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 년 동안 벼루 열 개, 붓 일천 자루, 먹 오천 개와 씨름하면서 만들어낸 글씨가 추사체다. 그가 죽기 사흘 전에 마지막으로 쓴 글씨가 ‘板殿(판전)’이다. 옆에는 ‘七十一果病中作(칠십일과병중작)’이라 하여 71세 때 과천에서 병중에 쓴 것임을 밝혔다.
판전은 서울 코엑스 옆의 봉은사에 있는 전각이다. 경판을 보관하는 장경각(藏經閣)인 동시에 예불도 드리는 불전...
‘추사체(秋史體)’로 규정된 기존의 틀을 완전히 깬 추사의 서체는 자유롭고 독창적이다. 추사체의 조형미학과 정신경계를 요약하면 ‘기괴고졸(奇怪古拙)’과 ‘유희(遊戱)’다.
하지만 추사 생존 당대에도 추사체의 괴의 미학에 대해 비난과 조롱이 가득했다. 추사는 이에 대해 “괴하지 않으면 역시 서(書)가 될 수도 없다”고 응수한다. 또 “글씨를 쓰기 위한 것이...
☆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명언
“난초를 그림에 법이 있어도 안 되고 법이 없어도 안 된다[寫蘭有法不可無法亦不可].”
조선 금석학파를 성립하고, 추사체를 완성한 문신. 단순한 예술가·학자가 아니라 시대의 전환기를 산 신지식의 기수. 즉 새로운 학문과 사상을 받아들여 조선 왕조의 구문화 체제로부터 신문화의 전개를 가능케 한 선각자로 평가받는다....
김정희는 북학의 종장이자, 고증학 연구의 대가, 조선 금석학 연구의 개창자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서법(書法) 연구에 몰두해 추사체를 창시하기도 했다.
‘완당(阮堂)’은 김정희의 별호이며 ‘수찰(手札)’은 직접 쓴 편지라는 의미로, ‘완당수찰’은 김정희가 직접 쓴 편지라는 뜻이다. 여기에 수록된 20편의 편지는 작성일자와 수신자가 명확치 않으나, 대부분...
그는 ‘추사체’라는 고유명사로 불리는 최고의 글씨는 물론이고 ‘세한도’로 대표되는 그림과 시와 산문에 이르기까지 예명(藝名)을 남겼다. 조선이 고유 문화를 꽃피운 진경시대의 세계화에 성공한 예술가일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학문 조류인 북학사상을 본궤도에 진입시킴으로써 조선 사회의 변화 논리에 힘을 실어준 주인공이다. 오늘은 그가 태어난 날. 1786...
아니면 유명 서예가의 이름이나 호를 붙여 부르는 구양순체(歐陽詢體), 안진경체(顔眞卿體), 혹은 추사체(秋史體), 석봉체(石峯體)라는 답을 해야 할까?
서예의 체에는 자체와 서체의 구분이 있다. 자체란 글자의 체, 즉 ‘문자의 꼴’을 뜻한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진행된 문자의 변화 과정에서 필획의 가감(加減)이나 곡직(曲直) 등의 변화로 인하여 문자의 구조(構造...
추사정화전은 추사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정수만 꼽은' 전시로, 추사가 36~70세에 쓴 작품 40여 점을 통해 추사체가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간송미술관 추사정화 예약 폭주 소식에 네티즌들은 "간송미술관 추사정화, 나도 가봐야지" "간송미술관 추사정화, 예약이 폭주했구나" "간송미술관 추사정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어...
추사체로 잘 알려진 김정희는 중국 서도사를 관통하며 이를 통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법고창신의 방식으로 평생에 걸쳐 추사체를 완성했다. 김정희는 스승인 청나라 옹방강으로부터 서체를 익혔고 이후 시대를 거슬러 명나라 동기창·문징명, 원의 조맹부, 송나라 황정견·소식, 당나라 안진경·우세남·구양순, 동진 왕희지 등을 차례로 익혔다.
최완수...
오늘날 ‘추사체’라고 부르는 독특한 경지의 글씨체를 만들었다.
유배지에서의 고난을 고통으로만 끝내지 않고, 중앙 권력 내에서는 이루어낼 수 없는 또 다른 성과로 매듭지었던 이들의 선비정신과 시대정신을, '정도전과 그의 시대', '조선 왕을 말하다',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등 다수의 역사 베스트셀러를 낸 역사저술가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의 강연을...
경마공원 가족 공원 내 잔디구장에서 열리는 이 행사는 애니메이션, 과천 나무꾼 놀이체험, 추억의 실뜨기-매듭, 추사체로 우리가족 가훈 만들기, 딱지치기 탈놀이 등 가족놀이 체험마당, 부모님과 스승에게 사랑을 전하는 카네이션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놀이행사가 푸짐하다.
연인과 함께 행복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행사도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 관람객이 함께...
그는 "이 보고서는 두 가지 점에서 의의가 있다"면서 "하나는 추사가 암행어사로 임명된 시점을 그간 1826년 6월25일로 봤지만 이는 암행어사 활동 보고서를 제출한 시점으로, 정확히는 2월20일임을 알 수 있으며 다른 하나는 조정에 올리는 공식보고서에 나타난 추사체의 새로운 면모를 엿볼 수 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조정 제출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