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임 금감원장 유력 후보로 이상복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원승연 명지대학교 경영학과 교수가 꼽힌다. 당초 손상호 전 한국금융연구원장, 정석우 고려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도 함께 후보로 거론됐지만 최근에 이 교수와 원 교수로 압축되는 분위기다.
이 교수는 변호사 출신(사법시험 38회)으로 2013~2015년 금감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
‘서강학파의 대부’ 고(故) 남덕우 전 총리를 따라다닌 수식어 중 하나였다.
서강학파란 1960년대 미국에서 신고전주의 경제학을 배운 뒤 귀국해 서강대 교수로 활동했던 경제학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대한민국이 높은 경제성장률을 구가하던 시기 실제 경제관료 등으로 발탁되거나 경제정책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며 활발한 활동을 했다.
서강학파의 이론은...
◇ ‘한강의 기적’ 손수 일궈낸 서강학파 대부 = 남 전 총리는 자본시장뿐만 아니라 한국의 경제발전사 전체에서도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다. 1924년 경기 광주에서 태어난 남 전 총리는 1945년 국민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경제학 석사,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거친 뒤 1974∼1978년...
수출 100억 달러와 부가가치세 도입, 증권시장 개혁, 8·3 긴급조치 등도 그의 뚝심 없이는 불가능했다.
개발 경제를 주도한 그지만 그는 철저한 시장주의자였다. 그는 “경제 발전에 시동이 걸리면 정부 역할을 시장경제의 자율 기능으로 넘겨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는 서강학파의 좌장이기도 하다.
3공 시절인 1960년대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서강학파’의 대부로 이름을 날렸고 1969년 박 전 대통령에 의해 발탁돼 재무부 장관으로 공직에 첫발을 디뎠다.
학자의 길을 걷던 고인이 재무부 장관을 맡게 된 것은 박 전 대통령과의 특별한 인연 때문이었다.
박 전 대통령을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평가단 회의에서 소신 발언을 하던 고인을...
'서강학파의 대부'로 꼽히는 남덕우 전 국무총리가 18일 오후 9시55분 숙환으로 별세하면서 '서강학파'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대통령 성향에 맞는 '서강학파' 인사가 오를 것이란 관측이 대두되는 등 이미 한차례 국내 정계는 서강학파에 대해 집중 조명이 이뤄지기도 했다.
서강학파는 1970년대 한국의 경제 발전을 이끌었던...
18일 별세한 남덕우(89) 전 국무총리는 ‘한강기적의 주역’ ‘경제계 1세대 원로’ ‘서강학파의 대부’ 등 다양한 수식어를 달고 있다.
1960년대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할 당시 ‘서강학파’의 대부로 이름을 알렸으며 1969년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눈에 띄어 재무장관으로 발탁되며 공직에 나섰다.
남 전 총리가 서강대 교수 시절 출간한 ‘가격론’을...
특히 고인은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박 전 대통령의 경제개발 정책을 주도한 ‘서강학파’의 시초이자 대부로 꼽힌다.
남 전 총리는 전두환 전 대통령 때인 1980∼1982년 제14대 국무총리를 지낸 뒤 1983년부터 1991년까지 18∼20대 한국무역협회장으로 재직했다. 서울 삼성동 한국종합무역센터, 코엑스 전시장 등 무역인프라 구축을 총괄하며 무역 입국 초석을...
우리금융 전·현직 인사인 이종휘 신용회복위원회 위원장과 이순우 우리은행장 간의 2파전이 예상되는 가운데 친박계로 분류되는 서강학파 출신인 이덕훈 대표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학계 전문가그룹에 속한 인연으로 다크호스로 떠올랐던 조동성 서울대 교수는 7일 회장후보 신청을 철회했다.
우리금융지주는 6일 오후 5시에 마감한 회장 후보 접수에...
일각에선 KDB금융 회장에 홍기택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가 내정됨에 따라 서강대 출신인 '서강학파'이자 국가미래연구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출신 인사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김광두 원장은 현재 국가미래연구원을 이끌고 있는 데다 서강학파 출신으로 한때 경제부총리 후보에도 오른 만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서강바른금융인포럼 소속 멤버인 민유성 티스톤...
홍 위원은 서강학파의 대표적인 3세대다. 서강학파는 한국 경제계에서 가장 먼저 하나의 학파로 자리매김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부터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쳐왔다. 그러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정책 일선에서 물러났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서강학파를 중용하면서 다시 무대에 올라섰다. 서강학파는 박 당선인의 정책인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그러나 홍 위원이 ‘서강학파’인 것을 고려하면 그 이전부터 박 당선인에게 직·간접적으로 정책 조언을 해왔다는 것이 주변 동료들의 전언이다. 홍 위원은 고건 전 총리가 지난 2007년 대선 출마를 고려했을 때에도 경제 부문 자문 역할을 했다.
그 동안 경제·금융 정책 조력자 역할을 했던 홍 위원은 인수위를 통해 전면으로 등장했다. 이를 계기로 홍 위원이 박근혜...
박 당선인의 후견인이자 멘토로서, ‘서강학파 1세대’로 불리는 남덕우 전 국무총리의 소개로 박 당선인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김 원장은 당시 박 당선인의 핵심 공약인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바로 세운다) 공약을 주도했다. ‘원칙 있는 자본주의’라는 경제 기조를 갖고 공정경제를 강조하는 틀을 만든 것도 김 원장이다....
김 전 위원은 서강학파 출신이지만 그 행보는 특이하다. 분배에 있어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서강학파와 달리 그는 ‘국가가 적정한 소득 분배를 유지하고, 경제민주화를 위해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의 헌법 119조 2항,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을 입안한 당사자다.
박정희 정권 당시에는 경제사회개발 5개년 계획 입안에 참여해 의료보험제도를 최초로...
‘박정희 경제개발’ 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서강학파’나‘ ‘DJ 노믹스’를 만든 ‘중경회’ 같은 것이 모두 대학교수들로 이루어진 브레인 집단이다. 이들은 상아탑과 정치권을 오고 가면서 한 시대를 이끌어 갈 경제정책을 만들어냈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본격 등장한 정치교수 = 폴리페서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노무현 정부 때다. 노무현 정부 들어...
16일 서강대 시장경제연구소는 교내 동문회관에서 1970∼80년대 우리 정부의 경제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던 이른바 `서강학파' 의 학자들을 초청해 경제위기 극복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남주하 서강대 교수는 이날 토론회에서 "현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으로 확장적인 통화.재정정책을 세우고 장기적으로는 물가안정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