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체제 100일, 아물지 않은 전대 상처
이준석과 함께 하는 이유
“내년 총선, 의원이 되는 게 현재 목표”
천하람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3·8 전당대회에서 혜성처럼 등장했다. 처음에는 “저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반응이 주였다. ‘국민의힘 1호 혁신위원’, ‘순천에 사는 젊은 보수’ 당 안팎에서 그를 일컬었던 다양한 수식어는 어느 순간 하나로 통일됐다.
‘이준석계’라는 꼬리표가 자칫 부담스럽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천 위원장은 “최소한 이준석 전 대표와 가까이하면 공천에 있어서든, 당 활동에 있어서든 불이익을 받는다는 협박에 못 이겨서 관계를 단절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거만해지려고 하다가도 이준석 전 대표를 보면, (나보다) 정치적인 존재감이 훨씬 크니까 ‘내가 아직 갈 길이 멀었구나’ 이런 생각도 든다”고 했다.
전당대회가 끝난 지 4개월. 지난달 27일 순천에서 내년 총선의 새로운 꿈을 향해 도전하는 천 위원장을 만났다.
- 어떻게 지냈을까.
“전당대회 이후에 고마운 분들에 인사도 하고, 요즘은 서울 활동을 줄이고 순천에서 지역구 챙기면서 잘 지내고 있었다. 순천만 정원박람회 기간이기 때문에 순천을 방문하는 분들이 많아서 손님 치르느라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 최근 김가람 최고위원이 만나자 했다고 들었다.
“약간 과대포장을 하는 게 ‘만나자’라고 제대로 연락 온 게 아니고, 지난번 김기현 대표와 같이 당 지도부가 광주를 찾았을 때 지나가는 말로 ‘순천 가면 얼굴 한번 보자’라는 정도의 얘기였다. 저도 그냥 웃으면서 ‘알겠다. 상황 보고 또 얘기하자’ 이런 정도였다. 만날 만한 좋은 이유가 있으면 당연히 만날 수 있고, 자연스럽게 접근할 일이라고 본다.”
- 그럼 만나자는 연락이 오면 만나는 건가.
“상황을 봐야죠. 예를 들어 김가람 최고위원이 순천시를 방문해서 순천시장을 만나는데, ‘같이 가자’ 하면 저도 당연히 당협위원장이니까 같이 갈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 김기현 대표의 연포탕(연대·포용·탕평)에 대해 “오래 끓이면 낙지가 질겨진다”고 했다.
“연포탕 끓인다는 말만 오래 하고, 끓이는 데 시간이 너무 걸리는 것 같다. 김기현 대표 체제가 출범한 지 100일이 훌쩍 지났는데, 연대·포용·탕평이 실현된 게 뭐가 있나. ‘연포탕’이라는 구호만 오랫동안 가져가면서 실제 성과가 없다. 김기현 대표 체제에서 김기현 대표도 안 보이지만, 국민의힘 정치인들이 잘 안 보인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말 몇 마디 하니까 고문에서 해촉해버리고, 이준석·유승민·안철수·나경원 등 국민의힘에서 자기 얘기 한다는 사람들이 전당대회 전후로 상처를 받았고, 아직까지 제대로 뭔가같이 한다는 분위기가 안 만들어지고 있다.”
- 그래도 김기현 대표가 취임 이후 호남을 세 차례 방문하면서 연포탕 기치로 외연 확장을 시도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호남을 많이 온 것이 무슨 포용을 많이 하는 것인가. 호남이 무슨 외국인가. 오히려 호남은 우리 당의 상대적 취약 지역이니까 전국 정당을 하려면 취약 지역에 더 애를 쓰는 것이 당연하다. 오히려 정당 운영의 측면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포용하면서 당 운영을 활기차게 하고 있냐?’고 물었을 때,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 그런 면에서 이준석 전 대표나 천하람 위원장의 내년 총선 공천 여부를 두고 당에서 설왕설래가 오간다. 왜 자꾸 이런 얘기가 나올까.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이 국민의힘에서 정치하는 게 적합하냐, 안 하냐에 대해서 대통령의 말을 무조건 따르느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삼으려고 하는 것 같다. 우리가 아무리 여당이지만, 대통령에 대해서도 건전한 비판을 할 수 있는 거 아니겠나. 문재인 정부도 그런 것을 용인하지 않다가 망했다. 대통령에 충성하지 않으면 공천 못 받을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그에 반하는 눈에 띄는 사람이 이준석 전 대표니까 관심이 많은 것으로 생각한다.”
- 그런 면에서 당에서 이준석 전 대표에게 공천을 줄까.
“잘 모르겠다. 지금 약간 희망 고문하고 있는 것 같다.”
- 천하람 위원장 본인의 공천과 관련해선 어떤가. 이준석 전 대표처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나.
“가능성을 열어두고 말고 할 게 많지 않은 게 순천에서 공천을 못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도 당연히 어떤 식으로 정치 상황이 펼쳐지는 건가에 따라 열어두고 생각을 하고 있다.”
