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불공정' 눈감는 정부 -정재석 사회생활부장

입력 2014-03-26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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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이란 말이 있다. “백성은 가난한 것에 노하기보다는 불공정한 것에 노한다”라는 송나라 유학자 육상산의 말이다.

예로부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민 불행’은 불공정에서 오며, 불공정으로 말미암아 국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추락한다고 여겼다. 이와 함께 국가는 불공정을 타파하는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공정을 바라는 국민의 감정은 달라진 게 없다. 나아가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라는 것 역시 같다.

그런데 경제대국을 꿈꾼다는 우리의 현실을 이래저래 보면 대다수 국민은 행복하지 못하다.

설문조사를 보면 국민 불행은 여실히 드러난다. 정부의 작년 조사를 보면 국민 10명중 8명이 “사회의 경제적 부의 분배가 공정하지 않다”고, 3년 전에는 응답자 10명 중 7명이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답했다.

지난달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낸 논문을 보더라도 국민이 체감하는 행복지수(33위)와 복지충족지수(31위) 등 종합복지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가운데 최하위권이다.

정부는 “국민이 행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엉뚱한 정책으로 헛발질하고, 그 헛발질에 관료는 우왕좌왕하기 일쑤고, 그런 헛발질에 애꿎은 국민만 힘없이 휘둘리기 때문이다.

정부의 각종 경제·서민정책이 ‘혼선’ ‘수정’ ‘보안’ ‘철회’를 밥 먹듯 하는 사이 국민의 삶은 피폐해지고 불안해졌다.

녹색성장 한답시고 고물상 등에 상을 주던 정부가, 작년에는 느닷없이 도시미관을 저해한다며 상가와 주거지역에서 쫓아내겠다며 법 개정까지 했다.

한마디로 고물상은 잡종지인 시 외곽에서만 하라는 것인데, 전국 고물상 7만명을 포함해 폐지 줍는 노인과 수집상 등 200만명이 폐지와 고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을 리 만무하다.

폐지 줍는 노인의 절대 다수는 70세를 넘겼고, 이들 중 기초생활수급자 또한 부지기수다. 정부 보조금으로는 월세 내기에도 빠듯한 현실을 보면 이들에겐 폐지 줍기가 끼니를 해결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또 정부는 지난해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악용하는 부정수급이 만연하다며 제1호 국정과제로 정하고 이 잡듯이 뒤졌다. 그러면서 지난 1월 100일간 7000만원의 부정수급 사례를 적발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연간 8조원 넘는 예산이 들어가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규모를 볼 때 허투루 쓰인 돈은 미미하다. 마치 가난한 사람 다수를 범죄인 취급하듯 하면서 말이다.

최저생계비 이하로 살아가는 빈곤층이 410만명 안팎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보호를 받고 있는 빈곤층은 135만명이다. 최근 4년간 20만명이나 기초생활수급자격을 상실했는데도 정부는 부정수급자 선별에만 혈안이었다.

그러는 사이 생활고를 비관해 목숨을 끊는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기초생활수급 탈락 불만을 애먼 사회복지 공무원에 표출하는 범죄도 잇따랐고, 그로 인한 업무 스트레스 등의 이유로 공무원 자살도 속출했다.

한 달 전 세상을 등진 송파 세 모녀 사건에 이은 가족들의 연이은 자살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복지사각을 없애겠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복지사각 운운하는 정부를 보면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모르는 것 같아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정부는 빈곤층이 왜 도움을 청하지 않고 등을 돌리는지를 곱씹어야 한다. 복지사각도 없애야 하지만, 무엇보다 국민 신뢰 회복 노력이 앞서야 한다.

이렇듯 정부가 공정하지 못하니, 민주주의의 근간인 입법·사법·행정 모두 통째로 흔들리는 불공정이 판을 치는 게 아니겠는가.

‘사모님 주치의 사건’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지 얼마나 됐다고, 가난한 자의 죄를 탕감하기 위한 노역장 유치(勞役場 留置)가 ‘일당 5억 황제 노역’으로 멋대로 둔갑하는 사법부의 불공정을 보면 참담하다.

일부에 국한하지만 “늙으면 죽어야 한다” “초등학교 나왔죠? 부인은 대학 나왔다면서요. 마약 먹여서 결혼한 것 아니에요?”라는 막말로 판사가 국민을 조롱한다. 또 본분을 망각한 채 유력 정치인을 쫓아다니는 현실은 사법부 스스로 더 이상 사회적 약자의 보루라는 역할을 포기한 듯 보인다.

대한민국 최상위 법은 헌법이 아니라 국민정서법(國民情緖法)이란 말이 자주 나온다. 이는 실정법(성문법)이 아닌 불문율(不文律)로 한국사회에 법치주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은 현실을 꼬집는 말이다. 국민의 법 감정은 상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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