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 고백→친권 포기서 작성까지…'이혼 예능' 범람의 진짜 문제 [이슈크래커]

입력 2024-09-09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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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JTBC '이혼숙려캠프')
▲(출처=JTBC '이혼숙려캠프')

이혼을 소재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혼을 고민하는 부부부터 이미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고 나온 부부, 또 이혼 후 수년이 흘러 새로운 삶을 꾸린 이들까지, 출연자도 각자의 사연도 다채롭죠.

이혼은 과거 '금기'와도 같았습니다. 특히 연예계에서는요. 세간의 관심을 받는 연예인 부부의 경우 이혼을 고려해보기조차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요. 이혼한 연예인들은 수많은 취재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습니다. 이혼이 해명까지 해야 할 만큼 낯설고 어려운 일이었다는 거죠.

과거 연예계를 생각해보면 이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확연히 변화했습니다.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하게 된 건데요. 반가운 일은 아니지만, 한국의 이혼율은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201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이혼율 9위, 아시아에선 1위를 차지했습니다. 2022년 기준 국내 이혼 건수는 9만3200건에 달할 정도로 많죠.

사회적 흐름과 유행을 좇는 방송가에서 이혼을 소재로 하는 프로그램이 다수 제작되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는 건데요. 특별해 보이기만 하던 연예인 부부의 현실적인 고민과 갈등에 공감하거나 위로받았다는 반응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득이 있으면 실도 있는 법. 범람하는 이혼 예능만큼 부작용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외도 등 자극적인 사연과 부부 갈등에서 그려지는 폭력적인 장면까지 우려되는 지점이 한두 개도 아닌데요. 가장 큰 문제는 방송에 노출되는 '아이들'이라는 우려도 나옵니다.

▲(출처=MBN '한 번쯤 이혼할 결심')
▲(출처=MBN '한 번쯤 이혼할 결심')

가상 이혼 준비하는 스타 부부들…'한 번쯤 이혼할 결심'

최근 눈길을 끄는 이혼 예능 중 하나는 MBN '한 번쯤 이혼할 결심'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스타 부부들이 '가상 이혼'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내는 가상 이혼 관찰 리얼리티인데요. 당초 5부작 파일럿 예능으로 시작했지만, 정규 편성돼 주 1회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8일 방송된 '한 번쯤 이혼할 결심'에서는 전 야구선수 최준석과 부인 어효인 씨가 이혼에 대해 고민을 털어놓고 상담받는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두 사람은 2011년 결혼했지만, 최준석이 자유계약선수(FA)로 2013년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와 총 35억 원(4년 계약금 15억 원·연봉 4억 원·옵션 4억 원 등)에 이르는 계약을 체결한 이후 부부 갈등을 겪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지난달 방송에서 어 씨는 "고액 연봉을 받으니 '사람이 왜 저렇게 못 돼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남편이) 결혼 전엔 그러지 않았는데 애석하게도 당시 돈을 손에 많이 쥐면서 많이 변한 걸 느꼈다. 좋은 대우를 받다 보니 집에 들어오면 대우받고 싶어 했다"고 토로한 바 있죠.

최준석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며 "FA 계약 이후 '이거 해보자', '저거 해보자' 하는 소위 '똥파리'들이 주변에 많이 붙었다. 오만가지 말들이 너무 많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는데요. 지인에게 당한 사기로 20억 원가량을 잃었다고 합니다.

이날 각자 양소영, 노종언 변호사를 만난 두 사람은 투자 사기로 인한 부부 갈등을 털어놓고 '가상 이혼'에 대한 상담을 받았습니다. 먼저 양 변호사는 어 씨에게 "남편의 투자 실패 자체가 이혼 사유가 되긴 힘들다. 가족이 다 잘 되자고 (좋은 의도로) 투자를 했기 때문"이라며 "특히 결혼 생활 중 진 빚은 자산에 속해서, 이혼 시 부부가 (채무를) 분할할 수 있다"고 설명해 눈길을 끌었죠.

