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메이저리그(MLB) 사무국이 주도해 창설한 WBC는 2009년부터 4년 주기로 열렸습지만 코로나19 탓에 2021년 예정됐던 제5회 대회가 무산되면서, 2017년 대회 이후 6년의 공백이 있었죠.앞서 2006년, 2009년 대회에서는 일본이 2연패를 기록했고, 2013년은 도미니카공화국이, 2017년은 미국이 각각 우승한 바 있습니다.
그간 4차례 열린 WBC는 역사가 짧은 편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야구 국가대항전입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주관하는 올림픽,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이 만든 프리미어12에선 메이저리거를 볼 수 없지만, WBC에서는 빅리그 26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린 선수들도 유일하게 참가하며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올해 대회 참가국은 지난 대회 성적을 토대로 초청받은 한국, 일본, 대만, 중국, 호주, 미국, 멕시코, 캐나다, 쿠바, 도미니카, 푸에르토리코,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네덜란드, 이탈리아, 이스라엘 등 16개국과 각 지역 예선을 통과한 체코, 영국, 파나마, 니카라과 등 4개국입니다.
B조에 속한 한국은 일본 도쿄돔에서 호주(9일), 일본(10일), 체코(12일), 중국(13일)과 잇따라 격돌합니다. 조 1·2위가 2라운드(8강)에 오른 뒤에는 A조(대만·네덜란드·쿠바·이탈리아·파나마)에서 올라온 팀과 맞붙어 4강 진출 팀을 가릅니다. 준결승과 결승은 미국 마이애미 론디포 스타디움에서 펼쳐질 예정이죠.
한국 야구대표팀의 목표는 4강 진출입니다. 2009년 이후 번번이 고배를 마셨던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14년 전 준우승의 영광을 재연하겠다고 다짐했죠.
이와 함께 한국과 두 번째로 맞붙는 숙적, 일본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한일전은 스포츠 종목을 막론하고 뜨거운 열기를 부른다지만, 이번 WBC 대회에서 한국은 2009년 이후 처음으로 일본을 마주하게 됩니다. 즉 14년 만의 한일전이 성사되는 셈이죠.
14년 만의 대결이 그려지는 가운데, 양국의 영화 같은 서사와 경기력, 일정 등을 정리해봤습니다.
2009년 대회에서 한국은 일본과 맞붙어 연장 10회 승부 끝에 3-5로 석패, 준우승을 기록했습니다. 이후에는 번번이 1라운드에서 탈락하며 일본과의 대결이 무산됐죠.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닷컴은 7일 ‘역대 WBC 최고 경기 10선’에서 2009년 2회 대회 결승전이었던 한일전을 첫머리에 꼽기도 했습니다. MLB닷컴은 “2009년 결승전이 열린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다저스타디움에는 5만 4846명이 모였다”며 “2006년 WBC 준결승에서 일본이 한국을 꺾었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 준결승에서는 한국이 일본에 설욕했다”고 전했습니다. 2009년 WBC 결승전의 열기와 더불어 한·일 양국의 특별한 경쟁심을 염두에 둔 설명입니다.
이어 “한국의 이범호가 다르빗슈 유를 상대로 9회말 동점 적시타를 쳐 승부를 연장전으로 몰고 갔다. 그러나 연장 10회초 스즈키 이치로가 (2사 2, 3루에서) 2타점 중전 적시타를 쳐 일본에 2회 연속 WBC 우승 타이틀을 안겼다”고 부연했죠.
실제 경기에서 한국은 1-3으로 끌려가던 8회말 이대호의 희생플라이로 1점을 추격하고, 9회말 2사 1, 2루에서 이범호가 다르빗슈를 공략해 극적인 동점을 만들며 승기를 끌어올렸습니다. 하지만 연장 10회초 2사 2, 3루에서 임창용이 8구 대결 끝에 스즈키에게 2타점 결승타를 내주며 3-5로 석패했습니다. 한국으로서는 WBC 준우승의 환희와 첫 우승의 아쉬움이 교차한 순간이었죠.
이번 대회 우승 후보로는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경험이 있는 일본, 도미니카공화국, 미국 등이 꼽힙니다. 특히 일본은 2회 연속 우승을 차지한 야구 강국으로, 프로야구 최고 스타들은 물론 현역 메이저리거를 총동원하며 우승을 다짐했습니다. 최종 엔트리에 합류한 현역 메이저리거가 한국은 2명(토미 현수 에드먼, 김하성)이라면 일본은 5명(오타니 쇼헤이, 다르빗슈 유, 스즈키 세이야, 요시다 마사타카, 라르스 누트바)입니다.
