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여섯 노익장의 열정을 배우다 [오상민의 현장]

입력 2013-11-29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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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에구사 스스무 씨와 함께 일본프로골프 대회장을 취재하는 일이 많았다. 사진은 지난 2007년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먼싱웨어컵 당시 촬영.

“깡!”

“슝~!”

무지막지한 금속음이 정적을 깼다. 직경 42.67㎜의 작은 공이 바람을 가르며 페어웨이 상공을 날아간다.

“굿샷!” 갤러리들의 탄성이 쏟아졌다. 그리고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최고의 플레이어들이 한자리에 모인 프로골프대회장 풍경이다.

아쉽지만 올 시즌 국내 남녀 프로골프대회는 전부 막을 내렸다. 한국프로골프(KPGA)투어는 11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는 2일 대상 시상식만을 남겨놓고 있다.

각 분야별 수상자들이 참석하는 대상 시상식은 한해 농사의 결실을 맺는 자리다. 필드에서 땀과 눈물, 열정을 쏟아 부은 선수들로서는 만감이 교차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늘 그렇지만 챔피언들은 저마다 가슴 뭉클한 사연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플레이어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불같은 열정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도 있다.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카메라맨들이다. 일본에는 일흔여섯 노익장을 발휘하며 선수들과 함께 필드를 누비는 카메라맨도 있다. 일본 다수의 골프전문지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에구사 스스무(일본)씨다.

웬만한 사람들은 이미 은퇴했을 나이지만 그의 일에 대한 열정은 남달랐다. 체력의 한계는 열정으로 극복한지 이미 오래다. 목표하는 이미지가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만들어낸다.

선수들의 퍼팅 장면 하나를 찍더라도 점잖게 앉아서 찍는 일이 없다. 그린 밖에서 엎드리거나 엎드린 채로 360도 회전하며 전혀 다른 앵글을 만들어낸다. 만족스러운 이미지가 잡히기라도 하면 마치 어린 아이처럼 좋아한다.

그러나 그는 좀처럼 만족하지 않는다. 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한 그의 노력은 끝이 없다. 좀 더 새롭고, 좀 더 정확한 이미지를 잡아내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누가 그를 일흔여섯 노인으로 보겠는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모습은 더 이상 필드에서 볼 수 없게 됐다. 그는 올 시즌을 끝으로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필드에서 자신이 원하는 사진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골프경기의 특성상 필드를 장시간 이동하며 촬영해야 하는 만큼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는 늘 부끄럽지 않은 사진을 담아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이제 체력의 한계를 느낀 듯하다.

그의 은퇴는 스타플레이어의 은퇴만큼이나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의 사진은 물론 행동 하나하나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줬다.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했다.

우리 현실은 어떤가. 요즘은 “최선을 다하겠다” “열심히 하겠다”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신입사원, 신인배우, 신혼부부 등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경력이 쌓일수록 열정보다 나태함과 오만함이 앞선다. 결국 인간의 열정은 세월의 무게를 이겨낼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사에구사 씨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비록 주연은 아니지만 맡은 역할에 충실했고, 자신에게 혹독했다. 그리고 열정으로써 모든 것을 보여줬다. 그의 열정은 일흔여섯 세월이 집어삼키기에는 너무나 크고 위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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