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은 통화완화 기조 거듭 강조
미ㆍ일 금리차 확대에 엔저 가속
고유가도 엔화에 악재
6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날 미국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엔 환율은 132.3엔까지 치솟았다. 2002년 4월 이후 20년 2개월 만의 최고치(엔화 가치 최저)다.
엔화 가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빠른 기준금리 인상을 뒷받침하는 경제지표가 발표되면서 하락했다. 미국 노동부는 지난주 5월 비농업 부문 고용자 수가 전월 대비 39만 명 늘어 시장 전망치 32만8000명을 웃돌았다고 밝혔다. 실업률은 3.6%로 완전고용에 가까웠다. 미국 고용시장의 수요 강세는 인플레이션 압박 요인이자 양호한 경제의 척도로 해석된다. 연준이 부담 없이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 배경이다. 이를 반영해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3주 만에 또다시 장중 3%를 돌파했다.
반면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이날도 완화적 통화정책 유지 방침을 고수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경제 회복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긴축은 고려 대상이 아님을 재확인했다. 미·일간 금리 차이가 확대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엔화를 매도하고 달러를 매수하는 흐름이 강해지며 엔화 가치 하락세가 가팔라졌다.
고유가도 엔저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날 서부텍사스원유(WTI)와 브렌트유 모두 장중 배럴당 120달러대를 돌파했다. 전날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가 북유럽, 지중해, 아시아 지역으로의 7월 공식 판매 가격을 인상한 여파다.
에너지의 해외 수입 의존도가 높은 일본은 유가가 치솟으면 달러 수요가 증가한다. 미쓰비시UFJ모건스탠리증권의 우에노 다이사쿠는 “아무리 비싸도 원유구매를 위해 달러를 확보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엔저를 멈추게 할 정책적인 구제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외국인 관광객 입국 제한 조치 전면 해제도 그중 하나다. 일본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면 엔화 수요가 늘어 가치 하락을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1일 일본 입국자 상한을 2만 명으로 제한했다. 이는 과거 성수기 하루 평균 9만 명과 비교하면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규모다. 엔화 가치 하락을 억누르기에 역부족인 셈이다.
일본은행의 통화정책 수정, 원자력발전소 재가동 추진도 엔저를 방어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모두 정치적 논쟁이 큰 사안들이라 실현 가능성이 낮다. 엔저 행진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한편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일본과 수출경합도가 높아 엔저로 인한 악영향이 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엔저 현상이 이어질 경우 일본 기업들에 유리한 구조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5년 ‘엔저 쇼크’ 당시 석유화학업계는 가격 경쟁력 약화로 수출에 타격을 받았다.
다만 정유업계의 경우 원유 및 석유제품 거래가 달러를 기준으로 이루어지고, 대일 수출 물량 역시 달러를 기준으로 정산을 하는 탓에 엔저로 인한 영향은 없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