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인물] 12월 30일 김근태- 야만의 시대를 정의로 꿰뚫은, 말 그대로 ‘민주주의자’

입력 2016-12-30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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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명 편집부 차장

5년 6개월에 걸친 2차례의 투옥, 26차례의 체포, 7차례의 구류,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음에도 삶 전부가 온전히 민주주의인 사람. 독재정권 치하에서 고문을 당하면서까지 민주화 운동을 한 김근태(1947.2.14 ~ 2011.12.30)는 전두환 정권 시절이던 1985년 ‘고문기술자’로 알려진 이근안에게 23일 동안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당했다. 김근태는 2005년에 수감돼 있던 이근안을 면회 가서 용서를 비는 그에게 “그게 어떻게 개인의 잘못이냐, 시대가 낳은 비극”이라고 말하며 용서했다고 한다.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뒤 1960년대 군부독재에 반대하는 학생운동을 주도해 손학규, 조영래(1947~1990)와 함께 ‘서울대 운동권 3총사’로 불렸다. 이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 때까지 재야단체에서 활동하다가 투옥을 반복했다. 박정희 정권이 끝날 때까지 7년 넘게 수배자 생활을 한 그는 이화여대 출신으로 부평 봉제공장에서 위장취업을 하고 있던 인재근을 만나 결혼했다.

이근안에게 고문을 당하고 있을 때, 인재근이 미국 언론과 인권단체에 고문 사실을 폭로해 전 세계에 알렸고, 부부는 1987년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공동 수상했다. 김근태는 그 이듬해 독일 함부르크재단에 의해 ‘세계의 양심수’로 선정됐다.

1990년 5월부터 1992년 8월까지 다시 감옥생활을 한 그는 석방 후에도 재야 민주화 운동을 계속하다가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에 참여해 제도권 정치에 발을 들였다. 하지만 26년간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던 그는 2007년 파킨스병 확진을 받고 뇌정맥 혈전증으로 치료를 받다가 숨을 거뒀다.

‘김근태 재단’과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가 5주기를 맞아 제정한 ‘민주주의자 김근태 상’ 첫 수상자는 29일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에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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