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뉴진스 멤버 하니에게 응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가 홀로 국회에 나설 의지를 드러낸 데 따른 건데요. 하니는 15일 열릴 국회 국정감사에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통상 국감장에는 기업 총수, 법조인이 주로 섭니다. 가수는 상당히 이례적인데요. 그렇다고 사례가 없는 건 아닙니다.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에 2년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가수 남태현은 지난해 10월 보건복지위원 국감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마약중독 치료를 좀 더 지원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배우 겸 가수인 김민종은 인천 송도에 조성될 예정이었던 'K팝 시티' 사업 무산과 관련해 KC컨텐츠 공동대표로서 증인으로 출석, 질의를 받았죠.
그러나 왕성하게 활동 중인 걸그룹 멤버가 국감장에 나가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하니를 참고인으로 부른 상임위원회는 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아닌 환경노동위원회입니다. 최근 하니의 폭로로 불거진 '따돌림' 의혹과 관련한 건데요. 뉴진스 소속사 어도어 대표를 겸하고 있는 김주영 하이브 최고인사책임자(CHRO)도 같은 날 증인으로 채택됐습니다.
국감의 참고인과 증인은 엄연히 다릅니다.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엔 '불출석'을 처벌하는 규정이 있으나 이는 증인과 감정인에게만 적용되고 참고인에게는 해당하지 않죠.
즉 하니가 국감에 출석하겠다고 밝힌 건 따돌림에 대해 증언하겠다는 의지가 그만큼 강력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에 국감에서 어떤 말이 오갈지, 또 이 자리가 어떤 도화선으로 작용할지 관심이 쏠리는데요. 15일 하니가 출석할 국감을 미리 살펴봤습니다.
앞서 어도어는 8월 27일 이사회를 열고 민 전 대표를 해임, 김주영 사내이사를 신임 대표로 선임했습니다.
이때 어도어는 "민 전 대표는 대표이사에서는 물러나지만, 어도어 사내 이사직을 그대로 유지하고 뉴진스의 프로듀싱 업무도 그대로 맡게 된다"고 설명했는데요. 여기에 민 전 대표는 물론, 뉴진스 멤버들도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했죠. 민 전 대표는 법무법인 세종을 통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어도어 임시주주총회 소집 및 어도어 사내이사 재선임을 위한 가처분 신청'을 냈고, 뉴진스 멤버들은 긴급 라이브 방송을 진행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냈습니다.
뉴진스 멤버들은 지난달 11일 진행한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9월 25일까지 민 전 대표를 복귀시키라고 요구했는데요. 이들은 "그 사람들(하이브 혹은 현 어도어 경영진)이 속한 사회에 같이 순응하거나 동조하거나 따라가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습니다.
아이돌 그룹이 소속사 내부 분쟁에 직접 뛰어든 건 이례적입니다. 가요계 역사를 뜯어봐도 소속 가수가 소속 기업에 '경영 관련 요구'를 공개적으로 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운데요. 특히 하니가 '따돌림' 의혹을 폭로하고 나서면서 더 많은 눈길이 쏠렸죠.
이 방송에서 하니는 "하이브 건물 4층에 헤어, 메이크업 공간이 있다. 다른 아티스트분들도, 직원들도 많이 왔다 갔다 하는 공간"이라며 "혼자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다른 아티스트와 매니저님이 지나가서 인사했다. 그런데 제 앞에서 '무시해'라고 하시더라. 다 들리고 보이는데 왜 그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가고, 어이없다고 생각한다"고 토로했습니다.
이어 "새 대표님(김주영 대표)께 말씀드리긴 했는데 '증거가 없고 너무 늦었다'고 하면서 넘어가려고 했다"며 "저희를 지켜줄 사람이 없어졌다는 걸 느꼈다. 우리를 생각하는 마음이 아예 없다는 걸 느꼈다. 제가 솔직하게 말씀드렸는데 한순간에 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았다. 민 전 대표님은 저희를 위해 많이 싸워주셨다"고 부연했죠.
이에 대해 멤버 민지는 "그 말을 듣고 충격받았다. 어떻게 한 팀의 매니저가 지나가면서 멤버에게 무시하라고 다 들리게 얘기하실 수 있는지, 상상도 못 한 일을 당했는데 사과는커녕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았다. 앞으로 이런 비슷한 일이 얼마나 더 많이 일어나게 될지 모르겠다. 지켜주는 사람도 없는데 은근히 따돌림받지 않을지 걱정된다"고 우려했습니다.
이 밖에도 멤버들은 △데뷔 전 사적 기록들이 유출됐다거나 △민 전 대표의 해임 사실을 기사를 통해 알았고 △민 전 대표와 외부 업체의 협업 영상을 어도어 측이 삭제했다는 등을 거론하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하니는 방송에서 해당 팀이나 매니저를 익명으로 지칭했는데요. 온라인상에서는 '범인 찾기'(?)가 이어지면서 '아일릿'이 거론되기도 했습니다. 아일릿은 하이브의 또 다른 레이블 빌리프랩 소속 그룹입니다.
이에 빌리프랩은 7일 "당사는 터무니없는 표절 주장에 이어 근거 없는 인사 논란으로 신인 아티스트를 음해하려는 시도를 즉시 멈출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며 "아일릿 의전 담당 구성원(매니저)은 뉴진스 멤버에 대해 '무시해'라는 발언을 한 적이 없다. 아일릿 멤버들도 뉴진스 멤버들에게 인사를 하지 않고 지나간 적이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빌리프랩은 "이 같은 사실은 뉴진스 멤버 부모님들이 문제를 제기한 6월 13일, 빌리프랩 요청에 의해 진행된 폐쇄회로(CC)TV 확인 및 의전 담당 구성원과 아티스트 조사 등을 통해 확인된 내용"이라며 "두 그룹은 5월 27일 하이브 사옥 내 같은 공간에 약 5분 동안 머문 것이 유일한 조우였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아일릿 멤버들이 그 앞에 서 있던 하니 씨에게 90도로 인사하면서 들어간 것이 영상에 담겨 있었다"고 설명했는데요.
