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과 건설부 장관을 지냈고, 김대중 정부 말에서 노무현 정부 초로 이어지는 2002~2006년 한국은행을 이끌었다.
그는 “진정한 개발을 위해서는 필요에 따라 성장 우선 정책과 안정 우선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경제철학을 갖고 있다. 성장과 안정을 대립되는 개념으로 보지 않는 경제철학 기조를 지닌 것이다.
그래서인지 박 전 총재는...
전두환 정권 때인 1984년 대통령 공보비서관을 시작으로노태우, 김영삼 정부때까지 청와대에서 역대 대통령을 보좌했다. 김영삼 정부에서 환경부 장관을 끝으로 공식에서 물러났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후에는 여의도 정치권으로 자리를 옮겨 한나라당 총재정무특보, 여의도연구소장을 맡는 등 여권의 전량통으로 성장했다.
2000년 16대 총선 때는 한나라당...
이에 앞서 전두환 전 대통령은 형 기환씨가 노량진 수산시장 운영권을 강탈한 혐의로, 동생 경환씨가 새마을본부 회장을 맡아 공금 7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각각 구속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6공 황태자’라 불린 노 전 대통령의 처사촌 박철언 전 의원이 슬롯머신 업자에게 6억원을 받는 등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
최근 부인과 별거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위이다.
특히 최태원 회장과 노 전 대통령의 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관장이 결혼한 당시에는 이동통신사업자 선정시기였다. 이동통신사업자에 SK텔레콤이 선정되면서 특혜시비가 일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SK 외에도 동방유량(현 신동방그룹)과도 사돈관계를 맺는 등 재계와...
박 후보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방문에 대해선 “노 전 대통령은 편찮으셔서 못 찾아뵙고, 전 전 대통령은 지방에 계셔서 일정을 못 잡았다”면서 박 후보가 조만간 전 전 대통령을 방문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김 의원은 그러면서 “역풍을 우려해 누구는 찾아뵙지 못하는 작은 정치를 할 때가 아니다”라며 “박 후보가 대한민국 모두를 보듬어 안고 가겠다는...
그는 또 “남북한이 6·25전쟁으로 분단돼 있기 때문에 동북아 평화가 가장 큰 문제인데 이명박 정부 들어와 악화됐다”며 “특히 남북관계는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보다 못하다. 정상회담은커녕 당 국자 회담도 못한 상황으로 이렇게 악화시킨 채 임기가 끝나면 역대 대통령 중 남북관계를 가장 악화시킨 대통령으로 남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남북 교류가...
'통석(痛惜)의 념(念)'이란 일본 아키히토 일왕이 1990년 당시 방일한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과거사와 관련해 표현한 말이다. 하지만 진정성 여부와 관련해 논란이 제기됐던 말이기도 하다.
최근 독도를 방문한 것과 관련해선 "2~3년 전부터 생각한 것"이라면서 "즉흥적으로 한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일본과 셔틀외교는 하지만 일본 국회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은 골프를 좋아해 골프삼매경에 빠졌으며,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3년 청남대에 설치된 조깅코스에서 2km씩 조깅을 즐겼다.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3년 8월 여름 휴가기간 동안 이곳에서 결심을 굳혀 ‘금융실명제 실시에 관한 대통령 긴급명령’을 발표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휴가기간 동안 이곳에서 자신의 국정운영 철학을 정리해 연설원고를 직접...
박정희 정권에서 의료보험제를 도입했고 노태우 정권에선 보건사회부 장관을 거쳐 90년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발탁됐다.
김 위원장은 이 즈음 개혁성향이 강한 재벌개혁론자로 유명세를 떨쳤다. 그는 1987년 헌법 개정 때 헌법개정위원장으로서 헌법 제119조 2항인 경제민주화 조항, 일명 ‘김종인 조항’ 입안을 주도했다. 국가의 적절한 시장 개입을 통해 재벌과 기업의...
공장내 걸려있는 박정희·김영삼·노태우·김대중 전 대통령들의 한국도자기 공장 현장 방문 모습을 담은 사진을 유심히 보기도 했다.
