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역사를 낳는다-세계 여성박물관 현지 취재] <4> 독일 '비스바덴 여성박물관'

입력 2015-08-04 13:12 수정 2015-09-08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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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출판 중심지를 키우는 여성문화 운동의 산실

1984년 식품저장고 건물서 출발…비스바덴 역사 속 여성 재조명

160여회 전시회 열어… '남성과 함께하는 여성도시'의 비전 제시

▲비스바덴 여성박물관은 여성과 관련된 고고학적 유물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비스바덴 여성박물관은 여성과 관련된 고고학적 유물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독일 비스바덴 여성박물관은 지금부터 10년 전에 ‘일곱 여성, 일곱 인생, 일곱 역사’라는 책을 냈다. 저자는 베아트릭세 클라인 관장. ‘비스바덴을 위한 책’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저작물은 전쟁 회피를 위해 노력했던 파울리네 폰 나사우(1810~1856) 공작부인 등 7명의 선구적이고 모험적인 삶을 통해 여성의 역사를 발굴하고 비스바덴이라는 지역의 특성을 규명하기 위한 시도였다.

책의 서두에는 “여성이 읽는 것을 배웠을 때, 여성의 문제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는 오스트리아 여작가 마리 폰 에브너 에셴바흐(1830~1963)의 말이 실려 있다. 여성들은 책 속에서 현실 너머의 세상을 발견하고 독립을 위한 자존심을 얻을 수 있었다. 예부터 인간의 원죄가 여성의 호기심에서 생겼다고 믿는 사람들은 여성의 독서를 엄격히 금했다. 여성들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은 것은 가정이라는 굴레에 묶어 두어 순종하는 존재로 살게 하려는 속셈 아니었던가.

독일 프랑크푸르트암마인 서쪽 약 40km, 타우누스 산맥 남쪽 기슭에 있는 비스바덴은 온천 휴양도시로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독일 인쇄•출판업의 중심지가 됐다. 여성박물관 운동가들도 당연히 이 점에 주목해 다양한 출판활동을 벌여왔다.

1974년에 뮌헨 여성운동가 18명은 그들이 토론을 위해 번역했던 각종 자료를 모든 여성이 읽을 수 있게 하기로 했다. 그 일을 맡은 여성운동 출판사 프라우엔오펜시브(info@Verlag-Frauenoffensive.de)는 오늘날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여성 출판사이며, 최초의 독자적 여성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곳이다. 그들은 4반세기를 맞은 1999년 5월 8일 여성박물관에서 25주년 행사를 했다.

비스바덴 여성박물관(www.frauenmuseum-wiesbaden.de)의 출판국은 커뮤니케이션과 교양협회의 센터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일곱 여성…’의 후속 출판물도 새로운 전시를 곁들여 계속 내기로 했다.

비스바덴 여성박물관은 1984년 11월 7일, 식품저장고로 지어졌던(1898년, Nerostraße 16번지) 건물에서 문을 연 뒤 1991년 지금의 자리(Worthstraße 5번지)로 옮겼다. 마땅한 공간을 찾다가 시 소유 건물을 대여받아 운영하고 있다.

개관과 함께 1986년 1월 말까지 14개월간이나 개최한 ‘격동 속의 삶’은 1850년부터 그때까지의 비스바덴 여성들의 삶을 회고하는 대규모 전시였다. 그 이후 박물관은 160여 회의 크고 작은 전시회를 열었다. 특히 2010년에는 한 해에만 12건의 전시회를 개최했다. 올해 9월 19일에는 다른 장소에서 위의 책이 다룬 여성들을 조명하는 ‘비스바덴의 여성들’ 행사를 벌인다.

전시 내용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2011년 독일에서 열린 제6회 FIFA 여자 월드컵 기간에 맞춰 그해 6월 18일~7월 31일 개최한 ‘세계 여성 챔피언’ 전은 독일 여성 국가대표 축구팀의 활동상을 보여주는 사진전이었다. 2003년, 2007년 연거푸 우승한 독일은 기대와 달리 2011년엔 우승을 하지 못했지만 여성들은 물론 많은 남성팬들까지 이곳을 찾게 했다.

▲개관 30주년을 맞았던 지난해 팀원 5명의 기념촬영.
▲개관 30주년을 맞았던 지난해 팀원 5명의 기념촬영.

