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전세계적으로 확대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1920년 일제 강점기에 나혜석, 김일엽, 김명순 등 자유주의 계열과 허정숙, 정칠성 등 사회주의 계열이 각각 여성의 날 기념 행사를 시작하면서 정착됐다.
해방 이후 여러가지 사회 운동에 대한 탄압으로 뜻있는 소수에 의해서만 치러지다가 1985년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공개적으로 기념할 수 있었고, 제1회...
김학철, 허정숙 등과 함께 적의 진지 바로 앞에서 ‘염전반전(厭戰反戰)’ 선전에 힘쓰고, 가극 공연, 포로 설득과 의용대 입대 권유 등에 헌신하였다.
1940년에는 뤄양(洛陽)을 거쳐 이듬해 여름 중국공산군과 가까운 타이항(太行)산에 들어갔다. 당시 돌미나리, 도토리 등으로 연명해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혁명가 ‘미나리 타령’을 부르며 혁명의지를 불태웠다....
1924년에는 허정숙, 주세죽, 정종명 등과 함께 한국 최초의 사회주의 여성단체 ‘조선여성동우회’를 결성한다. 이듬해에는 다시 일본으로 가 도쿄기예학교(東京技藝學校)에 들어간다. 거기에서 재봉, 편물, 자수 등을 배우는 동시에, 도쿄 여자유학생들이 결성한 사회주의 여성단체 삼월회(三月會) 활동에 깊이 개입했다.
1926년 귀국 후에는 ‘동아일보’ 기자로...
함북 명천에서 출생한 허정숙(1902~1991)은 1818년 배화여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고베(神戶)신학교 관서학원에 잠시 다녔다. 1920년 중국 상하이의 외국어학교 유학 중 임원근, 박헌영 등 사회주의자와 교류하다 1924년 임원근과 결혼해 첫아들도 출산하였다.
변호사인 아버지 허헌을 존경하며 온갖 보살핌 속에 잘 자란 그였지만, 어려서부터 남녀 불평등을 보고 느낄...
그는 1924년 5월 정종명, 허정숙 등과 함께 조선여성동우회를 조직, 집행위원으로 선임돼 중심 인물로 활동하였다. 또 조선청년총동맹 창립대회에 참가하였고, 고려공산청년회 중앙 후보위원으로, 1926년 4월 정우회에서 활동하다가 체포되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곧 석방되었다. 1925년 1월 창립된 경성여자청년동맹 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고 1927년 5월 창립된...
독립운동가 허헌의 딸이었던 허정숙은 가정을 지키기보다는 남성들과 똑같이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1920년대 국내에서는 사회주의 여성운동가로, 1934년 중국으로 망명해서는 조선민족혁명당에 가입하여 조선청년전위동맹 부대표로 활동했다. 1938년에는 연안을 가서 항일군사대학 정시군사학과를 졸업하였다. 1940년대에는 광복군에 참여하는 여성들도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