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잔업·야근? 기억도 안나요"

입력 2011-12-23 11:03 수정 2011-12-23 22:13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철강, 목재·종이' 문닫을 판…中企 공장 밀집 반월시화공단 가다

▲매서운 칼바람을 몰고온 한파가 영세상인의 마음도 얼어붙게 하고 있다. 대기업의 줄어든 설비투자는 하청업체의 사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22일 오후 시흥시 정왕동의 영세업체 가게들이 이른 오후부터 문을 닫아 거리가 썰렁하다.(사진=노진환 기자)
“요즘 야근은 커녕 오후 2~3시만 되면 일감이 없어 퇴근합니다. 공장 문 닫을 날이 시간 문제 인 것 같아 하루하루 죽을 맛입니다.”

22일 오후 2시 시흥시 철강유통단지 스틸랜드에 입점해 있는 한 금속업체. 고작 2명인 직원들이 금속부품 몇 개가 덩그러니 뒹굴고 있는 텅빈 공간을 하염없이 빗자루로 쓸고 있다. 최근 건설 경기 불황으로 매출이 절반 이상 줄어든 이 업체는 점심시간 직후 셔터문을 내릴 채비를 하고 있었다.

직원 박모(58)씨는 “이 분야에서만 20여년 간 일했지만 지금처럼 일감이 없었던 적은 없었으며 금융위기 때보다도 더 심하다”며 “지난 5월부터 이러한 상황을 예견했지만 막상 상황이 벌어지니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스틸랜드에 입주한 또 다른 철강 업체도 예외는 아니다. 이른 오후 시간에 작업이 끝난 듯한 10평 남짓한 공간에서 한 직원이 망연자실 담배만 피우고 있었다. 30대 초반인 이 직원은 “철강의 경우 건설을 비롯해 조선, 자동차, 반도체, 전자, 플랜트 등 안들어가는 곳이 없다”며 “불황으로 한 군데만 막혀도 전체가 다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스틸랜드는 21만533㎡(6만5140평) 규모의 철강 원자재 주문, 가공, 유통 등을 원스톱 서비스하는 철강유통단지로 지난 2008년 완공됐다. 약 20개동에 이르는 스틸랜드에는 324개 업체를 수용할 수 있다. 그러나 분양을 시작한 2007년 이후 지금까지 입주한 업체 수는 약 220개로 분양률이 70%에 못미친다.

스틸랜드 관계자는 “여기 입주한 기업 상당수에서 기계들이 돌아가지 않으며 아예 창고로 쓰이는 곳도 있다”며 “그나마 오전에 돌아가는 기계도 오후에는 거의 돌지 않으며 오후에도 가동되는 곳은 100곳도 채 안된다”고 설명했다.

◇ 최고 20%까지 떨어진 철강공장 가동률

건설경기 악화가 지속되다 보니 반월시화단지에 입주한 철강 공장들도 느슨하게 돌아간 지 오래다. 글로벌 재정위기의 여파가 국내 실물경제로 옮겨가고 건설경기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힘없는 중소기업들은 무방비 상태로 무너지고 있다.

반월산업단지에 위치한 잘나가는 철강업체조차도 공장 가동률이 예전 같지 않다. 영세한 업체들은 가동률이 20% 수준까지 떨어졌다.

반월시화공단 전체 가동업체 수는 반월 5296개, 시화 9138개로 모두 1만4434개로 근로자 수만도 22만7000여명에 이른다. 이 중 철강업체 비중은 각각 3.36%(반월), 7%(시화)로 약 1000개가 훨씬 넘는 철강공장들이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재고가 한 가득 쌓여 있는 철강업체 A사 사장은 “건설경기 영향으로 철강 소비가 너무 줄었다”며 “발주가 안돼 공장을 가동도 제대로 못하지만 재고만 쌓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올초 철강 원가가 오른 데다 값싼 중국 철강재가 많이 수입되면서 가격 경쟁력까지 잃었다”고 덧붙였다.