어 씨는 "남편과 일상적인 대화가 되지 않는다"며 "제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해준 적이 없다"고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는데요. 이에 양 변호사는 "그런 부분은 충분히 이혼 사유가 될 수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어 씨는 "사실 결혼 초, 첫째 아이 임신 중에 가정법원에서 이혼 합의서를 쓴 적이 있다. 또 둘째 임신 때에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했었다"며 눈물을 멈추지 못했는데요. 스튜디오에서 이를 지켜보던 최준석은 "아내가 첫 임신을 했을 때, 저도 선수로 뛰다가 부상을 당해 굉장히 힘들었다. 그래도 아이를 위해 이혼 합의서는 제출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내가 둘째 임신 때는 그런 (극단적인) 말을 해서 큰 충격을 받았지만 어떻게 위로해 줘야 할지 몰라서 가만히 있었다.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던 게 후회된다"고 털어놨죠.

양 변호사는 "아내 입장에서 자꾸 남편이 (대화를) 피하면 굉장히 절망스러울 것"이라며 "두 사람 모두 대화의 기술이 절실하게 필요해 보인다"고 부부 심리 치료를 권했습니다.

각자 상담을 마친 부부는 '가상 이혼 협의서'를 쓰기로 했습니다. 이때 어 씨는 친권 및 양육권은 자신이 맡겠다고 한 뒤 "부채는 나에게 의무가 없다"고 강조했는데요. 최준석은 "부부의 채무는 법적으로 반반 부담이라고 들었다"며 맞선 끝에 "그래, 내가 다 갚을게"라고 한발 물러섰습니다. 그는 '면접 교섭권'에 대해선 "보고 싶을 때마다 아이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청했고, 어 씨는 "날짜를 정해 규칙적으로 만났으면 한다"고 이견을 보였죠.

이들은 양육비에 대해서도 팽팽히 대립했습니다. 이후 어 씨는 인터뷰를 통해 "이러다가 다들 소송까지 가고 하나 보다"며 씁쓸해했는데요. 양 변호사는 "사실 한 가정이 이혼으로 둘로 나뉘면 비용이 두 배가 든다. 그러다 보니 다시 잘살아 볼 결심을 하기도 한다. 최고의 재테크는 부부가 함께 잘 사는 것"이라고 덧붙여 이혼의 현실 무게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사진제공=SBS, KBS2, MBN, ENA·SBS PLUS)
▲(사진제공=SBS, KBS2, MBN, ENA·SBS PLUS)

'이혼숙려캠프' → '나는 솔로' 돌싱 특집…이혼 소재 예능 봇물

지난달 방송을 시작한 JTBC '이혼숙려캠프'는 인생을 새로고침하기 위한 부부들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이혼을 고민하는 부부들이 이혼 숙려기간과 조정 과정을 가상으로 경험하면서 이혼의 현실적인 부분을 고민하는 리얼리티로, '한 번쯤 이혼할 결심'과 유사한 형식이지만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이 출연한다는 차이점이 있죠.

5일 방송에서는 최종 조정 시간을 갖게 된 부부들의 모습이 공개됐습니다. 쌍방 폭언과 폭행으로 '투견 부부'라는 별명이 붙은 길연주·진현근 부부는 심리극 치료를 받았습니다. 출연진 진태현과 박하선은 본업을 살려 투견 부부로 빙의, 언성을 높이고 물건을 던지기도 하며 두 사람의 평소 모습을 열연했는데요. 이들 부부가 자신들의 모습을 되돌아보면 좋겠다는 취지였죠. 투견 부부는 자신들의 모습을 따라 하는 두 배우를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불편한 듯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후 진 씨는 "똑바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민망하고, 내 상황이 되니까 감정 이입이 되더라. 우리 모습이 저랬구나 싶어서 충격이었다"고 전했습니다. 길 씨도 "상황극이 제일 충격이었다. 내가 저런 표정을 갖고 있고 평소에도 언성을 높이며 얘기하고 남편에게 이런 막말을 쏟아부었구나 싶었다. 너무 보기 싫었다"고 반성했죠.

이혼 예능이 이혼을 고민하는 부부만 조명하는 건 아닙니다. 이미 이혼한 이들이 출연하는 예능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SBS 간판 예능 중 하나인 '신발 벗고 돌싱포맨', KBS 2TV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 채널A '탐정들의 영업비밀', TV조선 '이제 혼자다' 등 방송사마다 이혼 예능을 방송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MBN '돌싱글즈', ENA·SBS Plus '나는 SOLO'('나는 솔로') 돌싱 특집 등 새 반려자를 찾는 연애 예능까지 포맷도 다양하죠.

