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너머] 디폴트옵션 ‘위험도’가 지닌 위험성

입력 2024-09-11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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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크(risk)를 ‘위험’으로 직역하다 보니 일어나는 폐해인 것 같다”

최근 만난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푸념했다. 디폴트옵션 시행에 따라 퇴직연금 수익률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대다수 고객이 ‘초저위험’ 상품에 가입해 예·적금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은 가입자가 위험도를 사전에 선택해 퇴직여금사업자가 적립금을 자동으로 운용하는 제도다.

디폴트옵션 위험도는 초저위험, 저위험, 중위험, 고위험 등 4가지로 분류된다. 그러나 퇴직연금이 ‘노후를 위한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강한 우리나라 정서상 ‘위험도’라는 단어에 포커스를 두고 선택하기에 고위험, 중위험을 대뜸 선택하기는 어렵다. 당장 가까운 지인에게도 사전 정보 없이 ‘고위험 상품에 가입하라’고 선뜻 권유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이를 증명하듯 상반기 말 기준 디폴트옵션 총 적립금 32조9095억 원 중 89.17%가 초저위험 상품에 몰린 상황이다.

그러나 초저위험과 위험상품의 수익률 차이는 크다. 금융감독원 연금포털에 따르면 최근 1년 수익률 상위권에는 고위험상품들이 줄지어있다. 최고 수익률을 기록한 상품은 25.58%를 기록하기도 했다. 다만, 원금보장형 초저위험상품의 경우는 1년 수익률이 최고 4.15%에 그친다.

초장기 자금운용이라는 연금 상품 특성상 매해 누적되는 수익에 따라 적립금 총액 격차는 매우 커진다.

이에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투자 기간이 장기적으로 남은 경우라면 고위험 상품에 가입해 공격적인 운용을 할 필요가 있는데 안타까울 따름"이라며 "퇴직연금에서 고위험 상품이라고 해봤자 주식 투자 비율이 높은 것 뿐인데 '고위험'이라는 말이 주는 위압감이 있는 것 같다"고 전했따.

일례로 만 30세가 디폴트옵션 상품에 가입해 연금저축 세액공제 한도인 연간 600만 원씩 납입해 60세까지 운용하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연 수익률 3.29%인 초저위험 상품에 투자했을 때 30년 뒤 퇴직연금 적립금은 3억910만 원, 12.42% 수준의 중위험 상품에 투자했을 때 적립금은 17억6615만 원에 달한다.

역설적으로 ‘초저위험’이 투자자의 노후에는 더 위험한 상품이 될 수 있다. 원금보장 선에서 끝나는 디폴트옵션은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라는 도입 취지에 부합하지 못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리스크를 그대로 ‘위험’이라고 보기보다는 수익률 변동폭이 크다는 뜻에서 ‘변동성’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역시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대응할 필요가 있겠다. 디폴트옵션의 ‘초저위험’ 상품 편중이 이어진다면 국민연금이 와도 수익률은 제자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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