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회의 인문경영] 인문학, 어쩌다 입문학?!

입력 2016-06-14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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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코너 타이틀은 인문경영이다. 요컨대 인문과 경영이다. 인문과 경영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생각해보면 인문과 경영이란 생뚱맞은 ‘이종 요소’를 결합시켜 인문경영이란 용어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지도 얼마 안 되었다. 인터넷을 쳐보면 둘의 상관관계에 대한 일반인들의 의문이 가득하다. 나름대로 인문학 전도사도 많고 열풍은 뜨거운데 정작 분명한 정의는 없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것’처럼 말이다.

얼핏 생각하면 인문과 경영의 결합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요소’로 낯설다. 이 둘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 학교 밖 사회의 인문학 열풍을 주도한 진앙지가 경영자 AMP과정 강의란 점에서 단지 ‘출생지 확인 증명’을 위한 것인가? 인문과 경영의 연관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용어의 의미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 회에서 인문학의 의미를 살펴보고 다음 회에서 경영의 의미, 인문과 경영의 결합의 의미를 알아보자.

<인문학과 사이비 인문학, 입문학을 구분하라>

먼저 인문학부터 톺아보자.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는 ‘인문학(人文學, humanities)은 자연과학(自然科學, natural science)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주로 인간과 관련된 근원적인 문제나 사상, 문화 등을 중심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을 지칭한다’로 돼 있다. 휴머니티의 라틴 어원은 이상적 인간을 뜻하는 후마니타스(humanitas)이다. 학문적 풀이로는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다. 인문학의 정의를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에 대한 오해’를 같이 비교하며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도 방법이다. 먹구름에 가린 달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먹구름을 치우고 달을 보는 게 더욱 효과적인 것처럼 말이다. 필자는 인문학에 대한 비정상적 오해는 ‘입문학’과 착각하는 데서 발생한다고 본다.

인문학과 입문학, 즉 사이비 인문학은 무엇이 다른가.

첫째, 인문학은 입문(入門)학이 아니다. 최근 한 스타 입시강사가 모 케이블TV의 인기 인문학 프로그램에서 한국미술사를 강의하며 기본적인 도판의 오류조차 파악하지 않은 강의로 문제가 됐다. 이는 깊고 어려운 인문학을 얕고 쉽게, 다시 말해 즉석 음식처럼 가공해주기만을 기대한 데서 발생한 ‘당연한 결과’다. 진정한 인문학은 밑줄 쫙, 별 3개 치고 요약정리해 후루룩 3분 만에 요리해 먹도록 해줄 수 있는 즉석 가공지식이 아니다. 언저리 문가만 맴도는 초급 학문을 의미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인간의 기초와 근원을 성찰하고자 하는 것이다. 생각하고 질문하는 것을 배우지, 통조림처럼 꽉꽉 담아 요약정리해주는 즉문즉답이 아니다. ‘인간을 탐구’하는 것이 내용이란 점에서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한다. 하지만, 그것이 진입장벽 없는 초급 코스란 것과 동의어는 아니다.

둘째, 인문학은 입(口)문학이 아니다. 인문학은 교양 코스프레를 위한 한가락 구라(口羅·말로 비단을 펼침)나 입담을 위한 액세서리 학문이 아니다. 현대인으로서 인문학적 교양을 익히는 것은 좋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없이 몇 마디 지식과 두세 마디 명언으로 한두 발짝 앞서감이나 ‘남보다 나음’을 과시하거나 증명하는 데 쓰인다면 길거리의 싸구려 약장수의 가짜약과 다를 것이 없다. 인문학은 실행과 수양이다. 인문학은 만병통치의 처방을 주는 것이 아니라 만병의 근원을 알고자 진단하는 것이다. 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하는 것이다. 난사람보다 된 사람이 되고자 치열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인문학이다. 말을 잘하고자 하는 수사학이 아니다. 생각을 잘하고자 하는 사색학이다.

셋째, 인문학은 입(立)문학은 아니다. 최근 유아교육에까지 인문학 바람이 부는 등 비정상적 버블현상이 극심하다. 최근 인문학 열풍의 근저에는 ‘입신양명의 출세론’ 마케팅도 한몫한다. 인문학이 입시 내지 취업의 출세 과목으로 포장돼 협박 마케팅으로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제시되는 것이 몇몇 대기업의 입사시험 문제다. 예거되는 입사용 인문학 문제라 봤자 ‘개화기에 조선을 침략한 국가들의 순서를 써라’등 무조건 외워야 답할 수 있는 지식 측정의 객관식 문제들이다. 이것은 인문학이 아니라 역사 지식이다. 알파고 시대를 헤쳐나가는 인문학형 인간을 선발하기는커녕 알파고에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는 암기형 문제들이다. 상식이나 지식보다 중요한 게 사고방식이다. 이외에 함께 예거하는 것이 스티브 잡스가 대학 시절 서체를 공부했다든가 글로벌 기업 몇몇 CEO들의 전공이 인문학 관련 학과라는 게 고작이다. 이것은 특정 개인의 전력일 뿐이다. 몇몇 성공한 스타 CEO들이 대학을 중퇴했다고 해서 젊은이들에게 모두 대학을 중퇴할 것을 선동할 수 없지는 않은가. 인문학은 출세와 생존을 위한 시험과목이 아니라 태도이고 인간 이해를 위한 공감학이다. 인문학은 문사철 시서화로 구획 지은 지식이 아니다.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공감학이다. 이론과 지식을 넘어 실행학이다.

