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표백, 표백돼가는 젊은이들의 슬픈 비망록

입력 2011-08-05 14:48 수정 2011-08-05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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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문학상에 선정된 소설 '표백'의 저자 장강명(사진=김미옥)

장강명 지음/한겨레 출판사 펴냄/ 1만1000원/349쪽

‘표백’은 큰 꿈 없이 살아가는 잘난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이 부딪치는 한계에 대항하는 극단의 행동을 소설로 형상화했다. 시대를 주도해야 할 젊은 청년들은 학벌과 집안의 부유함 정도로 자신의 자존감을 결정하곤 한다.

인생의 가치, 신의 유무를 따지고 드는 2류 대학 친구에게 “너가 그런 문제를 논할 것 같으면 서울대 가지, 왜 이런 데 왔어”라고 따지는 주인공의 대사는 학벌로 서로의 등급을 매기고 있는 영악한 현대 젊은이의 가슴을 간파한 듯 하다. 하지만 인생의 철학적 고찰도, 학벌중심주의에 대한 가타부타도 ‘병든 현대 사회’의 현실앞에서 의미 없는 수다에 불과해진다.

80년대 대학생들에게는 정치적 사명이 90년대 대학생들은 문화 주도권을 잡고 나아갔다면 이 시대 젊은이들은 거대 담론을 붙잡을 게 없이 병든 현실에 표백되어간다는 게 이 책의 틀이기도 하다.

역사상 가장 가방끈 긴 이시대의 청년들은 취업과 안정된 직장생활을 위해 달려간다. 열정과 패기는 치솟는데 꿀 꿈이 없다. 넘어서야 할 고지도 안보인다. 동아일보 기자 장강명이 쓴 ‘표백’은 이러한 병든 현실을 소설에 투영, 주인공들의 주변 인물을 자살에 치닫는 것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주인공은 7급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나서 상위 10개 대학의 뒤쪽에 위치한 A대학에 입학해서 군대를 갔다 온 복학생이다. 그는 대학입시를 다시 준비하든 편입시험을 보든 더 상위권으로 진입해야 하는데, 어떤 것을 시작해도 이미 늦어버린 나이라고 생각하며, 미래의 암울한 현실을 깨닫지만 딱히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

‘취업 선배들과의 대화’ 행사 뒤풀이 후에 전교적으로 유명한 ‘21세기 지도자 장학생’인 세연, 경영학과 동기인 휘영, 후배 병권, 세연의 친구 추윤영 등과 어울리게 된다. 그리고 세연을 통해 추라는 여인과도 만나며 이들 몇몇의 순차적인 자살을 접한다.

저자는 세연의 목소리로 극의 핵심을 끌어나간다. 이 글에서 이야기의 발단은 세연으로부터 시작하고 세연으로 끝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벌, 안정된 취업보장, 미모 등 완벽했던 세연의 자살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또래친구들에게 하나의 거대담론을 만들어줬다.

세연은 본인의 비밀 집기를 통해 “왜 홍콩에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황산 테거가 계속 이어지는가? 왜 중국에서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한 무차별 흉기 난동이 유행하고 있는가? 왜 미국에서는 총기 난사 사고가 자주 벌어지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결국 병든 사회가 문제고 병든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은 ‘순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심지어 예수그리스도의 제작들이 순교함으로 예수의 존재적 가치를 알리는 데 비유하며 죽음을 준비하는 자신을 순교할 기회를 잡은 예비성인으로 칭한다. 이 시대 완벽한 청년들의 죽음은 이 시대의 ‘표백’스런 시대상황을 알릴 수 있는 하나의 날갯짓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세연은 본인의 자살은 시대정신을 꿰뚤어봤다는 뜻으로 죽음이 위대하게 평가받길 바란다고 전한다. 거대한 담론을 꿈꾸며 자라가기보다 자신의 완벽한 죽음을 결정한다는 이 극단을 통해 젊은 층의 몸부림의 끝자락을 전해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표백은 그간의 젊은이들의 비망록적인 이야기라는 점에서 시대의 아픔을 담아내고 있다. 또 젊은이들의 예민한 감정선과 현실을 세심하게 보여주며 어른이 된 젊은이들의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제16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이 책은 젊은 세대들이 자살하는 세태를 다루면서, 공감대와 표백돼가는 청년들과 교감을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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