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룰에 가로막힌 국민연금 소액주주 주권행사...이래서 밸류업 되겠나[5%룰의 딜레마②]

입력 2024-09-1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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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민연금 기금운용 현황과 개혁과제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민연금 기금운용 현황과 개혁과제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인들은 한발로 (시장개방) 가속페달을 밟으면서 다른 발로 브레이크를 밟고 있다” 2005년 3월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상장기업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험을 줄이기 위해 상장사 주식 5% 이상을 보유한 투자자의 경우 투자목적을 밝히도록 한 ‘5%룰’(주식 대량보유 보고 의무) 두고 원색적인 비난을 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FT 보도가 지나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였지만 일각에서는 5%룰에서 경영 참여의 보고 조항이 너무 까다롭다는 지적도 함께 했다. FT에서 제기한 내용과 정부가 맞선 이슈는 5%룰을 적용하는 구체적인 부분. 경영참여 목적을 가진 내·외국인 투자자는 국내 주식을 대량(지분 5% 이상)으로 살 때면 금감원에 자금을 어디서 조달했는지 등을 신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버린이 한국에서 SK 지분을 산 것처럼 미국에서 어떤 기업을 샀을 경우 신고 내용은 소버린펀드 정관서류와 ‘PF인 소버린 펀드가 매입했다’는 정도만 보고 한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자금조성 내역을 더 구체적으로 보고해야 했다.

‘5%룰’을 두고 외국인의 한국자본주의 길들이기와 경제국수주의 논란이 펼쳐진 지 20년이 됐다. 하지만 5%룰은 여전히 도마 위에 생선 신세다. 이번에는 주주 및 기업가치 제고 (국민연금 등 기관 활동 강화, 집단 소액주주의 권한 행사)를 놓고 논란이 되고 있다.

이래서 밸류업 하겠나, 국민연금 책임투자 가로막는 5%룰

이연임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은 8월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연금기금운용 현황과 개혁과제: 발표 자리에서 “공직 연기금의 단기매매차익 반환 예외 인정 사유엔 ‘경영권에 영향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닐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며 “이는 미공개 중요 정보와는 관련 없는 사외이사 후보 추천 등 일반적인 연기금의 수탁자책임활동도 위축시키는 저해 요소로 작동 중”이라고 밝혔다. 대량보유 보고제도 관련 자본시장법 제147조에 명시된 ‘경영권에 영향을 주기 위한 것’의 문구를 미국의 증권법처럼 ‘지배권’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10%룰 특례 적용을 받으려면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의 의결이 필요하다. 이 위원은 엄격한 정보교류 차단 장치 구축 등 증선위 인정 요건을 삭제하고, 연기금의 자율규제시스템으로 규정을 정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업들은 5%룰이 개정되는 것에 불편한 내색이다. 2020년 ‘5% 룰’ 규제를 개선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 때와 같은 논리다. 당시 금융위원회는 특정 기업의 주식을 5% 이상 보유하는 기관투자자가 위법 행위를 한 기업 임원의 해임을 요구하거나 정관 변경을 추진하더라도 5일 이내에 약식으로 보고하면 되게 개정했다. 이전만 해도 지분율과 자금 조성 내역 등을 상세히 공시했었다. 또 임원 보수 삭감 요청이나 배당 확대 같은 주주 활동은 월 1회 약식으로 공시토록 했다. 당시 재계에선 우려가 쏟아졌다. 적대적 M&A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다는 불안감과 정부의 입김에 기업이 휘둘릴 수 있다는 논리다.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가장 큰 배경이다. 익명을 원한 재계 관계자는 “5%룰에서 경영권이란 문구를 ‘지배권’으로 바꾼다면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기업 경영과 자본 시장에 압력을 넣을 수 있는 길이 더 넓어지게 될 것”이라며 “일반 주식회사들이 KT&G나 포스코같은 꼴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주주권 행사 제한” vs “회사 경영권 지켜야”

‘5%룰’은 소액주주 운동의 화두로도 떠올랐다. ‘공동보유’로 포장된 채 소액주주들의 의결권이 제한받고 있는데 대한 반발이다. 만호제강과 헬릭스미스 소액주주들의 의결권 제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소액주주들은 회사 측이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5%룰을 자기 입맛에 따라 해석하며 주주 활동을 위축시킨다고 주장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주주연대 온라인 카페에서 의견을 나눈 뒤 찬성, 반대표를 던지거나 의결권을 단순 위임하는 행위를 두고, 지분을 공동보유했으니 사전 공시하라는 것은 과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규제 취지에도 어긋난다고 말한다. 5%룰은 회사 경영권을 비밀리에 악의적 목적으로 침탈하려는 적대적 M&A 등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공동으로 의결권만 행사하는 소액주주의 활동에 적용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상목 소액주주연대 플랫폼 ‘액트’ 대표는 “단순히 소액주주들끼리 의견을 교환하거나 플랫폼에 모였다는 이유만으로 5% 공시를 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는 것은 과한 조항 해석”이라며 “아울러 5%룰 위반으로 의결권이 제한되면 주총 결과를 뒤집을 방법은 취소 소송을 제기하게 유일한데 이것도 소액주주들의 경우 시간과 비용 문제로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반면 기업들은 5%가 넘는 ‘공동보유’는 사전 공시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한 상장사 관계자는 “경영권에 참여할 목적으로 주도적으로 행동한다면 소액주주들이 모였다고 해도 공동보유자라고 볼 수 있다”며 “사측에서도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서 법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경영권 관련 의결권에 대한 합의를 구두로만 진행해도 공동보유약정이 이뤄진다고 보고 있는 만큼 사전 공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소액주주들이 다른 소액주주들과 의결권을 공동행사할 목적으로 주주조합에 의결권을 위임하면서, 합의나 계약 등에 따라 합의한 경우라면 공동보유자에 해당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합의나 계약은 반드시 계약서 등 서면에 의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구두의사의 합치가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5%룰 공시 자체는 지켜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사례별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익명을 요구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지분을 모아 구속력 있는 주주 간 계약 등 경영권 침탈에 영향을 줄 목적으로 행사한다면 5%룰에 따라 사전에 공시하는 것은 원칙”이라면서도 “주주들끼리 의견을 나누더라도 단순히 의견을 공유하는 것과 구속력 있는 약속을 서로 하는 것 등 사례에 따라 달리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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