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서는 남유럽 경제위기, 재스민 혁명, 일본의 대지진 사태,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 등 유독 굵직굵직한 사건 사고가 발생해 눈이 번쩍 떠지는 상황에 많이 접했다. 그럴때마다 긴장의 끈을 다시 부여잡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경제나 금융 분야에서의 놀란 가슴은 비단 이번 만의 일은 아니었고, 그러한 위기상황들 즉 1998년 IMF 구제금융, 2003년 카드 사태 및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5년 주기로 반복되는 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국내 금융기관들은 리스크관리 체계를 공고하게 구축해 왔다.
리스크관리조직을 신설하고 금융공학 등의 전문 지식을 가진 인력을 보강하고, 리스크관리 시스템을 개발해 계량적 분석기능을 수행하는 등 금융기관들의 실질적인 리스크관리 기능이 강화되었다. 한마디로 위기에 대한 맷집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이전에는 통계적으로 쉽게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 즉 나심 탈레브 교수가 얘기한 ‘블랙 스완’이 발생하는 경우가 증가함에 따라, 리스크관리 측면에서 몇가지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
첫번째로 금융기관들의 위기극복 경험(맷집)이 위기를 바라보는 시각을 둔화시킬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마치 지나가는 소나기를 바라보듯 ‘또 위험이 오는구나, 몇 개월 지나면 정상화 되겠지’ 하는 생각 때문에 정작 중요한 시그널을 놓칠 가능성이 있다.
두번째로 리스크관리부문과 영업부문의 상황에 대한 이해 공유와 유기적인 협력관계 구축이 필요하다. 한 조직이 위기라는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는 기차라고 가정하면, 영업 부문은 첫번째 량(輛)에 탑승하고 있어 이미 터널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하고 리스크 부문은 마지막 량에 탑승하고 있어 아직도 터널내에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비유할 수 있다. 즉, 전방 상황에 대한 인식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위기에 대한 맷집이 있다는 무모한 자신감과 위험에 대한 안이함 등과 더불어 먼저 치고 나가야 한다는 조바심이 또 다른 위험을 자초할 수도 있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의 계량적 분석 능력이 어느정도 궤도에 오른 것으로 보여지지만, 리스크부문의 분석 역량이 영업부문과 연계되어 유기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조직 내의 리스크관리 문화가 보다 더 확산되어야 할 것이다.
세번째로, 극단적 위기 상황(블랙스완)이 발생할 가능성을 사전에 예측하고발생시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하도록 하는 선제적 리스크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통상 어떤 상황이 예견되었거나, 이미 들어 알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크게 당황하지 않는다. 회사 경영의 경우에도 내부적으로 이미 보고를 받은 사안에 대해서는 조직 차원에서 일사분란하게 대응할 수 있다. 그래서 요즘 리스크관리를 담당하는 부문에서는 ‘노 서프라이즈(No Surprise)’를 모토로 삼는 경우가 많다. 경영진이 놀라지 않게 사전에 시그널을 주는 방식으로 선제적인 리스크관리를 한다는 얘기이다.
어떤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 그에 대한 영향도를 분석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사후약방문식 처방이 아니라, 향후 어떠한 시나리오가 전개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그러한 시나리오가 닥쳤을 때 조직에의 영향을 사전 분석하여 실행계획을 사전에 준비하는 시나리오 경영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의 전방 상황은 더블딥이라는 또 다른 터널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황을 어느 정도 예견하고 사전대응을 해놨느냐가 리스크관리의 관건인 것이다.
매 위기마다 우리나라의 금융기관의 리스크관리 역량이 배가되었던 것처럼, 금번 위기도 슬기롭게 헤쳐나가 비 온뒤 땅이 굳어지는 것처럼 국내 위기관리의 토대가 한층 더 공고해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문종복 신한은행 부행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