조 행장은 김 회장에게 “핵심기술은 한국에서 가지고 계시죠?”, “외부에서 기술인력을 뽑아가려는 데는 없습니까” 등의 질문을 끊임없이 했다.
생성 과정에서 도자기에 무늬가 있는 프린트를 붙이는 작업을 하는 직원에게도 “몇...
박정희 정권 당시에는 경제사회개발 5개년 계획 입안에 참여해 의료보험제도를 최초로 도입했고, 노태우 정부 당시에는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으로 부동산 투기억제를 위한 아파트 분양가 상한가를 도입했다.
지난 총선에서는 비대위원으로 사실상 새누리당의 총선 승리를 이끌었고, 정강정책 개정 때도 경제민주화 개념의 도입을 주도했다.
총선 이후 토사구팽...
노태우 전 대통령이 동생을 상대로 낸 회사 반환 소송에서 패소했다.
29일 대법원 1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노 전 대통령이 비자금으로 설립한 오로라씨에스의 실질적 주인이 자신이라며 동생 재우씨 등을 상대로 낸 주주지위확인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이 재우씨에게 120억원을 제공한 사실은...
법원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설립한 회사 주식을 국가가 환수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3부는 26일 노 전 대통령의 조카 호준씨와 사돈 이흥수씨가 오로라씨에스 주식에 대한 국가의 압류 및 매각을 불허해 달라며 낸 소송을 기각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노 전 대통령의 동생 재우씨는 노 전 대통령이...
민주통합당 진성준 의원이 '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의 국립묘지 안장 금지법'을 발의했다.
진성준 의원은 12일 "군사반란의 주역인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사면·복권을 받더라도 국립묘지에 안정될 수 없도록 하는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국립묘지법 5조 제4항에 따르면 내란죄 및 군사반란 등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이 420억원의 비자금이 더 있다고 스스로 밝혔다. 노 대통령은 사돈인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에게 비자금 420억원을 맡겼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냈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는 10일 신 전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부탁으로 관리하던 비자금을 임의로 처분해 부당이득을 챙긴 의혹에 대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 1일...
1964년 중앙대학교 재학시절 한일회담 반대 투쟁(6.3 항쟁)을 주도해 제적되었으며,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을 거치면서 긴급조치 9호 위반 등으로 30년간 5번이나 투옥됐다. 1974년에는 대성고등학교, 1979년엔 송곡여자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했다.
이 의원은 1989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조국통일위원장을 거쳐 1990년 민중당 창당에 참여...
그러나 1987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6·29 민주화 선언 이후 이들은 대척점에 서게 됐다.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후에는 각각 보수세력과 민주세력으로 상징되는 동시에 영남과 호남의 대표 정치인으로 거론됐다. 정치권에서는 두 사람의 관계를 ‘물과 기름’으로 비유했다.
DJ서거 후 YS는 위로 만찬 초청 의사를 밝혔고, DJ의 동교동계가 이를 흔쾌하게 수용해 눈길을...
전두환 전 대통령은 4.7%, 이승만 전 대통령 1.7%, 김영삼 전 대통령은 0.5%, 노태우 전 대통령은 0.2%에 그쳤다.
반면 역대 대통령 지지조사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50.5%로 1위를 기록했다. 노 전 대통령은 47.7%로 2위, 김대중 전 대통령은 38.2% 지지율로 3위를 보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17.0%에 불과했다.
한편 이번 조사는 전화번호임의추출(RDD) 방식으로...
보이스피싱을 당한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의 흔적은 길고도 길다. 그렇기에 사회 전체적으로 불신을 퍼뜨리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한 피해자는 “전화로 은행이다 검찰이다란 말만 들으면 끊어버린다”고 털어놨다.
보이스피싱과의 전면전을 선포한 은행과 사정당국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노태우 대통령 시절 만큼의 성과를 낼지. 결과는 두고 볼 일이다.
이 책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등 역대 대통령의 공과(功過)에 관한 시비보다는 전임자가 쌓은 업적과 후임자가 그를 계승해 문제점을 보완하면서 결국 어떻게 대한민국의 경제적 맥락을 이어왔느냐에 초점을 맞췄다.
세계적으로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대한민국 경제의 발전역사는 이들 8명의 대통령이 남긴 정책의 흐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