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태조에게는 무려 25명의 왕자가 있었고, 제16비 소생인 데다 출생 연도도 한참 뒤라는 점에서 광주원군의 왕위 계승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고 봐야 한다. 때문에 왕규는 반역을 도모할 수밖에 없었다.
왕규의 1차적 제거 대상은 혜종이었다. 왕의 침실에 자객을 잠입시켜 시해하려 했으나 왕이 깨어나는 바람에 실패했다. 이후 왕규는 직접 도당을 이끌고 왕의 침실...
이 중 정종(定宗)과 광종, 두 아들이 왕위에 올랐으며, 다시 광종의 아들인 경종, 경종의 아들인 목종이 즉위하여 국초 고려의 왕위는 그녀의 자손들로 계승되었다. 또 맏딸 낙랑공주는 신라 경순왕 김부와 혼인하여 고려의 후삼국 통일을 더욱 굳건히 하였다.
이것이 과연 우연히 이루어진 일일까? 태조의 후비들은 저마다 태조 이후의 대권을 꿈꾸었다. 이를 위한 후비들...
각종 반란으로 혜공왕의 왕권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만월태후는 성덕대왕 신종을 통해 혜공왕이 혈통적으로 중대 왕실의 정통 왕위 계승자임을 내세워 어린 아들의 무사안위를 기원한 것이다. 하지만 만월태후의 간절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혜공왕은 왕위에 오른 지 16년 만인 780년, 이찬 김지정이 일으킨 반란 와중에 왕비와 함께 피살되고 말았다.
이들은 이날 왕위 외교부장을 만나고, 5일에는 중국 국제문화연구소에서 전문가 간담회를 여는 데 이어 공산당 대외연락부와의 면담 자리를 가진다. 6일에는 김장수 주중 한국대사와 전국인민대표대회 외사위원회와 각각 면담을 하고 특파원 간담회를 여는 등 2박3일간 중국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2013년 도행역시(倒行逆施), 순리를 거슬러 행동하고, 2014년 지록위마(指鹿爲馬), 사슴을 말이라고 해 2015년 혼용무도(昏庸無道), 세상이 어지럽고 무도하다는 탄식이 높아지더니 2016년엔 군주민수(君舟民水), 백성이 화 나면 왕위도 뒤집는다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어디에서 무엇으로 희망을 찾을 것인가. 날짜가 언제든 올해 우리는 대선이라는 국가 대사를 통해...
신라 김 씨 왕계의 유일한 성골 왕위 계승자 삼맥종(박형식) 역시 아로와 운명적인 첫 만남을 갖는다. 귀족들의 위협과 어머니 지소태후(김지수 분)의 섭정에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떠돌수 밖에 없었던 삼맥종은 저잣거리에서 야설을 읊고 있는 아로와 마주한다.
늘 불면증에 시달리던 삼맥종은 야로의 야설 읊는 소리에 깜빡 잠이 들고 자신을 잠재운 야로에게...
아로는 함께 있으면 든든한 무명과 자신의 앞에서 눈물까지 보이는 신라 김 씨 왕계의 유일한 성골 왕위 계승자 삼맥종(박형식) 사이에서 묘한 감정을 느낀다.
한편, 왕권 강화를 위해 진흥왕의 모후 지소(김지수)는 화랑 창설을 결심한다. 이러한 와중에 서역을 떠돌다 자신의 탄신연에 맞춰 얼굴 없는 왕 삼맥종이 신국으로 돌아온다. 우연히 왕의 얼굴을 보게 된...
981년 경종이 돌잡이 아들을 남기고 세상을 뜨면서 성종이 왕위를 계승했다. 성종은 경종의 매부이자 광종의 사위였기 때문이다. 2년 뒤 그녀가 죽자 성종은 그녀에게 ‘신정왕태후’라는 시호를 내리고 수릉(壽陵)에 매장하였다. 또한 태묘를 짓고는 태조와 함께 모셨다. 사실 태조의 제1비는 신혜왕후이므로 태묘에 들어가야 할 것도 신혜왕후였다. 그러나 성종이...
이에 태조는 임금이 입는 옷을 궤짝에 넣어 왕후에게 주었고, 왕후가 그것을 대광(大匡) 박술희(朴述熙)에게 보여 그의 후원으로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다.
이것이 ‘고려사’의 서술인데, 과연 이 설화는 얼마나 사실일까? 우선 왕후의 집안이 그렇게 보잘것없었을까? 나주는 물산이 풍부할 뿐 아니라 서해와 영산강을 통해 중국 및 개성과 연결되고, 동남쪽으로는...
왕위에 오른 연산이 곧바로 패악의 군주로 돌아선 건 아니다. 즉위 후 10년간은 대체로 평범한 왕이었다. 그러나 서서히 자신의 본색을 드러냈다. 자신의 의견과 다른 대간과 신료들에 대해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영화 ‘간신’에서도 사간원들이 용서를 청할 때 연산은 “나도 역사에 아름답게 기록되지 않으리라는 걸 잘 아오. 허나 위를 능멸하는 풍습은 고치지 않을 수...