일본이 자랑하는 선발투수들은 모두 시속 150㎞대 강속구를 선보이는 ‘파이어볼러’고, 슬라이더, 포크볼 등 변화구에도 능합니다. 한국 야구팀도 6일 오릭스 버펄로스와 WBC 공식 평가전에서 변화구 등으로 애를 먹었죠.
선발진으로 나설 것으로 예측되는 선수들은 다르빗슈, 사사키, 야마모토 등이 있는데요. 7일 닛칸 스포츠 등 다수의 일본 매체에 따르면 한국전 선발로는 메이저리그 12년 차 다르빗슈가 유력한 상황입니다. 사사키는 11일 체코전, 야마모토는 12일 호주전에 출전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르빗슈는 2004년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니혼햄 파이터스에 지명되며 데뷔, 7시즌 동안 167경기에 등판하며 93승 38패 1홀드 평균자책점 1.99, 최다 탈삼진 3회, 최고승률 1회, 최우수 평균자책점 2회를 기록하는 등 실력을 보여준 뒤 메이저리거로 거듭났습니다. 지난해에는 30경기에 선발 등판해 16승 8패 평균자책 3.10을 기록하며 커리어하이에 버금가는 시즌을 보냈죠.
김태균 KBSN스포츠 해설위원은 다르빗슈를 두고 “야구게임으로 치면 모든 구종의 능력치가 최고인 투수”라며 “타석에서 보면 공이 똑바로 오는 게 없다. 뱀이 날아오는 것처럼 휘어지고, 패스트볼은 살아 올라온다”고 혀를 내두르기도 했습니다.
한국 입장에서는 다르빗슈가 ‘실전 경험’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희소식입니다. 현역 메이저리거들은 보험 때문에 WBC 공식 평가전 외에는 연습 경기에 나올 수 없는데요. 즉 다르빗슈는 실전 등판 없이 바로 한국전에 임해야 합니다. WBC 1라운드에서 투구 수는 경기당 65구 이하로 제한되므로, 한국은 다르빗슈가 적응하기 전 초반 공략을 통해 4회 이전 불펜 투수들을 불러내야 한다는 분석입니다.
일본은 타선 역시 강력합니다. MLB처럼 WBC에서도 투타 겸업을 할 예정인 오타니는 9일 중국전에 선발 등판할 예정인 만큼, 한일전에서는 중심 타자로서 한국 투수들을 상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2021년 아메리칸리그 MVP인 오타니는 6일 한신과의 평가전에서는 연타석 3루타를 때리며 존재감을 과시했죠. 그와 함께 지난해 56홈런을 때린 무라카미 무네타카와 오카모토 가즈마, 야마다 테츠오, 겐다 소스케 등이 나설 예정입니다.
일본의 변수로는 중심 타자 스즈키 세이야가 옆구리 부상으로 이탈한 것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세이야는 주전 우익수가 유력했는데, 그의 이탈로 일본은 백업인 곤도 겐스케를 기용하거나, 수비력이 다소 떨어진다는 평을 받는 요시다 마사타카를 우익수로 돌려 내야수인 오카모토를 좌익수로 기용해야 할 상황이 됐죠.
한국 선발로는 투수 고영표, 가운데 타선 토미 현수 에드먼과 김하성, 중심 타선 이정후와 김현수, 박병호가 나설 전망입니다.
특히 이정후는 한국의 ‘타격 천재’로서 일본의 ‘투수 천재’ 야마모토와 격돌할 예정인데요. 1998년생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2019년 프리미어12부터 라이벌 관계로 언급돼 왔습니다. 이번 시즌을 마친 뒤 비공개 경쟁입찰(포스팅 시스템)을 거쳐 메이저리그 무대에 도전할 수 있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죠.
야마모토가 2022시즌 26경기(193이닝)에서 15승5패, 평균자책점(ERA) 1.68을 기록하며 2년 연속 투수 4관왕(다승·ERA·탈삼진·승률)에 올랐다면, 이정후는 2022시즌 142경기에서 타율 0.349, 23홈런, 113타점, 85득점을 기록하며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에 올랐습니다. 이정후는 2021년에 이어 또다시 타율 전체 1위를 마크하며 2년 연속 타격왕을 수상하기도 했죠.