이어 "이 영상을 8월 14일 민희진 당시 대표 측과 함께 확인하자, 민 대표 측은 인사를 안 한 것은 이 장면 이후라며 다른 영상이 있을 거라는 주장을 새롭게 제기했다. 그러나 이 시점은 영상 보존 기간 30일이 지난 이후여서 추가 확보가 불가하다는 것이 보안업체의 설명이었다"며 "민 전 대표 측은 이를 하이브가 의도적으로 영상을 지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강조했죠.
빌리프랩 측은 해당 의혹 제기에 특정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빌리프랩은 "요구한 모든 설명을 제공했음에도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없는 주장을 새롭게 제기하며 결과적으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 국회 국감에서까지 다뤄지는 지금,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된다"며 "본 건의 문제 제기 이후 당사는 어도어에 이미 8월과 지난달 이 건에 대한 두 번의 공식적인 답변 및 입장을 발송한 바 있다. 이 사안의 재발 방지 요구에 이어 뉴진스 멤버가 라이브에서 본 사안을 언급함으로써 본 건이 공론화된 이후에는 해당 멤버와 어도어 레이블 차원의 사과를 요구했지만 이에 대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부연했습니다. 명예훼손, 업무 방해 등에 대한 강경 대응 방침을 밝히는 것도 잊지 않았죠.
그러나 뉴진스 측은 곧장 반박하고 나섰습니다. 7일 연예·스포츠 매체 일간스포츠를 통해 뉴진스 멤버 어머니들의 인터뷰가 전해졌는데요. 매체에 따르면 이들은 하니가 다른 아티스트와 인사하는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은 남아 있으나, 문제의 '무시해' 발언이 담겼을 영상은 삭제됐다고 주장했습니다.
빌리프랩의 공식 입장이 전해진 뒤인 9일에도 재차 인터뷰를 통해 '사건의 본질을 흐린다'고 지적했는데요. 한 멤버의 어머니는 "(어도어 측에) 문제를 제기하고 2개월이 지나서야 설명했던 상황과 맞지도 않는 엉뚱한 영상을 보여주면서, 나머지 부분은 보관 기간이 만료돼 삭제했다는 건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이라며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할 의지가 없는 대응으로 보이고, 김주영 대표님이 보내준 해명 메일에도 담겼듯 의사소통 과정도 불투명했다"고 꼬집었죠.
양측이 진실공방을 벌이는 상황에서 하니는 직접 국감에 출석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는 9일 팬 소통 플랫폼 포닝을 통해 "결정했다. 국회에 나갈 거다. 국감에 혼자 나갈 것"이라며 "스스로랑 멤버들, 그리고 버니즈(팬덤명) 위해서 나가는 것"이라고 전했는데요.
이어 "아직 매니저들이나 회사는 모른다"며 "많은 생각을 해봤지만 나가는 게 맞다. 잘하고 오겠다"고 팬들에게 알렸습니다. 또 "이 경험을 통해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나에게 배움이 많은 경험일 거라고 생각해서 나가고 싶다"며 "뉴진스, 버니즈 지키겠다"고 강조해 팬들의 걱정과 응원을 동시에 받았죠.
앞서 국회 환노위는 지난달 30일 하니와 김주영 대표를 고용노동부 및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종합국정감사의 참고인과 증인으로 각각 채택한 바 있습니다. 이들을 25일 부를 것으로 알려졌으나, 15일로 일정이 변경됐습니다.
국감의 참고인, 증인으로 채택돼도 '정당한 이유'를 들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 출석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증인은 불출석 사유서를 냈어도 상임위가 불출석 사유가 합당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동행 명령을 받거나, 동행 명령에 응하지 않을 때 고발당할 수 있습니다.
이에 김 대표의 출석 가능성은 높았지만, 하니가 출석하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 상황이었죠. 그러나 하니가 먼저 참석 의사를 밝힌 건데요. 어도어 측은 하니의 출석과 관련해 "확인 중"이라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환노위는 국감에서 하니에게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질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김 대표에겐 부실 대응과 관련해 질의할 예정입니다. 즉 하니가 언급한 '무시해' 사건에 대해 김 대표가 직접 입장을 밝혀야 하는 상황인데요. 괴롭힘 의혹뿐 아니라 아티스트 보호와 권리 보장 등을 둘러싼 포괄적 질의가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는 사실 뉴진스 전속계약과도 맞닿은 사안입니다. 소속사의 아티스트 보호 의무 불이행은 통상 계약 해지의 요인이 될 수 있죠. 국감장에서 나오는 양측의 발언 하나하나가 향후 법적 분쟁의 근거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분석입니다.
또 어도어가 17일 열리는 임시주주총회에서 민 전 대표를 사내이사로 다시 선임할 계획이라고 해도, 국감을 계기로 갈등이 더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이어집니다.
4월 하이브가 '민 전 대표 등의 경영권 탈취 시도 정황을 포착했다'면서 감사에 착수하면서 시작된 갈등. 치열한 여론전, 의혹 제기, 고발 및 고소 등으로 반년 가까이 심화하고 있습니다. 이번 국감은 이 갈등에 또 다른 변곡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데요. 갈등의 결말은 여전히 안갯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