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망(王莽)이 한나라를 멸망시키고 신(新)나라를 세우자 유수(劉秀)가 반기를 든 농민들을 규합했다. 유수가 농민봉기를 격파하고 잔여 병력을 흡수해 재편성할 때 적수였던 장군들에게 원래의 관직을 돌려주었다.
유수에게 살해될까 두려움에 떨던 장군들은 그가 조금도 경계하지 않자 “성의껏 사람을 대하며 자신의 속마음을 사람들에게 내어주니...
재주 많은 문희는 한나라 헌제(獻帝) 때 흉노족에게 잡혀가 좌현왕(左賢王)과 강제 결혼했다. 채옹의 절친 조조(曹操)는 흉노를 떠날지 머무를지 망설이던 문희를 고국에 데려왔다. 아이들을 두고 온 문희가 마음을 달래며 지은 악곡 ‘호가18박(胡笳十八拍)’의 “가야 할지 머물러야 할지 두 마음을 함께 베풀기 어렵다[去住兩情兮 難俱陳]”라는 구절에서 따온...
한나라 고조인 유방이 고향의 느릅나무 한 쌍을 낙양으로 옮겨 신성한 공간으로 여겼다는 유래와 연결하여 ‘창업자의 고향’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직물을 보관하던 창고는 전시관으로 탈바꿈했다. 이곳은 SK가의 사업보국과 인재양성에 대한 경영 철학을 조명하고, 오늘날 SK가 있기까지 도전과 혁신의 역사를 다양한 시청각 자료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한 나라의 수출입 구조를 설명할 때도 이 말은 요긴하다. 우리나라의 수출이 특정한 나라에 편중되어 있다면 그 나라에서 발생하는 위험에 직접 노출된다.
수입구조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간판 산업은 해외 공급망을 통해 필요한 부품이나 원자재를 조달받는데 특정국에 공급망이 치우쳐 있으면 위험 관리를 잘 한다고 볼 수 없다.
對중국 수입비중 증가로 위험...
한신(韓信)에게 괴통이 “한나라와 초나라 중 하나와 한편이 되면 그 나라가 승리한다. 한신이 독립해 천하를 삼분하는 형세를 이루면 어느 쪽도 감히 먼저 움직이지 못할 것”이라고 설득했다. “하늘이 준 것을 취하지 않으면 도리어 그 허물을 받게 될 것이며, 때가 이르렀는데도 행하지 않으면 도리어 그 재앙을 받게 될 것입니다[天與弗取 反受其咎 時至不行...
이 책을 편찬한 반고(班固)가 한나라를 들어먹은 왕망(王莽)을 평한 말이다.
왕망은 전한의 성제부터 평제까지 24년 동안 권력을 쥐고 흔들었다. 겉으로는 충직한 신하였으나 안으로는 뇌물을 챙기고, 거짓 여론 조성으로 자신의 명망만 올렸다. 전한의 왕조를 지키려는 충신들이 모두 제거됐다. 왕망은 모든 게 새롭다는 신(新)왕조를 세웠으나 그의 사리사욕 때문에...
위나라 문제(文帝) 조비(曺丕)가 한나라의 대문장가인 부의(傅毅)와 반고(班固) 둘의 문장에 관해 쓴 글에 나온다. “글 쓰는 사람들은 모름지기 자기야말로 제일인자라고 자부하여, 글 쓰는 사람끼리는 서로 상대를 경멸한다고 하는데[文人相輕], 이러한 풍조는 지금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일찍이 반고와 부의 때부터이다.”
☆ 시사상식 / 디리스킹(de-risking)
‘위험 경감’...
그후 그는 노인 황석공(黃石公)이 준 ‘태공병법서(太公兵法書)’를 연구해 유방의 책사로 한나라의 개국공신이 되었다.
☆ 시사상식 / 조롱경제(鳥籠經濟)
국가의 계획과 지도로 시장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중국 공산당의 이론이다. 새는 시장, 새장은 국가 통제를 뜻한다. 경제를 위해 새장의 크기를 조절할 수는 있지만, 반드시 국가의 큰 지도로 경제 활성화가...
역상은 한고조(漢高祖)와 한나라 창업 공신. 황제가 된 유방은 숱한 전공을 세운 그를 우승상(右丞相)에 임명했다. 유방과 여후(呂后)가 죽자 여 씨 세력 제거를 계획한 주발(周勃)과 진평(陳平) 등 노신들이 역상의 아들 역기에게 친구인 여록을 속여 도성을 나오게 한 다음에 그를 제거했다.
역기의 행위는 친구를 판 것이라고 사서는 썼다. “무릇 친구를 팔아먹는...
‘인내는 모든것을 이긴다’, ‘와신상담’ 등 참을성에 대한 덕목이 동서양에서 속담과 격언으로 돌고 있고, 젊은 시절의 모욕을 참고 대성한 한나라 대장군 한신의 고사 등이 전해지는것을 보면 예전부터 사람은 잘 참지 못했던 것 같다.
