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안심전환대출의 예상 밖 흥행 부진에 특례보금자리론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출시도 되기 전부터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금리 때문이다. 정부는 우대금리를 적용하면 최저 3.75%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분명 시중은행의 주택금리보단 저렴하지만 조건이 까다롭다. ‘신혼부부 우대금리 소득 조건이 7000만 원 이하’로 웬만한 맞벌이 부부는 그림의 떡이다. 실수요자들은 ‘정부 건설사를 살리기 위해 주택 매수를 권하고 있다’, ‘낮지 않은 금리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을 장려한다’고 비판한다.
시장금리가 빠르게 오르는 가운데 주택 구매나 ‘대출 갈아타기’가 필요한 실수요자를 위한 정책 상품인 특례보금자리론이 30일 출시된다. 최대 관심사였던 금리는 시장 예상대로 연 4%대로 책정됐지만, 소득이나 신혼 가구 등 일정 우대 조건 충족 시 3%대 중후반도 가능하다. 금리 인상기에 시중금리보다 0.4~0.9%포인트(p) 저렴한 고정금리 상품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수요자들의 관심이 뜨겁다.
기존 정책 모기지보다 지원 대상을 크게 넓힌 게 특징이다. 무엇보다 기존 보금자리론(소득 7000만 원 이하)과 달리 소득 요건이 없다는 점에서 파격적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주택가격 상한은 기존 6억 원에서 9억 원으로 늘렸으며, 대출 한도는 3억6000만 원에서 5억 원으로 확대했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적용되지 않아 대출 한도를 늘리는 데 유리하다. 현재 1억 원 초과 대출자에게는 ‘DSR 40%’ 규제가 적용되는데, 특례보금자리론에는 이런 제한이 적용되지 않는다.
기존 보금자리론과 마찬가지로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은 각각 70%(생애 최초 구매자 80%), 60%가 적용된다.
우대금리를 모두 적용하면 3.75%로 매력적이지만, 조건이 안 맞으면 4%대 후반대까지 올라간다.
실제로 저소득청년이나 사회적배려층, 미분양주택 우대금리 혜택을 받는 수는 극히 제한적이다. 3% 후반 금리는 그림의 떡이라는 얘기다.
예를 들어 30년 만기 기본 금리 4.85%에 비대면 가입 우대 금리 0.1%포인트를 적용하면 4.75%가 된다. 원래 있던 정책상품인 보금자리론이 기본 4.95%에 비대면 가입 우대 금리 혜택을 합해 총 4.85%다. 0.1%포인트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셈이다.
4.75% 금리는 어떤 수준일까. 최근 서울 이사 집을 알아보는 직장인 김 씨(35)는 7호선 인근 A 아파트에서 사는 게 꿈이지만, 이 집의 저층 83A타입(전용 59㎡)의 매매 호가는 최저 10억 원으로 특례보금자리론을 이용할 수 없다. 지역을 조정해 신도림역 인근 B 아파트 80타입(전용 59㎡)의 22층 매물의 최저 호가는 7억 원으로 특례 보금자리론을 받을 수 있다. 예비신랑과 모은 돈은 2억5000만 원 정도다. 생애 최초 구매로 LTV가 80%까지 가능해 4억5000만 원은 대출받을 수 있다. 하지만 둘의 연 소득이 7000만 원을 넘어 신혼 가구 0.2%포인트 우대금리 혜택을 받을 수 없다.
4억5000만 원을 4.75%의 금리로 30년 만기 상환 조건으로 대출하면, 매월 갚아야 하는 원리금은 234만7413원이다. 30년간 상환하는 총 이자는 3억9506만 원으로 원금의 두 배에 가깝다.
합산 연봉이 9000만 원 정도라면 DTI도 31%로 충분하다. 그러나 자녀가 생기면 얘기가 달라진다. 외벌이로 바뀐 후 예비신랑의 연봉 5000만 원 기준 DTI는 56%로 급상승한다. 한도 60%보다 낮지만 소득의 절반이 넘는 금액을 원리금으로 갚기엔 버거울 수밖에 없다.
김 씨는 “금리가 저렴하게 나올 것이라고 기다리던 주변 친구들이 모두 실망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라며 “우대 혜택이 없는 이들에게 기존 정책대출과 큰 차이가 없다”라고 말했다.
결혼을 앞두거나 맞벌이 신혼부부의 경우 사실상 기존 보금자리론보다 0.1%p 낮은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다만 중도상환수수료가 면제되는 혜택은 도움이 된다.
4.75%가 결코 낮은 금리가 아닌 만큼 김 씨의 경우 맞벌이를 할 수 있는 시기에 최대한 많이 갚아 부담을 줄이는 게 좋다. 현행 보금자리론은 3년 이내에 갚는 원금에 대해선 0.9%의 수수료를 부과하고, 3년 이후엔 면제된다.
가입 초기 3년 동안 1억 원 정도 더 갚아 잔여 대출금을 2억6549만 원으로 줄이면, 상환 원리금은 145만 원으로 줄어든다. 외벌이로 바뀐다 해도 DTI가 34%로 낮아져 소득 대비 상환액의 비중을 맞벌이 때와 비슷하게 유지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DTI 34%는 국제적인 기준에선 결코 낮은 수준은 아니다. 가계 소득 대비 주거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을 ‘슈바베 지수’라고 한다. 고소득층일수록 낮고, 저소득층일수록 높다. 이 지수가 25%를 넘으면 빈곤층에 속한다고 본다. 엥겔지수와 함께 빈곤의 척도를 가늠하는 지표 중 하나로 사용되고 있다.
주거비는 집세, 상하수도비, 냉난방비, 주택 유지·수선비, 주택 관리비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2007년 9.7%였던 우리나라는 2009년 9.8%, 2010~2011년 10.1%, 2012년 10.4%로 꾸준하게 상승하고 있다.
미국의 통계를 보면 평균 월세 지출액은 슈바베 지수 빈곤 기준에 거의 근접한다. 미국 부동산 정보 업체 ‘리얼터닷컴’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전국 세입자들의 소득 대비 월세 부담률은 26.4%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동기(25.7%)보다 0.7%p 상승한 수치다.
25%를 넘지만, 크게 초과한 것은 아니다. 미 주택 및 도시 개발부(HUD)는 가구소득 대비 월 주거비용 비율이 30% 이상이면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수 있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