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통상임금 범위 확대 판결을 내리면서 재계가 내년 경영계획 재조정에 들어갔다. 인건비가 크게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내년 예산의 틀을 다시 짜야하기 때문이다.
가장 급한 곳은 자동차업계다. 자동차업계는 조립 산업의 특성상 잔업, 특근 등 시간외 수당과 상여금이 많기 때문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18일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고, 1개월이 넘어도 정기성이 인정되면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면서 내년 인건비를 다시 계산할 수 밖에 없게 됐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기본급은 연 2000만~2500만원 수준이지만 수당과 상여금을 포함하면 1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잔업수당과 특근수당을 다시 계산해야 한다.
증권업계에서도 통상임금 범위 확대로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의 매출액 중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1.3%포인트, 1.4%포인트, 0.6%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추정했다.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이 현대차는 9.3%, 기아차는 9.4%, 현대모비스는 4.2%인 것을 고려하면 인건비 부담이 크게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조립산업에서 인건비 상승은 공장 운영의 핵심 변수이기 때문에 얼마나 임금이 오를지 면밀하게 계산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최악의 경우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국내 생산물량을 줄이고, 해외 생산을 늘리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법원이 통상임금 소송에서 노동자 측 손을 들어주면서 내년 노사 관계의 긴장감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통상임금에 이어 정년연장, 근로시간단축 등의 노사 현안이 산적해 있는 만큼 내년에 벌어질 임금·단체협약에서는 이를 둘러싼 치열한 협상 과정이 예상된다.
다만, 재계는 대법원이 상여금 포함 결정에 따른 차액을 소급해 청구할 수는 없도록 명시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과거 3년치를 소급해서 주게 된다면 노조의 줄소송에 이어 임금 폭탄이 발생할 우려가 있었는데 이를 금지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법원은 이날 판결에서 “사용자 측의 예기치 못한 과도한 재정적 지출을 부담토록 해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 관념에 비춰 용인할 수 없다”면서 “소급해서 초과근무수당 차액을 청구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