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로] ‘신뢰자본’ 결핍, 우리 사회 만병의 원인

입력 2024-06-24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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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분열·갈등 극한대결로 치달아
국회 가장 심각…협치없이 일방독주
사회자본 복구 못하면 후진국 추락

사회학자들은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를 경제적 자본이 아니라 사회적 자본으로 설명한다. 선진국은 사회적 자본이 발달하여 정부와 법을 신뢰하고 계약과 약속을 준수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사회 통합이 용이하다. 반면에 후진국은 사회적 자본이 미흡하여 정부와 법을 불신하고 계약과 약속을 지키지 않아 갈등과 대립이 팽배한 것이다. 한때 경제적 풍요를 구가했던 중남미 국가들이 빈국으로 추락한 것도 사회적 자본의 결핍에서 그 원인아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매우 위태로운 분기점에 놓여 있다.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며 많은 자본을 보유하고 있지만, 사회적 자본은 여전히 부족하며 그중에서도 신뢰자본이 가장 열악하다. 현재 우리 사회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며 국민을 분열시키는 갈등도 근본적으로 신뢰자본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사기 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사기 사건이 만연하다. 사기범죄는 한 해 30여만 건에 달해 발생건수 기준으로 부동의 1위 자리를 차지한다. 사기범죄는 단순히 건수만 많은 게 아니라 질적으로도 나쁘다. 다단계 사기, 코인 사기, 피싱 사기, 전세 사기, 보험 사기 등으로 날로 진화하고 변신하며 국민의 돈을 갈취하며 고통을 안겨준다. 은행원이 거액의 은행 자금을 횡령하는 사건도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

정부에 대한 불신도 심각하다. 정부 정책은 일관성이 결여되어 신뢰받지 못한다. 부동산 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뒤집혀 혼란을 초래한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순응하면 손해 보고 반대로 하면 돈을 번다는 웃지 못할 교훈이 나돌 정도이다.

법률에 대한 불신도 크다. 국민들은 법에 의해 정의가 실천된다고 믿지 않는다. 검찰은 권력에 휘둘리고 법원은 전관예우에 갇혀있다. 권력과 돈이면 얼마든지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인식이 사기범죄를 키우는 양분을 제공한다.

가장 큰 불신을 받는 곳이 국회이다. 국회의원은 더 이상 존경의 대상이 아니다. 국익보다 진영논리에 충성하고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국회의원은 조롱거리감으로 전락했다. 여당과 야당이 협치하지 않는 이유는 서로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협치는 타협과 양보를 의미하는데 상대방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독박을 쓴다. 정치에서 신뢰가 전제되지 않으니 대화와 타협보다 힘과 대립에 의해 극한대결로 치닫는다. 최근 제22대 국회에서는 제1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놓고 증폭된 갈등과 대립이 정치권을 넘어 행정부와 사법부로까지 확장되는 것이 박약하게나마 남아 있는 사회적 자본마저 증발시킬 사태로 우려된다.

선거 때마다 공정이 중요한 공약으로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 정치와 사회에 불공정이 성행한다는 증거다. 재미있는 증상은 공정의 개념과 기준이 주관적이라는 사실이다. 자신에게 유리하면 공정하고 불리하면 불공정한 ‘내로남불’이 역으로 공정이라는 사회적 자본을 오염시키고 변질시킨다.

우리 사회에서 신뢰자본이 결핍된 분야는 정부나 정치권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학계와 언론도 공정성을 상실하여 신뢰를 잃었다. 사회적으로 첨예하게 충돌하는 이슈가 해법을 찾지 못하고 극렬 대립으로 치닫는 것은 과학적 증거와 객관적 논리를 제공하여 중립적 해법을 모색하는 전문가 집단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전의 코로나19 예방대책이나 지금의 의대정원 증원 문제도 전문가들마다 입장이 다르고 주장이 상이하여 국민적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 그런 전문가들이 나중에 정치권에 영입되어 비례대표 국회의원이나 장차관으로 임명되는 것을 보면 참담하기 짝이 없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예전과 같은 정론을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 사상적으로 편향된 렌즈를 끼고 사회 현상을 정치적으로 재단하고 왜곡보도하여 편 가르기에 앞장선다. 신문 구독률이나 방송 시청률이 떨어지는 것은 신뢰를 잃어버린 언론의 자업자득이다.

시민단체가 최악이다. 이름은 시민을 위한 단체라 하면서 실제로는 단체 임원의 출세와 진영대결의 전위대 역할에 충실하여 사회 통합보다 분열을 조장한다. 신뢰가 생명인 전문가와 단체가 신뢰받지 못한다는 것은 존재 이유가 없어진 것과 같다. 그런데도 타락한 학자, 언론인, 운동가들이 정치권이나 정부에서 요직을 맡으며 출세가도를 달리니 개탄할 노릇이다.

경제적 자본은 외국에서 도입할 수 있고 재투자를 통해 짧은 시간에 축적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자본은 자체적으로 축적해야 하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한번 훼손되면 다시 복구하기 어렵다. 사회 전반적으로 신뢰자본이 망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후진하여 중남미 국가처럼 추락하게 될 것이 심히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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