실 그게 아니다. 국무회의에서 토론이든 설전이든 모처럼 서로 다른 의견이 오갔다는 게 신기한 것이다.

국무회의의 의장은 대통령, 부의장은 국무총리다. 그런데 이번 설전은 출국 중인 대통령 대신 황 총리가 주재한 회의에서 벌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하는 자리였다면 그런 풍경을 볼 수 있었을까. 한기(寒氣)와 냉풍(冷風)이 늘 감도는 대통령 앞에서 무슨 토론과 설전이 벌어지겠는가. 바늘 하나 떨어져도 다 알 수 있을 만큼 적막하고 긴장된 회의장에서 국무위원들은 대통령 말씀이 땅에 떨어질세라 받아 적기 바쁠 뿐이다.

얼마 전에 ‘박근혜의 우산’이라는 영상이 많은 사람에 의해 회자됐다. 비가 오자 비서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을 기다려 우산을 함께 쓰고 가는 오바마 미 대통령과 달리, 박 대통령은 수행원이든 영접인사든 주변을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우산을 쓰고 있다. 의전상의 문제를 들어 박 대통령을 두둔한 사람도 있었지만 박 대통령이 평소 소통과 공감의 자세를 보였다면 우산 논란도 없었을 것이다.

법안 통과가 절실하다면, 개혁입법이 그토록 중요하다면 왜 여든 야든 만나서 설득하고 대화하고 토론하지 않는가. 여당 지도부만 불러 윽박지르지 말고 국민을 내 편으로 만들어 그 힘으로 일을 해 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런데 전혀 그렇게 하지 않으니 “법치주의가 아니라 영치주의(令治主義)”라는 소리가 나온다.

국무회의는 ‘정부의 권한에 속하는 주요 정책을 심의하는 최고 정책심의기관’이다. 국무회의부터 살아 있는 회의, 생동하는 토론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토론이나 논쟁이 없는 회의는 일방적 지시의 받아쓰기 교실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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