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전은 조선 후기 영·정조 때의 이덕무(李德懋)가 수집해 6자로 한역한 우리나라 속담집 열상방언(洌上方言)이다.
☆ 시사상식 / 워터쿨러(water cooler) 효과
사무실 한쪽이나 복도에 음료수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사람들이 이 장소에서 편안하게 대화를 할 수 있게 돼 사내 의사소통이 활발해진다는 이론이다. 커피 자판기나 정수기 주변, 담배를 피우는...
' 저자가 교육자이자 한 아이의 엄마로서 우리 아이들의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는 교육 방법을 찾기 위해 몇 년간 전국 종가를 찾아다니며 자녀 교육을 연구한 결과다. 율곡 이이, 이덕무, 박세무 등 조선시대 최고의 학자들의 가르침을 통해 왜 어릴 때부터 인성교육을 해야 하고, 아이를 품격 있는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알려준다.
시문과 글짓기, 그리고 해박한 지식으로 정조의 인정을 받은 그는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어 규장각 검서관으로 임명돼 박제가, 이덕무, 서이수와 함께 ‘규장각 4검서(檢書)’로 불렸다. 신라와 발해가 병존했던 시기를 남북국시대로 규정한 그는 “고려시대 역사가들이 통일신라를 남조로, 발해를 북조로 하는 국사체계를 세우지 않았던 것이 영원히 옛 땅을 되찾는...
홍대용과 중국 문인들간의 우정은 박지원ㆍ박제가ㆍ이덕무 등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홍대용 사후에도 미담으로 회자됐다.
홍대용이 연행에서 돌아온 지 60년이 되던 1826년에는 그의 손자인 홍양후(1800~1879)가 동지사의 부사로 임명된 외숙부 신재식을 따라 북경 땅을 밟게 된다. 홍양후는 그곳에서 조부 홍대용과 천애지기를 맺었던 3선비(엄성·반정균·육비)의...
특히 박제가·이덕무 등 서얼 출신을 발탁하는 파격 인사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들은 정조의 개혁을 구현할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한다.
그는 또 탕평책을 실시한다. 당시 조정은 노론이 권력을 틀어쥐고 있었는데, 그들은 세력이 커져 왕권을 위협할 정도였다. 정조는 노론 외에 소론과 남인도 중용해 힘의 균형을 맞춘다. 정조의 대표적 애민 정책으로 알려진 금난전권...
한 해가 가는 시점에 이덕무의 세시잡영(歲時雜詠) 중 한 작품을 생각한다. “한평생 마음이 거칠고 게을러/섣달그믐만 되면 슬퍼지네/섣달그믐의 마음 늘 간직하면/새해에는 좋은 사람 될 수 있건만.”[一生心疏懶 每於除夕悲 長懷除夕心 新年好人爲] 맨 뒤의 두 행을 “섣달그믐의 마음 늘 간직하고/새해에는 사람 노릇 잘해야지”라고 해석한 사람도 있다. 이덕무는...
“섭렵함이 정밀하지 못하다는 것은 이것저것 여러 가지 학문을 하는 폐단을 말한 것이요, ‘중얼중얼 책 읽는 소리’란 모두가 독서할 때의 소리를 말한다.”[涉獵不精 是多學之弊 咿唔佔畢 皆讀書之聲]
이덕무는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각각 재능이 있는 곳에 전심하게 된다. 사기 한 권을 가지고 말하더라도 똑같이 읽은 것이지만...
이덕무의 이런 글은 어떤가. “만약 나를 알아주는 한 사람의 벗을 얻게 된다면, 나는 마땅히 10년간 뽕나무를 심고, 1년간 누에를 쳐 손수 오색실을 물들이리라. 열흘에 한 가지 빛깔을 이룬다면 50일에 다섯 가지 빛깔을 이룰 수 있으리. 따뜻한 봄볕에 말린 다음, 아내에게 부탁해 백 번 정련한 금침으로 벗의 얼굴을 수놓게 하리라. 그런 후 귀한 비단으로 장식하고...
이덕무(李德懋·1741~1793)는 책 읽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바보라고 21세 때 스스로 간서치전(看書痴傳)을 쓴 사람이다. 항상 소매 속에 책과 필묵을 넣고 다녔다. 약관에 박제가(朴齊家) 유득공(柳得恭) 이서구(李書九)와 함께 ‘건연집(巾衍集)’이라는 사가시집(四家詩集)을 냈고, 규장각 경시대회(競詩大會)에서 여러 번 장원을 했다.
호가 무관(懋官) 형암(炯庵)...
그러나 어버이를 기쁘게 해 드리려고 연회를 베풀거나 아끼는 현사(賢士)를 위해 잔치를 벌일 적에는 진수성찬을 가득 차려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덕무(李德懋·1741~1793)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중 영처문고(嬰處文稿)에는 ‘뜰의 복숭아나무에 대해 붓 가는 대로 씀’[謾題庭桃]이라는 글이 있다. “뜰에 아홉 그루의 복숭아나무가 있는데 높이가 처마와...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덕무(李德懋·1741~1793)는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에서 돈 10만 관이 생기면 뭘 하겠느냐는 벗들의 질문에 “절반은 비옥한 밭을 사고, 그 나머지는 범중엄이 의전(義田)을 만들어 가난한 친척을 돌봐주었듯 친척 중 굶는 자에게 주겠다”는 등 몇 가지 남을 돕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범중엄은 이렇게 선비들의 사표였다.
그의 인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