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전문위원은 ‘건지산 봉수의 운영과 역사적 배경’을 주제로 과거 ‘영조무신별등록’의 기록에 따르면 경기감사 이정제가 1728년 이인좌의 난 당시 건지산 봉수에서 2거의 횃불을 올렸음을 보고하는 기록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봉수일기가 실제로 존재했음을 증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와 함께 봉수 운영을 위해 80종 내외의 각종 물건을 구비했는데 논산...
추사는 증조부 김한신이 영조의 부마로 화순옹주는 추사의 증조모가 되는 명문가에서 태어나 과거를 거쳐 높은 벼슬에 오르고 임금의 총애까지 받았다. 그러나 당쟁으로 집안은 파국을 당하고 자신은 오랜 유배생활을 하는 등 끝내 기구한 운명의 길을 걸었다.
추사가 옹방강이나 완원에게 이론적 영향을 받았지만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학예(學藝)의 성취는 이...
또 홍보부스를 설치해 수원시 고향사랑기부제 홍보영상을 상영하고 △정다미(수원농협) △한우세트(수원축협) △수원왕갈비통닭(남문통닭) △수원이 하트인형+미니인형 △영조선물세트 △수원화성 복주머니가방 등 답례품을 전시했다.
수원특례시 관계자는 “이번 캠페인이 고향사랑기부제에 대한 인식 향상 및 상호 기부를 도모하고 우리 농·축산물에 대한...
탕춘대성은 조선 후기 독특한 방어체계를 엿볼 수 있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성곽유산으로 1702년(숙종 28년) 우의정 신완의 건의를 받아 1715년부터 건설이 시작돼 영조 시대인 1754년 완성됐다. 임진왜란 이후 도성 방어체계의 완성이라고 볼 수 있다.
탕춘대성은 도성 서쪽을 방어하면서 군량을 보관하고, 전쟁 시에는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에 보급하는 중요한 기지로...
그는 2017년 9월 ‘수상한 이야기 1회-수원 화성, 욕정 남매의 시작’이라는 인터넷 방송에서 영조가 숙종의 아들이 아니라는 의혹, 경종이 성(性)불구였다는 의혹 등을 언급했다. 진행자인 김용민 씨가 “모든 역사적 진실은 ××와 연관돼 있다”고 하자 김 후보는 “궁중 문화의 ‘에로 문화’가 내 전공”이라고 했다.
조선 5대 궁궐 중 하나로 왕족의 사저로 쓰이고 창덕궁과 짝을 이루어 경덕궁으로 불리다가 영조 36년(1760)을 경희궁이라 개칭했다. 흥화문을 지나 숭정문까지 이어지는 길과 드넓은 광장은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거나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방문객이 많지 않아 궁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천천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많다.
경희궁...
‘조선왕조실록’에는 영조가 동짓날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다녀오다 길거리 노인들에게 팥죽을 나눠줬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시대 의서인 동의보감에도 “팥죽은 숙취 효능이 크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붉은색을 띤 팥을 태양, 불, 피 같은 생명의 표식으로 여겼고, 음의 기운을 물리치기 위해 동짓날 팥죽을 쒀 먹었다. 동지팥죽을 먹고 나쁜...
승정원일기(영조 20년)에는 "광화문에서 백성들의 상언을 받도록 명함"이라는 문구가 기록돼 있다. 고종실록 28권에도 "광화문에 나아가 왕세자가 쌀을 하사하는 행사 거행"이라고 쓰여 있다.
이처럼 월대는 궁궐과 백성을 연결해주는 위민(爲民)의 성격도 있다. '쌀을 나누어줌'이라는 뜻의 사미(賜米)와 더불어 임금과 백성이 직접 소통하는 공간이...
이와 관련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윤 대통령의 한글박물관 관람 관련 브리핑에서 "'정조 한글어찰첩'이나 '구운몽'을 쓴 김만중의 딸 김씨 부인이 영조에게 억울함을 호소한 한글 상소문을 통해서도 한글이 신분·성별에 관계없이 자유로운 소통을 위해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조선 시대 관청에서 각종 분쟁을 한글로...
네덜란드 대원 230여 명은 경기 용인 한국민속촌을 방문해 도롱이, 죽부인 등 민속품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고 요르단 대원 38명은 경기 남양주 홍유릉을 찾아 영조가 딸 화길옹주에게 지어준 ‘궁집’ 등 전통가옥을 둘러봤다.
독일 대원 80명은 경주 불국사, 골굴사를 찾아 템플스테이를 경험했다. 법복을 입고 진지하게 선무도를 수련하는 등 한국 불교문화를...