창립 30주년을 맞은 지난해에는 이틀 동안 축제를 벌이고 정치인, 예술인 초청 특강을 마련하는 한편 6건의 전시회를 개최했다. 박물관은 1997년에 시 정부로부터 문화적 삶을 진흥한 공로로 받은 상을 큰 자랑으로 삼고 있다.

현재 박물관은 5층, 855㎡ 규모다. 평수로는 300평이 채 안 되는데 전시장소로는 큰 불편이 없어 보였다. 5명을 한 팀으로 시작한 운영조직은 지금도 변함없다. 그만큼 유대가 긴밀하고 협력이 잘 되고 있다. 창립 이래 이들이 견지해 온 세 가지는 1)비스바덴 도시역사 속의 여성 조명 2)문화 전달자로서의 여성에 대한 기본 연구 3)예술가들의 작품 소개다.

박물관의 컬렉션은 고고학적인 것, 문화사적인 것, 현대예술 세 가지로 대분된다. 계속 전시 중인 ‘여신들과 지혜’는 이 지역에서 발굴된 고대의 토기, 조각 등 모두 여성과 관련된 고고학적 수집

품을 통해 여성의 삶을 재조명하고 있다. 문화사적 컬렉션은 여성에 한정되지 않는다. 내년에는 비스바덴의 지나온 200년간을 돌아보는 대규모 전시, 멕시코 화가 메르세데스 펠귀레스(56)전, ‘여성운동과 정치 역정’ 등을 개최할 계획이다. 세미나와 강연, 낭독회 등은 박물관이라는 좁은 장소에 국한하지 않고 시내 전역에서 수시로 열고 있다.

비스바덴 박물관의 가장 큰 특징은 여성에 초점을 맞추되, 남성을 배제하지 않는 것이다. 이 박물관의 평소 방문객 중 35%가량이 남자라고 한다. 여성에 국한된 활동을 지양함으로써 지역사회 발전과 문화진흥에 기여하고 있다. ‘남성과 함께하는 여성도시’의 비전이다.

여성박물관(Frauen Museum)은 F와 M으로 구성된 단어다. F는 여성, M은 남성의 약자다. 이 단어 속에서도 여성과 남성이 협력해야 할 당위성을 읽을 수 있다.


[여성이 역사를 낳는다-세계 여성박물관 현지 취재] <4> 인터뷰-베아트릭세 클라인 여성박물관장

비스바덴 여성박물관장 베아트릭세 클라인(Beatrixe Klein•61•사진)의 이름은 독특하다. 베아트릭스, 베아트리체, 베아트릭세는 라틴어에서 파생된 같은 말인데, ‘행복을 만드는 여성’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영어권의 베아트리스,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의 경우 베아트리즈, 이탈리아에서는 베아트리체라고 한다.

이 이름이 특히 유명해진 것은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구원(久遠)의 여성 베아트리체 포르티나리 덕분이다. 클라인은 작다, 영어로 little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베아트릭세 관장은 ‘작지만 행복을 창조하는 여성’이다.

그는 박물관운동을 하는 동안 사재도 많이 털었나 보다. 남편과 아들 딸, 부모님 등 그동안 많이 참고 기다려준 가족 모두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했다. 구체적인 사연은 알 수 없지만 어려움이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도 후원 회원은 그리 많지 않다. 기부액은 1년 소요 예산(약 15만유로)의 15% 수준이며 시의 지원액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미국처럼 기부 문화가 활성화되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 비스바덴박물관은 “미래에 투자하세요”라고 호소한다. 새로운 역사-문화환경을 만들어 가는 데 동참하라는 뜻이다.

베아트릭세 관장은 프랑크푸르트암마인 대학에서 교육사회학을 전공한 여성 사회학자(Diplom Soziologin)다. 비스바덴 박물관의 활동에 학구적인 부분이 많은 것도 당연한 일이다. 여성(사)박물관을 짓기로 한 한국에 그가 해준 조언도 구체적인 방향을 설정하되 대학과 학문적 연계를 하라는 게 첫 번째였다. 그리고 남성을 배제하지 말 것, 여러 사람들이 접근하기 좋게 조성하고 운영할 것 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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