영세 철강업체 B사 공장직원은 “지금보다 내년이 더 심각해 문을 닫는 공장도 많아질 것”이라며 “이런 상황임에도 경기 전체가 좋지 않다보니 업종 전환도 못한 채 좌불안석”이라고 말했다.

산업지표에서도 철강 산업의 심각성을 말해준다. 주요 5대 업종 중 철강이 유일하게 전월대비 생산이 감소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이 발표한 9월 국가산업단지 산업 동향에 따르면 철강 생산실적은 전월대비 1.5% 감소했다.

◇ 야근문화 사라진 종이·목재 공장들

“요즘 5시만 되면 칼퇴근합니다. 불 밝히며 야근하던 시절이 언제인 지 가물가물합니다.”

수개월 전부터 야근이 사라진 반월산업단지 한 종이박스 공장장의 말이다. 오후 5시가 다 돼자 직원들은 벌써 공장 가동을 멈추고 퇴근 준비에 부산스럽다. 경기가 악화됨에 따라 물건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하루가 다르게 박스 주문도 줄었기 때문이다. 이 업체 직원 김모(58)씨는 “최근 공장 가동률이 25% 수준 낮아졌다”며 “주변 종이관련 업체들 모두 야근이 사라진 지 오래됐다”고 하소연했다.

시화산업단지의 포장목재 수출업체도 예외는 아니다. 일감이 줄어 공장 가동률이 약 20% 정도 떨어졌고 자연스럽게 야근문화가 사라졌다.

이처럼 주요 업종은 아니지만 철강 산업과 함께 유일하게 생산량이 감소한 업종이 종이·목재다. 특히 반월단지 목재종이의 경우 전월대비 가동률이 0.2%포인트 줄었다.

야근이 줄자 인근 식당들도 울상이다. 저녁, 야식 손님들이 절반 이상 줄었기 때문이다. 한 식당 주인은 “한때 저녁에도 북적거리던 식당들이 이제는 오후부터 한산하다”라며 “야근 시 소주 한잔 걸치던 공장 직원들이 그립다”고 하소연했다.

반월·시화산업단지에 밀집해 있는 약 500여개(반월3.95%, 시화2.7%) 개에 이르는 종이·목재 업체들을 비롯한 인근 식당들의 이 같은 실태는 2011년을 보내는 대한민국 중소기업의 어려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정의구현 외치더니 밥줄 '뚝'"…쯔양 사건, 사이버 레커에 경종 울렸다 [이슈크래커]
  • '트로트 4대 천왕' 가수 현철 별세…향년 82세
  • “한국에 갈거야, 라인 추가해 줘” 문자 받으셨나요? [해시태그]
  • 올해도 불붙은 ‘BMW vs 벤츠’ 경쟁…수입차 1위는 누구 [모빌리티]
  • '운빨존많겜', 무분별한 방치형 게임 사이 등장한 오아시스 [mG픽]
  • 비트코인, 6만4000달러 돌파…'트럼프 트레이드' 통했다 [Bit코인]
  • 변우석, 오늘(16일) 귀국…'과잉 경호' 논란 후 현장 모습은?
  • 문교원 씨의 동점 스리런…'최강야구' 단언컨데 시즌 최고의 경기 시작
  • 오늘의 상승종목

  • 07.16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89,428,000
    • +2.26%
    • 이더리움
    • 4,788,000
    • +2.44%
    • 비트코인 캐시
    • 536,000
    • -0.19%
    • 리플
    • 764
    • +1.87%
    • 솔라나
    • 220,400
    • +3.86%
    • 에이다
    • 606
    • -0.16%
    • 이오스
    • 816
    • +0.99%
    • 트론
    • 189
    • -2.58%
    • 스텔라루멘
    • 144
    • -0.69%
    • 비트코인에스브이
    • 61,300
    • +1.74%
    • 체인링크
    • 19,720
    • +2.18%
    • 샌드박스
    • 463
    • +1.31%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