또 충북 청주시 복대동 ‘영조아름다운날1차’ 전용 59㎡형 한 가구 역시 지난달 10일 1억6600만 원에 손바뀜한 뒤 5일 만에 전세 1억7000만 원 계약을 맺는 사례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세입자들이 계약 전 매매가격과 전셋값 시세를 확인하고, 갭투자 매물 여부를 확인하는 등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연구소장은 “세입자는 저가...
탕평채 또한 조선 시대 각 붕당의 장파를 조화시키고자 했던 영조의 마음이 담긴 음식으로 전해진다.
윤 대통령 내외가 외빈을 상대로 한남동 관저에서 만찬을 제공하는 건 처음이다. 작년 11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방한 당시 관저에서 오찬을 함께 한 바 있다. 정상급 외빈이 관저를 찾는 것은 기시다 총리가 두 번째다.
겸재 정선은 조선 영조 때인 1740년부터 1745년까지 현재의 강서구청장에 해당하는 양천현령으로 재임하는 동안 강서 지역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화폭에 담았다.
구는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의 업적을 기리고 진경 문화를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2009년 가양동 궁산 부근에 겸재정선미술관을 건립했다.
지난해 8월 겸재 정선의 예술세계를 새롭게 조명하기 위해...
1759년 3월, 영조 재위 당시 핼리혜성이 관측됐다는 문헌 기록도 전시된다. 76년 주기로 지구에 다가오는 핼리혜성을 관측한 시각과 함께 그 위치, 혜성 꼬리의 크기, 움직임 변화 등을 상세히 기록하고 그 모양도 그려뒀다.
이번 전시는 1부 조선 국왕의 통치 이념과 천문, 2부 조선왕실의 천문 사업, 3부 조선의천문의기로 구성된다.
김충배 전시홍보과장은 이날 “절기...
장헌세자(莊獻世子:思悼世子, 장조)의 아들인 그의 조부가 영조(英祖). 어머니가 혜경궁홍씨(惠慶宮洪氏:惠嬪, 헌경왕후)다. 그의 어록 일득록(日得錄)에 실려 있는 말이다. 숙종·영조의 탕평론을 이어받은 그는 왕정체제를 강화해 진정한 위민을 실현하고자 했다. 그는 왕릉 참배를 구실로 100회 이상 도성 밖으로 나와 많은 백성을 직접 만나고 민원을 접수하는...
◇1770년: 동국문헌비고 여지고국왕 영조의 명에 의해 조선의 문물제도를 기록한 관찬서로 이 책에는 "우산도(독도)와 울릉도...두 섬으로 하나가 바로 우산이다...여지지에 이르기를, 울릉과 우산은 모두 우산의 땅인데, 우산은 일본이 말하는 송도(松島)다.”라고 적혀있음.
◇1870년: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1870년 외무성 관리인 사다 하쿠보 등이 조선을 시찰한...
태종, 영조 등 조선 역대 왕들이 창경궁에서 종묘를 갈 때 이용했던 북신문도 복원됐다. 시는 종묘의궤, 승정원 일기 등 문헌을 참고해 창경궁의 동문인 월근문을 토대로 북신문을 복원했다. 북신문 아래는 6차로로 뚫린 터널이 생겨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창경궁과 종묘 사이는 녹지로 연결됐다. 궁궐담장 주변으로 동궐과 종묘의 주된 수종인...
현대차그룹 22~26일 세계경제포럼(WEF) 참가지영조 사장 "모빌리티 서비스 책임 다해야 해”교통 분석ㆍ플랫폼 구현 등 산업계 역할 제시
지영조 현대차그룹 이노베이션 담당 사장이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나서 모빌리티 사업자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지난 22일부터 26일(현지시간)까지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
우담바라는 불교에서 3000년에 한 번씩 피어나는 꽃으로 알려졌다. 대나무나 영력이 강한 곳에서 피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우담바라’로 추정되는 대부분이 풀잠자리 알이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단양 문수사는 삼국시대에 창건됐으며 조선 영조 때 암행어사로 이름을 떨친 박문수가 이곳에서 공부한 뒤 과거시험에 급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책은 오래 전에 완성되었지만, 100여 년 뒤인 영조 때 세상에 알려져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후 그의 주장과 사상은 이익(李瀷)과 안정복(安鼎福), 정약용(丁若鏞) 등에게 이어져 실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으로 발전했다. 이 때문에 그를 ‘실학의 시조’ 또는 ‘실학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는 음력으로 오늘 태어났다. 1622~1673.
☆ 고사성어 / 백수북면(白首北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