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이 많이 사는 임대아파트와 장애인복지관이 있는 지역 편의점에 경사로를 놓은 후 직원이 한 말이다. 무의가 공익법단체 두루, 서울시와 함께 ‘모두의1층 X서울’ 프로젝트를 통해 경사로를 놓은 곳이었다. 이 편의점에서는 경사로 설치 이후 비로소 휠체어, 어르신, 유아차 고객을 볼 수 있었다. 동네에서 흔히 보는 편의점이지만 턱과 계단 때문에 쉽게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워 놓은 법의 영향이다. 경사로를 비롯해 편의시설을 만들 의무를 규정하는 편의증진법 시행령을 만들어 놨을 때 설치의무가 있는 슈퍼마켓이나 편의점 비중은 단 1.5%에 불과했다. 동네 슈퍼나 편의점의 경사로 등 편의시설 의무 설치를 규정했는데 시행령에서 300제곱미터(약 90평)의 바닥면적 이상인 곳만 의무를 지워서다. 법에서 의무를 규정하고도 대부분이 의무에서 면제되는 결과가 됐으니 잘못 만들어진 시행령이다.
이 법의 시행령이 잘못 만들어졌다며 시민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에 대법원이 화답했다. 지난 10월 23일 대법원 공개변론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은 피고인 국가 대리인에게 이렇게 물었다. “처음에 법을 만들 때 미국이나 일본처럼 전체 가게 상당수가 어느 정도 갈 수 있는 상태에서 규정했다면 권리를 보장해줬다고 말할수 있겠지만, 접근 가능한 곳이 고작 3~5%라는데 이거는 아예 (동네 가게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 권리가 아예 없었던 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동등한 접근권’의 필요성은 누구에게나 갑자기 다가올 수 있다. 지인의 어머님이 뇌졸중으로 휠체어를 타게 됐다. 지인은 휠체어를 끌고 밖에 나가면서부터 그 전에 쉽게 들어갔던 빵집, 약국, 음식점, 카페, 편의점을 갈 수 없게 됐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도 세금 내는 시민인데 이렇게 자유가 침해될 줄은 몰랐어요.”
이렇게 ‘1층에 들어가고 싶은’ 시민 수요는 장애가 있는 시민을 넘어 비장애인 시민들까지 확대된다. 모두의 1층 비중은 적고 가고 싶은 사람은 많기에 그 갭을 메우기 위해 지자체가 나서고 있다. 2024년 기준으로 경사로 설치 사업이나 경사로 설치지원 조례를 만든 지자체는 전국 45개에 이른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경사로 확대가 빠르게 일어나지 않고 있다. 모두의 1층 프로젝트를 통해 현장 점주들에게 물어봤더니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는 경사로의 ‘도로점용 허가’였다. 경사로를 완만하고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길게 빼야 하는데 가끔 도로점용허가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경사로를 놓으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했다던 점주들은 이렇게 말했다. “건축과에 물어보면 허가를 안 내줘요. 발에 치인다며 민원이 들어오는 게 꺼려지는 거겠죠.”
경사로가 보행자에게도 안전하려면 점주와 끊임없는 연락을 통해 맞춤형 경사로를 설치해야 했다. 구청을 설득했다. 모두의 1층X서울 사업을 주도한 서울시 약자동행담당관이 끊임없이 설득한 결과 지난 10월 드디어 영등포구 문래창작촌 음식점과 카페 9곳에 대한 경사로 도로점용허가가 나왔다. 이렇게 여러 경사로에 대한 도로점용허가가 나온 건 2022년에 편의증진법이 개정되어 시행된 후 최초 사례다.
첫 사례의 용기로 두번째, 세번째 사례의 물꼬를 틀 수 있게 됐다. 이렇게 정성을 들여 치밀하게 설치한 경사로가 늘면 경사로 사업을 하고도 민원으로 철거하거나 2년 뒤 다른 가게가 계약할 때 철거하는 행태가 없어질 수 있다. 세금이 더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다. 무엇보다 동네 편의점에서 누구나 더 쉽게, 산책하다가 목마를 때 물을 사 마실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확대된다. 모두의 1층이 모든 동네에 필요하다며 2천명의 시민이 지지 서명을 해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