우리가 직시해야 할 것은 모든 사건마다 쫓아가며 겨누는 서로에 대한 비난의 손가락이 아니라 인간은 원래 참을성이 약하다는...
한나라 때 가의(賈誼)가 쓴 과진론(過秦論)에 나온다. “진승(陳勝)은 가난한 집안의 자식이며, 비천한 백성으로 떠돌이였다. 병사들의 행렬에 끼여 있다가 밭둑 길에서 비천한 몸을 일으켜, 지치고 흩어진 병졸들을 이끌고 수백 명의 우두머리가 되어서는 몸을 되돌려 진나라를 공격했다. 나무를 베어 무기로 삼고(斬木爲兵) 장대를 높이 들어 깃발로 삼으니[揭竿爲旗]...
한(漢)나라에 복종했던 위나라 왕표(王豹)가 유방(劉邦) 군이 항우의 팽성 공격에 실패하자 한나라의 패색이 짙다고 보고 일신의 안전을 위해 항우 편에 붙으려 했다. 유방은 한신(韓信)에게 왕표를 치라고 명령했다. 출전할 때 역이기가 왕표 군사의 대장이 백직(栢直)이라고 하자 한신이 코웃음치며 한 말에서 유래했다. “그런 녀석은 구상유취[口尙乳臭]야, 백전백승인...
동주(東周)의 종횡가(縱橫家:모사) 소진(蘇秦)이 최강국 진(秦)나라의 동진(東進)정책에 전전긍긍하는 한(韓)·위(魏)·조(趙)·연(燕)·제(齊)·초(楚)의 6국 순방 중 한나라 선혜왕(宣惠王)을 알현했다. “전하, 6국이 남북, 즉 세로[縱]로 손을 잡는 합종책으로 진나라의 동진책을 막고 국토를 보전하소서. ‘차라리 닭의 부리가 될지언정 쇠꼬리는 되지 말라[寧爲鷄口...
적군에 포위된 초나라 병사들의 사기를 꺾기 위해 한나라 군사들이 초나라의 노래를 부르자 초나라 병사들이 고향과 가족 생각에 모두 탈영했다. 결국, 항우는 패배를 인정하고 해하가(垓下歌)를 부른 뒤 단신으로 한나라 군사들과 싸우다가 장렬히 최후를 맞았다.
☆ 시사상식 / 침묵의 나선 이론(The spiral of silence theory)
자기 뜻이 여론에 부합되면 자신 있게 의견을...
한나라 무제(武帝) 때 상서좌승(尙書左丞) 사기경은 성격이 대범하고 술을 좋아해 술집에서 술이 떨어질 때까지 마셔대 수많은 사람이 구경했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런 무분별하고 방탕한 행동으로 그는 무제의 미움을 사 결국은 관직에서 파면되었다. 뒤이어 좌승(左丞) 유중용(庾仲容)도 파직되어 집으로 오자 둘은 의기투합해 자유분방한 생활을 즐겼으나 세상...
흉노에 투항한 한나라 명장 이릉(李陵)이 그를 찾아와 위로한 말. “자네가 이렇게 절조를 지킨다고 해서 알아줄 사람이 누가 있는가?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다[人生如朝露]고 하니, 정말 덧없는 것이 아닌가.” 그 뒤 소제(昭帝)가 파견한 특사의 기지로 소무는 19년 만에 풀려나 귀국했다.
☆ 시사상식 / 풀필먼트 서비스(Fulfillment Service)
물류 전문업체가 판매...
야랑은 면적이 현(縣) 정도의 소국이지만 임금은 자신의 나라가 세상에서 가장 크다고 생각해 한나라의 사자에게 물은 말에서 유래했다. “한나라와 우리나라는 어느 쪽이 더 큰가? 야랑후도 마찬가지다[漢孰與我大 及夜郞侯亦然].”
☆ 시사상식 / 사소함의 법칙(Parkinson’s Law of Triviality)
중요한 사안에는 시간을 적게 쓰고 사소한 일에 필요 이상의 시간과 노력을...
이 걸출한 인재들을 적절하게 쓸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한나라 유방은 혼돈에 빠져 있던 중국을 통일한 뒤 이렇게 술회했다.
널리 알려진 유방의 삼불여(三不如)다. 실제로 유방보다는 항우가 훨씬 더 강했다. 역발산기개세의 거구였던 용장 항우는 한때 40만 대군을 거느릴 정도로 기세등등했던 데 비해 유방은 가짜 유방을 앞세워 항우의 포위망에서 간신히 탈출할...
한(漢)나라 유방(劉邦)과 초(楚)나라 항우(項羽)가 대치 중일 때 항우에게 항복한 위(魏)왕 표(豹)는 한나라 군대가 강을 건너오지 못하게 진을 쳤다. 한나라 한신(韓信)은 병사들에게 낮에는 큰 소리로 훈련하도록 하고, 밤에는 불을 밝혀 공격하는 것처럼 했다. 이러한 한나라 군대의 작전을 본 위왕 표는 어리석다며 비웃었다. 한신은 비밀리에 군대를 이끌고 뗏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