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디플레 위기..한국은행 적극적으로 나설 때"

입력 2015-03-10 09:59 수정 2015-06-10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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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인터뷰

우리는 조삼모사(朝三暮四)를 쉽게 비웃는 경향이 있다. 미래에 대해선 장밋빛 전망만 나온다고 비난하면서도 내심 속으려 하기도 한다. 그게 인간이긴 하다. 그래서 나오는 걸까, 조사모삼(朝四暮三)의 경제 정책들, 그리고 언제나 상저하고(上低下高)일 것이라는 주식 시장이나 경기 전망들 말이다.

지금 우리 경제는 어디에 있고 어떤 상황인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하다. 물가 상승률이 거의 제자리인지 꽤 되고 담뱃값 올린 것 빼면 사실상 마이너스라고 하니 디플레이션이 왔다, 혹은 온다고 한다. 그런데 장바구니에서는 자꾸 고른 물건을 빼놓아야 할 만큼 살림살이가 팍팍하다.

"##대 졸업하면 뭐하냐, 백수인데!"란 플래카드가 붙었다는 한 명문 사립대 졸업식 현장 사진은 일할 능력이 있고 일하고 싶은 청년들의 복잡한 머리와 마음 속을 그대로 드러내줬다. 고용률은 상승했다고 한다. 1월 고용률은 58.7%로 작년 같은 달에 비해 0.2%포인트 상승했다. 청년 실업률은 9.2%로 높긴 높지만.

무역해서 남기는 돈, 무역수지도 35개월째 흑자다. 물론 수출은 적게 늘고 수입이 더 많이 줄어서 `불황형 흑자`라고는 한다. 통계만 보면 헷갈린다.

우리 경제에 수상쩍은 기운이 돌긴 도는 것도 같고, 어디로 가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민간 출신의, 그리고 여성으로서도 첫 통계청장을 지낸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를 만났다. 이인실 교수는 단박에 매서운 진단을 내렸다. 거침없이 지금의 상황을 "디플레이션 우려가 심각한 상황, 디플레 우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국면"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혼란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은 정부 당국의 왜곡된 커뮤니케이션에서 비롯된다고 봤다.

▲사진=신태현 기자(holjjak@)
이 교수는 "통계는 사회 경제의 변화와 현상을 숫자로 나타내는 것이라 겉으로만 봐선 잘 알 수 없고 그 숫자 뒤에 숨은 뜻을 더 많이 이해해야 한다"면서 "현재의 혼란스러운 인식은 정부나 한국은행 같은 당국이 진솔하고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물가 상승률, 특히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석 달째 0%대라는 것만 가지고는 디플레 진단을 내릴 순 없지만 여기에 잠재 성장률 저하와 경기 침체가 맞물리고 제조업이 공동화하고 심각한 상황에 치닫고 있는데도 중앙은행이 뒷짐만 지고 있었던 일본의 경우를 반면교사해야 한다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이 교수는 "저는 한국은행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설 타이밍이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금융위기 이후에 과감하게 갔죠. 그리고 효과를 보았구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교과서적인 논쟁만 하고 있을 때는 아니지 않나, 조금 급하지 않은가 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그렇지만 전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화 발권력을 가진 미국이 통화 완화 정책을 펴는 것과 소규모 개방경제이며 발권력도 없는 우리나라를 동일 선상에서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닐까.

"물론 우리나라는 미국처럼 주도적으로는 할 수 없고 돈을 풀어서 생기는 부작용도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아무 것도 안 하고 세계 다른 나라들이 모두 환율전쟁에 나서고 통화 완화 정책을 펴는데 우리나라만 앉아 있는다, 이것도 아닌 것이죠." 이렇게 거의 명시적으로 이 교수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도 더 내려야 하고 정부의 부양 의지에 손바닥을 마주 쳐주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기업 경쟁력은 저하되며 성장률도 떨어지고 있는 지금 이 상황, 우리나라의 일본화(japanization) 가능성에 대해선 어떻게 보고 있을까.

