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후 이승만 정권도, 그다음의 박정희 정권도 이른바 ‘이중과세(二重過歲 過:지날 과, 歲: 해 세)’, 즉 설을 두 번 쇠어 이중으로 한 해를 보내는 것을 금한다는 미명 아래 음력설을 쇠는 것을 금지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음력설을 쇠는 풍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1985년에는 설을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고쳐 부르며 하루를 휴일로...
이승만 대통령은 정치적인 이유로 대한제국 황손들의 귀국을 반대하였다. 그 후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에게 알려져 1962년 1월 26일 덕혜옹주는 51세 때 대한민국으로 영구 귀국하게 되었다. 일본으로 떠난 지 38년 만이었다.
귀국 직후 서울대병원에 입원했고, 그해 2월 28일 ‘이덕혜’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하였다. 1967년 5월...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은 13일 서울 마포구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에서 ‘이승만ㆍ트루먼ㆍ박정희 동상건립추진모임’으로부터 미리 제작해 둔 높이 4.2m의 박 전 대통령 동상 기증 증서를 받았다.
기념재단은 이날 기증 증서를 받은 후 조만간 서울시에 동상 설치 승인을 정식으로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같은 시간 동상 설치에 반대하는 단체와...
홍 대표는 이어 “다음 주 최고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여의도 당사에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전 대통령, 조국 근대화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민주화의 아버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진을 걸겠다”고 공언했다.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탈당으로 인한 TK(대구·경북)민심 이탈 조짐을 잠재우고 동시에 박정희 마케팅을 통해 보수지지층 결집을 시도하려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대통령 직선제 도입(1차) △이승만 대통령 3선을 위한 개헌(2차) △4·19 혁명 후 내각책임제로 전환(3차) △반민주행위자처벌에 관한 부칙조항 삽입(4차) △5·16쿠데타 발생 후 대통령제로 전환(5차) △박정희 대통령 3선을 위한 목적으로 단행·5차 개헌 때 3선을 금지한 조항 철폐·대통령의 재임을 3기까지 가능하게 함(6차) △유신체제 전환을 위한...
최대 쟁점은 △진화론을 부정하는 한국창조과학회에서 활동한 이력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미화와 1948년 건국론 설파 등 이른바 뉴라이트 역사관 △중소기업·소상공인 분야의 이해도 부족 등이다. 여기에 후보자의 병역특례 허위복무 의혹, 부인의 포항 아파트 분양권 다운계약서 탈세 의혹, 자녀 3명 중 2명의 이중국적, 장남의 위장전입 의혹 등 신변과 관련된...
박 후보자는 또 1948년 정부수립을 건국으로 보고 이승만 정부 당시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립을 위해 독재가 불가피했다고 쓴 연구보고서가 드러나 뉴라이트 사관 의혹을 받아왔다. 또 "과도한 노동운동, 책임을 망각한 과도한 민주주의, 노력 이상의 과도한 복지 등의 여파로 우리나라는 저성장기로 접어들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 기술된 지역신문 기명...
한반도 분단 이후 북한에서는 형식적이지만 토지개혁을, 휴전 이후에는 집단 농장으로 토지개혁을 폐기 처분했다”면서 “이승만도 조봉암의 주도 아래 1950년 농지개혁을 실시했고, 당시 65% 소작농이 자작농으로 신분이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농지개혁은 내 나라, 내 땅을 지키겠다는 기운으로 이어졌고, 6.25전쟁에서 목숨을 지키는 성과를 이뤘다”며...
이는 박 장관 후보자가 2015년 포항공대 교수 재직 당시 이승만 정부가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립을 위해 독재가 불가피했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해 이념 논란을 우회적으로 해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에서 근대화의 공헌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며 “하지만 그 이면에 어두운 인권이 해석되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에 대해서는...
아닐 기자회견에서는 이승만 독재와 민주주의를 폄하하는 교수시절 칼럼과 보고서에 대해 박 후보자의 역사관과 이념관이 쟁점이 됐다. 박 후보자는 지난해 기고한 지역신문 기명 칼럼에서 "과도한 노동운동, 책임을 망각한 과도한 민주주의, 노력 이상의 과도한 복지 등의 여파로 우리나라는 저성장기로 접어들고 있다"고 쓴 바 있다. 또 1948년 정부...
트럭에 실려온 사람들은 1949년 이승만 정부가 좌익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전향시켜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취지로 만든 ‘국민보도연맹’의 회원들. 하지만 이중에는 정부가 조직을 키우기 위해 식량을 미끼로 가입시킨 사상과 무관한 국민과 어린아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 정부는 전투와 관련 없는 지역에서 이들을 이유 없이 대량...
이에 류석춘 한국당 혁신위원장은 "국가가 성립하려면 국민·영토·주권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기준에서 1948년 건국이 자명하다"라며 "문재인 대통령 본인도 19대 대통령이라고 쓰는 이상 1948년 취임한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인데 1919년이 건국절이라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해...
그는 또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이 1대 대통령"이라며 "문 대통령 본인도 ‘19대 대통령 문재인’이라고 쓰는 이상 이승만 대통령을 초대 대통령이라고 인정하면서 1919년을 건국한 해라고 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건국은) 사람으로 치면 사람이 만들어지는 계기고 생물학적으로 임신하는 것"이라며...
대한민국 19대 대통령 문재인 역시 김대중, 노무현만이 아니라 이승만, 박정희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모든 대통령의 역사 속에 있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의 치유와 화해, 통합을 바라는 마음으로 지난 현충일 추념사에서 애국의 가치를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이제 지난 백년의 역사를 결산하고, 새로운 백년을 위해 공동체의 가치를 다시 정립하는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심의위원회의 만장일치 찬성으로 지난해 6월 발행이 결정된 바 있다. 그러나 심의위에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측근이 참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정성 논란이 일었다. 시민단체의 반대도 컸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전직 대통령 퇴임 후에 기념우표를 발행한 적은 없다. 역대 대통령의 탄생 기념우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뉴라이트 연합 공동대표와 연세대 이승만 연구원장을 지냈고 박정희 대통령 기념재단 이사와 박정희연구회 회장을 역임했다.
아울러 대표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염 의원은 강원 태백·횡성·영월·평창·정선을 지역구로 둔 재선의원이다. 지난 대선 당시 캠프 전략기획본부장을 지냈고, 이후 당 사무총장을 역임하다 비서실장에 임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