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에세이] 아빠 육아의 장애물들

입력 2024-08-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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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45회 베페 베이비페어에서 한 예비 아빠가 아기띠를 체험하고 있다.  (뉴시스)
▲2월 1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45회 베페 베이비페어에서 한 예비 아빠가 아기띠를 체험하고 있다. (뉴시스)

얼마 전 두 돌 된 딸과 꽤 규모가 큰 쇼핑센터에 갔다가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다. 아이가 큰일을 봐 급하게 영유아 휴게실에 갔는데, 입구에 ‘남성 출입금지’안 안내가 붙어 있었다. 보통 기저귀 갈이대가 설치된 영유아 휴게실은 수유실과 한 공간에 설치돼 있다. 다행히 휴게실 내 불이 꺼져 있었다.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뒤 급하게 아이 엉덩이를 씻고, 기저귀를 갈았다.

지난주에는 휴게실도 없는 건물에서 아이가 큰일을 봤다. 이 건물에는 가족용 화장실도, 남자 화장실 내 기저귀 갈이대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비좁은 대변기 칸에서 한 손으로 아이를 든 채로 물티슈로 뒤처리하고 기저귀를 갈았다. 그리고 곧장 집으로 가 아이를 씻었다.

아이와 단둘이 외출할 때면 불편한 게 많다. 소변을 보든, 대변을 보든 한 번 외출에 적어도 두세 번은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는데, 영유아 휴게실은 대부분 수유실과 함께 설치돼 있다. 그래서 대부분 ‘여성 전용’이다. 갈 곳이라곤 가족용 화장실 정돈데, 가족용은 애초에 유아용이 아니라 분변을 처리하고 기저귀를 가는 게 편하지 않다. 남자 화장실은 말할 것도 없다.

밥 먹이는 것도 일이다. 보통 생후 6개월부터 18개월까진 이유식과 분유를 함께 먹인다. 이유식을 데우고, 아이를 앉히거나 눕히려면 또 영유아 휴게실이 필요하다.

이런 일이 빈번하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와 외출할 때 선택지가 점점 좁아졌다. 모유수유 공간이 격실로 구분돼 아빠도 출입 가능한 휴게실을 갖춘 백화점과 대형마트, 아웃렛 정도만 가게 된다. 이조차 자주 가면 아빠도 지겹고, 아이도 지겹다. 그렇게 점점 외출이 줄어든다.

아직 겪어보진 않았지만, 아이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불편할 것 같다. 명시적으로 대중교통의 배려석은 임산부나 영유아 동반자를 위한 것이나, 영유아 동반자는 일반적으로 엄마로 인식되니 말이다. 아이를 안은 아빠는 일반석에 앉은 다른 사람의 ‘배려’를 바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일은 아빠들이 겪는 보편적 어려움 중 하나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4월 기혼남녀 480명(남 212명, 여 26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약 10%가 ‘아빠 육아 시 생활 속 가장 불편했던 점’으로 ‘수유실 출입’을 꼽았다. 주요 의견으로 ‘남자 화장실 내 기저귀 갈이대 설치’, ‘남성의 수유실 출입 불가에 따른 불편함’ 등이 제시됐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더 힘들어지는 쪽은 ‘아빠’가 아닌 ‘엄마’다. 아빠는 불편한 환경을 이유로 자녀와 외출, 외출 시 자녀 돌봄을 엄마에게 떠넘기게 될 테니 말이다.

육아휴직,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등 일·가정 양립 지원제도 확대는 아빠들의 ‘육아 시간’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육아 방식’을 바꾸진 못한다. 육아 방식을 바꾸려면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굳이 남성용 휴게·수유실을 따로 만들 필요도 없다. 재정을 활용해 민간건물들이 기존 휴게·수유실에 모유수유 공간을 격실로 구분하도록 지원하고, 공공화장실을 중심으로 남자 화장실에 기저귀 갈이대를 설치하는 정도로도 큰 효과를 볼 것이다.

모든 변화는 사소한 관심에서 시작된다. 환경이 개선돼 아빠들이 더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하게 된다면, 엄마의 육아 부담도 줄어들 것이다. 이런 작은 변화가 장기적으로는 저출산 극복에도 힘을 보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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