그전까지 일곱 살이라는 어린 나이는 왕위 계승의 결격사유였다. 신라에서 ‘왕’을 뜻하는 ‘이사금(尼師今)’이라는 호칭이 잇금, 즉 치아를 많이 가진 자를 의미할 정도로 신라의 왕위 계승에서 연령은 중요했다.
더구나 진흥왕은 왕의 아들이 아니었다. 진흥왕의 아버지는 입종갈문왕으로 법흥왕의 동생이었다. 이에 진흥왕이 법흥왕의 조카로 왕위를 계승했다고...
새 국왕은 지난달 88세를 일기로 서거한 푸미폰 아둔야뎃 전 태국 국왕(라마 9세)의 장남으로 전 국왕이 서거한 지 50일 만에 왕위 계승을 완료했다. 국왕 부재가 길어지는 이례적인 상황이었으나 우려했던 혼란이 일어나지 않아 현지에 진출한 기업들은 안도하는 분위기다.
1일 밤 와치랄롱꼰 왕세자는 과도의회격인 국가입법회의(NLA)의 폰펫치 위칫촐라차이 의장을 만나...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 지난달 13일 서거한 가운데 와치랄롱꼰 왕세자는 애도하는 의미에서 그동안 왕위 승계를 미뤄왔다.
태국의 현 헌법은 국왕이 서거하고 후계자가 있으면 정부가 이를 의회에 통보하고 의회가 차기 국왕을 추대하도록 돼 있다.
쁘라윗 왕수완 부총리는 “이날 국가입법회의(NLA)에 새 국왕 임명안을 제출했다”며 “NLA가 하루나 이틀 안에 새...
평온한 시절 같았으면 왕위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왜란 때 분조(分朝)를 이끌며 종묘사직을 지켜 냈다. 선조가 갑자기 죽는 바람에, 인목왕후의 영창대군을 제치고 천신만고 끝에 조선의 19대 임금에 오른다.
실제 광해군은 서인과 남인 세력이 결탁해 권력을 옥죄어 옴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결국 인조반정으로 권력을 내준 광해는 강화로 유배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처음 화폐에 등장한 것은 1953년 왕위를 승계 받으면서부터이다. 당시 나이가 27세에 불과했기 때문에 처음 화폐에 등장한 여왕의 모습은 젊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흐르는 세월 앞에 여왕도 어쩔 수 없이 젊음을 잃어가면서 일부에서는 화폐에 실린 여왕의 초상이 실제 모습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여왕의...
그런 그가 왕위에 오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는 자신의 개혁적 이상을 실현하려면 왕권부터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조는 우선 궁궐에 규장각을 설치하고 그곳에 신분이나 붕당에 얽매이지 않는 참신한 인재들을 대거 등용한다. 특히 박제가·이덕무 등 서얼 출신을 발탁하는 파격 인사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들은 정조의 개혁을 구현할 새로운 세력으로...
일본 왕위 승계 서열 5위였던 그는 전쟁 당시 군부를 비판하고, 이후 헌법이나 역사문제에 관해서도 자유주의적 견해를 나타내 주목을 받았다. 전쟁에서 일본군의 잔학행위를 접한 그는 이후 장교들에게 “약탈·폭행을 하면서 무슨 ‘황군(皇軍)’인가. 일반 민중을 괴롭히면서 ‘성전(聖戰)’이라니 무슨 말이냐”라며 반성을 촉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우디는 모하메드 빈 살만 제2 왕위 계승자가 지난 4월 경제 구조 개혁안인 ‘사우디 비전 2030’을 발표하며 저유가의 타격을 줄이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사우디의 국부펀드 조성을 맡은 관계자는 “이번 펀드가 ‘사우디 비전 2030’을 실행하는 데 기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전 세계 투자자들이 매력을 느낄만한 펀드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푸미폰 국왕은 70년간 왕위에 있으면서 세계 최장수 재위 기록을 갖고 있었으며 재위 기간 19차례의 쿠데타가 일어난 혼란한 정치 상황에서도 중심을 지켜왔다. 평생 소외된 빈민과 농민을 찾아다니고 왕실 재정을 풀어 이들을 지원해 그 어느 군주보다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특히 푸미폰 국왕 서거로 탁신 친나왓 전 총리와 반대파 사이의 갈등으로...
◆ 태국 푸미폰 국왕 서거…'70년 최장기 재위'
세계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왕위를 지킨 푸미폰 아둔야뎃 태국 국왕이 13일(현지시간) 사망했습니다. 몇 년째 건강이 좋지 않던 푸미폰 국왕은 최근 혈액투석과 척수액 제거에 필요한 관을 교체한 뒤 상태가 나빠졌습니다. 재임 기간 동안 19번의 쿠데타와 20번의 개헌을 겪은 푸미폰 국왕은 격변기마다 나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