- 모 언론 인터뷰에서 김종인 전 위원장이 금태섭 전 의원을 만나보라 했다 말했다. 만났을까.
“개인적으로 만난 건 아니고, 언론 인터뷰를 함께 하면서 이야기 나눈 정도였다. 금태섭 전 의원이 신당 오라고 했는데, 안 간다고 했다.”
- 금 전 의원이 안 서운해하던가.
“서운하고 말 게 없는 게 지금 너무 나이브하다. ‘윤석열, 이재명 싫은 사람 다 모여라’ 이런 것이다. 그 정도로는 안 된다. 정확하게 당의 정체성이 무엇이고, 어떤 식으로 이걸 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청사진이 있어야 한다. 그런 것 없이 사람들만 모으는 것은 굉장히 위태로운 행태다. 저는 그런 위태로운 행태에 낄 생각이 없다.”
- 제3지대가 잘 안 될 것이라는 말일까.
“제가 전당대회를 해보니까 ‘저 사람 싫은 사람들 모이세요’라고 하는 게 초반에는 굉장히 강력하다. 결국은 ‘무엇을 할 것인가’가 나와야 한다. 국민의힘이나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에게 욕을 먹는데도 1, 2당을 하는 이유는 나름의 가치 체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하루아침에 대체하겠다고 할 거면 정교하게 잘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신당에 ‘노란봉투법 어떻게 할 거야?’라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까. 국민들은 내가 겪어보고 예상 가능한 정치 집단을 신뢰하지, 참신해 보인다고 표를 주지 않는다.”
- 결국에는 국민의힘을 개혁해야 한다는 얘기인데,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있나.
“쉽지 않다. 쉽지는 않은데, 쉽지 않을 때 일관성을 지켜야지 국민들이 신뢰를 해주시는 거니까. 정치적인 대의를 위해서 타협을 하는 것까지는 할 수 있겠지만, 개인이나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서 야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저와 같이 전당대회를 같이 치렀던 ‘천아용인’(천하람·허은아·김용태·이기인)을 비롯한 소위 ‘개혁세력’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당의 주류가 되도록 해나가야 하는 것이죠, 시간을 가지고.”
- 이준석 전 대표와 계속 함께 하나.
“정치적인 지향점이 당분간 어느 정도 일치한다면, 당연히 같이 활동을 할 수 있는 거다. 최소한 이준석 전 대표와 가까이하면 공천에 있어서든, 당 활동에 있어서든 불이익을 받는다는 협박에 못 이겨서 관계를 단절할 생각은 없다.”
- 같이 정치하는 입장에서 이준석 전 대표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준석’이라는 사람이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체급보다 저평가되는 면이 있다 보는데, 정치경력이 10년이 넘고 당 대표까지 역임했다. 저보다는 사실 정치를 더 앞서서 해나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존재가 가까이 있어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바라건대, 저도 더 성장하고 나면 ‘건강한 경쟁 상대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작게는 이제 이런 것도 있다. 전당대회 끝나고 나서는 인지도가 나름 올라와서 길거리를 다니면 저를 알아보고 인사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럴 때 약간 거만해질 수 있다. 거만해지려고 하다가도 이준석 전 대표를 보면, (나보다) 정치적인 존재감이 훨씬 크니까 ‘내가 아직 갈 길이 멀었구나’ 이런 생각도 들고…. 건전한 멘탈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 전당대회 이후 ‘천아용인’의 행보가 뜸하다. 향후 활동 계획 있을까.
“개인적으로 활동을 아끼자는 편이다. 특별한 어떤 정치적인 메시지가 없는데, 우르르 몰려다닐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각자가 부족한 콘텐츠를 채우고 내실을 다질 때다.”
- 언제쯤 다시 등장할까.
“세월이 우리를 부르겠죠.”
- 전당대회가 끝난 지 4개월이 됐다. 앞으로의 계획이 좀 명확해졌을까.
“목표가 구체적으로 보인다고 해야 할까요? 많은 분들이 제가 얻은 15%가량의 득표만 보고 ‘국민의힘을 변화시키는 게 정말 어려운 것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대통령이 그렇게 밀었는데도 김기현 대표는 52% 정도 지지를 받았다. 생각보다 우리 당원들은 주체적인 판단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인 서사를 많이 못 쌓은 상태에서 도전했던 것이기 때문에 다음부터는 당 대표 선거나 전국 단위 선거에 어울리는 정치적인 서사를 잘 쌓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저는 결코 절망적인 결과라 생각하지 않는다. 일단 당장 다음은 총선이니까 가능하면 의원이 돼야겠다는 것이 현재의 목표다. 또 개인 천하람도 있지만, 호남에서도 사랑받는 국민의힘을 만들어야겠다 한다. 남에게 미룰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제가 주도적으로 만들어 가야겠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