<인문학은 고찰, 성찰, 통찰의 3찰이다>

사람 인(人)이 5개면 인간 세상 살아가는 이치를 다 표현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라고 다 사람인가.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란 뜻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은 나의 손톱 밑 가시, 신발 안 모래알의 고통을 미뤄 상대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해줄 수 있는 마음과 태도다. 그것을 배우고자 고찰, 성찰, 통찰하는 것이 인문학이다. 나는 인문학의 고갱이를 3찰(察)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자신을 성찰하고 과거의 인간을 고찰한 것을 바탕으로 미래를 통찰해 지혜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개척해왔고, 상처를 무늬로, 경력을 역경으로 들여다보고자 하는 것이다.

▲송나라의 철학자 정자는 “지금 사람들은 책을 읽을 줄 모른다. 논어를 읽기 전에도 이런 사람이요, 다 읽고 난 뒤에도 또 다만 이러한 사람이라면 이것은 곧 읽지 않은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인문학을 열심히 공부하면서도 행동에 변화가 없다면 이는 입문학이지, 진정한 인문학을 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송나라의 철학자 정자는 “지금 사람들은 책을 읽을 줄 모른다. 논어를 읽기 전에도 이런 사람이요, 다 읽고 난 뒤에도 또 다만 이러한 사람이라면 이것은 곧 읽지 않은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인문학을 열심히 공부하면서도 행동에 변화가 없다면 이는 입문학이지, 진정한 인문학을 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인(人)과 어짊(인·仁)은 동의어이다>

한자 어원으로 인문(人文)의 의미를 살피면 보다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사람 인(人)은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을 옆에서 본 모양의 형상이다. 인(人)은 어질 인(仁)과 통한다. 인(仁)은 사람(人)이 둘(二) 모인 것이다. 인(仁)은 ‘사람 인(人)+두 이(二)’, 즉 두 사람이다. 사람을 알아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고통과 간격을 미리 읽고 감싸고 궁리해야 리더가 될 수 있다.

한약방에 가보면 한약재료로 행인(杏仁), 도인(桃仁)이란 것이 있다. 뭐 특별한 것 같지만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복숭아씨, 살구씨를 가리킨다. 왜 과일의 씨를 仁이라 표현했을까. 이는 인(仁)이 천지의 모든 원리를 포함하고 있다는 생각의 반영이다. 오행에서는 봄의 德을 仁이라고 했다. 봄은 모든 생명이 자라는 때이고, 싹이 트는 때이다. 그래서 모든 생명을 품고 있는 씨앗은 仁이라고 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행위에서도 마찬가지다. 인을 군자의 5가지 덕 중 제일 먼저 꼽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상대와 마음이 통해 공감하는 인(仁)이야말로 모든 인간다움의 씨앗이요, 시작이다. 동양의학에서는 중풍을 불인(不仁)이라고도 표현했다. 중국 송나라의 철학자 정자는 어질 인(仁)을 풀이하며 不仁과 대비해 설명한다. 자기의 몸인데도 아픈 것을 느끼지 못하는 마비 증세가 곧 不仁이다. 리더가 어질지 못하다는 것은 반드시 독단이나 독선적인 것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바로 상대가 아픈 데도 내 아픔처럼 느끼지 못하고 저 멀리 강 건너 불 보듯이 “그건 너 문제인데, 왜 나한테 이야기해” 하며 아픈 것으로 느끼지 못하는 지체마비, 불감증세가 바로 불인이고 소시오패스의 공통 증세다. 아무리 입문학 과목을 많이 배우고 공부해도 ‘인문’을 이해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문은 역경을 경력으로 승화하는 역전력이다>

글월 문(文)은 사람의 가슴에 문신을 새긴 모양이다. ‘문’의 의미 발전 과정이 이채롭다. 가슴에 낸 문신의 용도가 무엇이겠는가. 각각을 구별해 영혼이 알아보고 돌아올 수 있는 표식이다. 다시 말해 육체를 이탈한 영혼도 알아보고 찾아볼 수 있게 하는 자기정체성이다. 남과 구별해 자기를 자기답게 하는 차별성이다. 문(文)의 또 하나의 의미는 상처다. 아픈 상처를 아롱진 무늬로 승화시키고, 역경을 경력으로 역전시켜 나가는 게 바로 문이다. 인간학보다 인문학이 더 적합한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 이 ‘상처’와 ‘차별’이란 인생 역전력과 극복력이 빠질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의 얼을 짙게 하고, 상대를 알아 우리가 함께 공존공영하는 인간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인문학은 호사학이 아니라 생활학이다>

인문학은 교양 액세서리나 생존 필살기가 아니다. 바로 여기 우리, 내 이웃의 불편, 불안, 불리 문제를 공감하고 함께 동참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사고이자 태도이자 실행이다. 알파고에 대항할 창의력은 세상 밖에서 나 홀로 머리를 쥐어뜯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세상 안 사람들과 부대끼며 아픈 점을 공감하며 해결하려는 데 있다.

중국 송나라의 철학자 정자는 ‘논어 집주’ 서설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논어의 효용을 말한 것이지만 책(논어)를 인문학으로 바꿔도 그대로 통한다.

“지금 사람들은 책을 읽을 줄 모른다. 예를 들면 논어를 읽었을 적에 읽기 전에도 이런 사람이요, 다 읽고 난 뒤에도 또 다만 이러한 사람이라면 이것은 곧 읽지 않은 것이다.”

인문학 열풍이 분다고 하지만 몇 개 강좌, 몇 개 책을 읽었다고 하면서 하기 전과 한 후에도 변화가 없다면 이것은 하지 않는 것이다. 인문학은 공감학이자 실행학이요, 변화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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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박사. 언론인 출신으로 동양고전과 현장의 생생한 사례를 연결시켜 리더십을 칼럼과 강의로 풀어내고 있다. 저서로 ‘용인술’ ‘강한 리더’ ‘리더를 위한 한자인문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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