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에 맞춘 체계 도입까지 ‘완충장치’
외국계 국내 직원 ‘근로자 수’ 논란
해외본사 5인 이상일 때 소송 번져
대형 외국본사 기준으로 해선 안 돼
“경제활동 단위 달라”…대법원 판단
그런데 외국 법인의 한국 지사에 대해선 오래 전부터 논란이 있어 왔다. 근로기준법 적용 범위를 5인 이상 사업장으로 제한한 것은 영세사업장 부담을 고려한 입법 조치인데, 외국 본사 규모가 상당한 경우까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논리다. 즉, 국내 근로자가 5인 미만이더라도 해외에 대규모 본사가 존재한다면 근로기준법이 정하는 규제를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미국 C 사의 경우 실제 이러한 논란이 소송으로 이어졌다. 미국에 본사를 둔 C 사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프로젝트 수주를 위해 한국에 직원 1명을 뒀다. 하지만 업무능력 결여를 들어 계약이 만료되자 이 직원은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냈다. 노동위원회와 서울행정법원은 국내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지만, 서울고등법원에 가서 한국 근로기준법이 적용된다며 정 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해외에 5인 이상 사업장인 본사를 두고 있으면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는 게 법 취지에 맞는다고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은 고등법원 판결을 뒤집고 외국 회사의 국내 활동 시 ‘근로자수’는 원칙적으로 ‘국내 근로자수’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실질적으로 동일한 경제적‧사회적 활동단위”를 기준으로 해야 하므로 외국의 근로자까지 고려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봤다.
몇 가지 이유에서 대법원 판단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외국 기업의 한국 지사는 대체로 눈은 높지만 손발이 없는 조직이다. 국내에는 인사‧법무 등 지원 조직이 없어 대부분의 지원 업무를 외부 노무‧법무법인 등에 맡겨야 한다.
1~2명의 국내 근로자를 고용하면서 한국 근로기준법을 적용하기 위해 큰 비용을 지출하는 상황은, 설령 가능하더라도 합리적이지는 않아 보인다. 외국 기업 입장에서는 아시아‧태평양 담당자를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상주하도록 하면 더 편하기 때문이다.
특히 본사의 인사나 복지정책을 그대로 가져다 쓰기 어렵다. 한국 규제를 염두에 둔 새로운 제도가 필요하다. 외국 기업들 중에는 무제한에 가까운 휴가, 높은 연봉, 자유로운 재택근무, 무(無)정년 등 높은 자유도와 복지를 자랑하는 곳들이 많다.
하지만 외국 기업의 복지정책들은 상당부분 언제든지 해고가 가능한 점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게다가 외국 기업의 복지정책 대부분은 언제든 철회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근로계약 사항이 아닌데도 복지정책을 불이익하게 변경하기 위해서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외국 기업에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외국 본사의 제도를 한국에 그대로 가져다 쓰면서 한국 근로기준법상 규제까지 적용하기는 힘들다.
5인 미만인 한국 지사에 한국 노동청 행정력이 미치기도 어렵다. 한국에 1명이 있는 사업장은 노동청 입장에서는 어디 있는지도 알기 어려운 사업장이다. 외국 법인과 고용계약을 체결하는 즉시 한국법이 적용된다면 사업장이 수시로 생겼다가 없어질 수 있다. 근로기준법이 적용된다고 하면서 사전 행정지도나 감독 없이 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하거나 법원에 소송을 걸면 비로소 한국법을 적용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사안에 따라서는 해외 본사의 상시 근로자수를 정확하게 산정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외국 기업 중에는 누구나 알고 있는 글로벌 대기업도 있지만, 해외 본사마저 5명 남짓한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에서도 산정하기 복잡한 상시 근로자수를 해외까지 적용하겠다는 방침은 과욕일 수 있다.
5인 미만 사업장에 한국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않는 것은 한국에 진출하는 외국 기업 입장에서는 한국에 맞는 제도와 체계를 갖추기 전까지 최소한의 완충장치 역할도 한다. 대법원이 해외 본사 근로자들과 한국 지사 근로자가 동일한 경제적‧사회적 활동단위에 속하지 않는다고 본 입장은 현실에 부합하는 판결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