"굉장히 닮은 꼴이 많습니다. 1990년대 일본이 장기 불황으로 들어가던 초반의 모습과 현재의 우리 경제는 거의 비슷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 신 3저(저성장-저물가-엔저) 얘길 하잖아요. 경기가 침체되면서 수요가 부진해지고 신 3저 때문에 수요가 또 위축되는 악순환 구조 말이에요. 그런데 또 어떻게 보면 확실히 다르기도 합니다. 우선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이 당시 일본 기업들과는 달리 높습니다. 그리고 수출선이 다변화돼 있습니다. 일본이 플라자합의(Plaza Accord; 1985년 무역수지 개선을 위해 미국이 일본과 독일에 통화 절상에 협조해달라고 요청하고 양국이 이를 받아들인 것. 이후 일본 엔화과 독일 마르크화 가치는 급등했다. 이는 일본의 자산거품을 꺼뜨리고 장기 불황에 빠진 큰 요인으로 평가되고 있다)를 한 것은 미국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에요. 미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매우 높았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대미 수출 비중이 12%밖에 안 되죠."

이 교수는 지금은 우리나라가 내수 부진에서 헤어나오는 정책적 노력이 가장 중요하고 이를 위해선 고용, 일자리 늘리기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정책 목표 첫 번째도 고용, 두 번째도 고용, 이렇게 가야 합니다. 이를테면 저는 한국은행의 정책 목표도 물가 안정이 아니라 고용을 가지고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상황을 보고 있진 않을 겁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행이 적극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겁니다."

정부는 그런데 내수 부진을 부동산 시장 부양으로 풀어보려고 하는 것은 아니냐고 물어봤다.

이 교수는 그런 면이 있다고 인정했다. "과거부터 부동산 시장은 규제를 풀어 건설을 하고 집을 사도록 하고 하면 자연적으로 부양이 됐습니다. 규제를 건드리면 가장 손쉽게 띄울 수 있는 시장이었죠. 그런데 이제는 그렇지 못합니다. 주택 보급률도 상당히 높기 때문에 이제 부동산 시장은 인위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시장이 아니라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의해 움직이는 시장이 된 겁니다. 정부가 작년에 대출 규제도 확 풀고 부동산 관련 법 바꾸고 한 것은 일단 심리적인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이런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것이 정상화인 건지, 아니면 부동산 가격이 이대로 하향식 조정을 받는 것이 정상화인지에 대해서도 물었다. 이 교수의 답은 전자에 가까웠다.

"베이비 부머 세대들에겐 집이나 토지가 거의 모든 자산이거든요. 이들은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면 쓰지도 않고 불안해 합니다. 자산 감소 효과가 크면 아무래도 소비를 늘릴 수 없기 때문에 적정한 수준으로 부동산 가격을 유지해 주는 것은 중요합니다. 과거처럼 부동산 가격이 급격하게 오를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소득 수준이 올라가는 것에 비례해 점진적으로 상승할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교수는 정부는 이런 설명을 제대로 해주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밋빛 전망을 내놨다가 또 급격하게 부정적인 견해를 내놨다가 하면 혼란만 올 뿐이라면서 "우리가 지금 구조적으로 이런 어려움에 처해 있으니 이 구조적인 문제를 헤쳐 나갑시다, 라고 진솔하게 얘기를 하고 그것을 중장기적으로 접근해 해소해야만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복지와 증세 논란으로 이야기가 옮겨가자 목소리는 한층 더 높아졌고 매우 분명한 입장을 보여줬다.

"이제는 저성장 시대로 갈 수밖에 없고 많은 것들은 바뀌어 나갈 겁니다. 증세 논란이 요즘 치열한데 재정학을 전공한 저로서는 재정을 효율적으로 쓰는 것을 고려해야지 이런 상황에서 증세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재정 효율화를 잘 해서 국민한테 세금을 좀 덜 걷을 것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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