모든 콘텐츠는 시대를 반영합니다. 이혼이 전보다 쉽게 전할 수 있는 사연이 되면서 방송가에서도 단골 소재가 된 건데요. 이혼 예능의 MC도 이혼을 경험한 연예인들이 주로 맡으면서 공감과 이해를 자아내고, 이혼 전문 변호사, 심리 상담가 등 전문가들의 진단과 견해가 더해지면서 부부와 가족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됩니다.

▲(출처=JTBC '이혼숙려캠프')
▲(출처=JTBC '이혼숙려캠프')

경쟁 심화에 자극성도↑…노출되는 '아이들' 어쩌나

이혼을 소재로 하는 예능은 통상 부부 갈등 봉합과 관계 개선에 취지를 둡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방송 취지보다는 자극성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를 어렵게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변화했지만, 방송가에서 이혼은 여전히 자극적인 방식으로 그려지는 겁니다. 각 방송사에서 이혼을 소재로 하는 예능을 경쟁적으로 선보이면서 자극성은 더 심화했죠.

갈등을 겪는 부부들의 모습은 적나라하게 전파를 탑니다. 이 과정에서 서로를 향해 삿대질하거나 욕설을 내뱉고, 폭행하는 모습까지 가감 없이 공개되면서 시청자들의 경악을 부르는데요. 무엇보다 큰 문제는 아동 출연자들입니다. 부부 갈등을 부각하거나 시청자들의 몰입을 강화하려는 장치로 아이들을 이용하는 셈이죠.

'한 번쯤 이혼할 결심' 파일럿 방송 당시 방송인 정대세·명서현 부부는 가상 이혼 합의서를 작성한 후 자녀들에게 이 사실을 에둘러 전했습니다. 정대세는 "아빠가 집을 샀다. 엄청 좋지 않겠냐. 여기도 우리 집이고 저쪽에도 아빠 집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충격받은 아이들의 반응이 그대로 송출됐습니다. 아이들은 "안 괜찮다", "가족이 더 좋다", "슬프다" 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해당 장면에 온라인상에서는 "정서적 아동 학대"라는 거센 비판이 나왔습니다.

제작진은 정규 편성 후 진행된 온라인 제작발표회에서 "프로그램 촬영 전부터 미성년 자녀들에게 이혼이 (직접) 노출되지 않게 하자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이혼 과정에서 가장 큰 축이 재산 분할과 양육권이라서 이 문제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정대세 부부 촬영 내용에서도 이혼을 직접적으로 노출하지 않고 에둘러 표현해 과정을 설명했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우려하는 부분도 있었던 것 같아 제작진을 대표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는데요.

이어 "정규 편성에서는 아이들이 일상생활 정도에만 참여할 것"이라며 "이혼 과정이라든가 부부의 갈등 요소에서는 (자녀들을) 최대한 배제해 촬영했다"고 강조했죠.

'한 번쯤 이혼할 결심'뿐만이 아닙니다. '이혼숙려캠프'의 투견 부부는 5세 아이가 지켜보는 앞에서도 심한 욕설과 막말을 내뱉으면서 다퉜고 폭력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부부가 조금만 언성을 높여도 울면서 말렸다는 아이는 이제 큰소리가 나도 가만히 기다리거나 누워서 영상을 보는 모습으로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부모의 싸움에 익숙해진 아이의 모습을 VCR로 지켜보던 박하선은 오열했고, 서장훈은 "애가 듣는데 저런 짓을 한다는 건 부모의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라고 분노했습니다.

국내 방송 심의 어린이·청소년 보호 규정에 '출연자의 신체 및 정서적 안정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장면을 방송해서는 안 된다'(제45조)는 내용은 있지만, 다소 두루뭉술합니다. 어떤 장면이 신체 및 정서적 안정을 우려하게 하는지, 또 심각성의 기준은 무엇인지 구체적인 설명이 부재하죠. 이에 어린이 출연자에 대한 모자이크 처리 의무화 등 구체적이고 실효적인 보호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제도 손질에 앞서 방송 측의 자체적인 제동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아이들의 심리 상담을 병행하고 있다는 등 논란 해명에 그칠 게 아니라, 부작용에 대한 사전 고민과 엄격한 검열, 예방 장치를 필수로 갖춰야 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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