2019년 프리미어12에서 야마모토는 이정후를 상대로 결승전에서 3구 삼진을 잡았습니다. 이후 이정후는 2020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야마모토에 대해 “공이 정말 좋은 투수였다. 공 3개로 삼진을 당했는데, 구종까지 기억한다. 올림픽에서 다시 만나면 이기고 싶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복수에도 성공했죠. 2021년 열린 도쿄올림픽 4강전에서 선발투수로 나선 야마모토를 상대로 3타수 2안타를 뽑아낸 것입니다.
에드먼은 일본의 막강한 투수진을 돌파할 타자로 떠오릅니다. 에드먼은 미국 무대에서 다르빗슈를 상대로 꾸준히 강점을 보여왔죠. 세인트루이스 소속으로 빅리그에서 뛰기 시작한 2019년부터 다르빗슈를 만나 상대 타율 0.375(16타수 6안타)를 기록하며 눈길을 끌었습니다. 일본전에서 에드먼과 다르빗슈의 만남이 성사되더라도, WBC 투구 수 제한으로 두 차례 정도만 대결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역시 초반 승기를 잡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한국은 좌완 투수들의 부진이 걸리는 상황입니다. 이강철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7일 마지막 모의고사로 한신과 연습 경기를 진행, 7-4 역전승을 거뒀는데요.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여줬다는 평이지만 구창모, 이의리 등 한일전 등판 가능성이 거론되는 좌완 투수들의 부진이 아쉬움을 자아냈습니다.
구창모는 0.2이닝 2안타 1삼진 2사구 2실점으로 1이닝을 채우지도 못하고 조기 강판됐고, 이의리는 몸에 맞는공과 볼넷으로 1사 1·2루 위기를 허용하고 강판됐습니다. 이의리에 이어 마운드에 오른 정우영은 8회에서 기복 있는 제구를 보였습니다. 2루타를 허용한 뒤 볼넷 2개를 연속으로 내주며 무사 만루 위기를 맞았죠.
일본 타선에는 우투좌타자가 많기에, 한국은 전통적으로 좌완 투수를 중용해왔습니다. 구창모와 이의리 역시 이 같은 전례에 따라 한일전에 나설 것으로 보였죠. 그러나 앞서 이강철 감독은 WBC와 같은 단기전에서 제구가 나쁜 투수를 경기에 기용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 바 있어, 대표팀은 작전 수립에 난항을 겪을 듯합니다. 일본과 대등한 경기력을 보여주려면 좌완 투수들의 컨디션 회복이 절실한 상황이죠.
야구팬들의 관심은 단연 10일 열리는 한일전에 집중돼 있습니다. 그러나 이강철호 눈앞에 자리한 목표는 당장 1라운드죠. 호주와의 대회, 첫 경기에서 전력을 쏟아내며 승리해야 우승에 가까워질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일본은 9일 중국을 상대하고, 호주와는 가장 마지막인 12일 맞붙기 때문에 한국이 호주전에서 승리하면 기세가 산다는 것이죠.
한국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 예선부터 2007년 대만 야구월드컵까지 호주에 3연패를 당했지만, 이후에는 연달아 8연승을 거두는 등 객관적 전력에서 앞선 상황입니다. 그러나 야구는 끝날 때까지 결과를 쉽게 예측하기 힘든 종목이죠.
SSG 랜더스를 이끌며 사상 첫 와이어 투 와이어 통합우승을 일궈낸 김원형 감독은 한국의 WBC 행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도 ‘호주전 승리’를 전제로 뒀습니다. 김 감독은 “호주를 잡고 나면 일본으로서도 긴장감이 커질 것이다. 승산이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대표팀 관계자나 선수들도 호주전을 신중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김하성과 이정후는 평가전을 마치고 일본 기자가 한일전을 언급하자 “일본과의 경기도 중요하지만, 호주전이 더 중요하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이강철 감독도 일본 선수의 홈런과 관련한 질문에 “홈런답게 봤다. 역시 파워가 좋다는 걸 느꼈다”면서도 추가 질문이 나오자 “그 선수를 평가할 입장이 아니다. 우리는 호주전에 집중하고 있다. 잘 준비하겠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아직 호주전 선발은 공개되지 않은 상황. 경기 전날 오후 9시까지 WBC 사무국에 선발 투수 명단을 제출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 만큼, 저녁 이후 발표될 한국 야구대표팀 선발진에 관심이 쏠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