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영수 여사는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이 열린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북한 공작원 문세광이 쏜 흉탄에 맞아 사망한 뒤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육영수 여사 기념사업회는 매년 8월 15일 서울현충원에서 추모식을 열고 있다.
한편, 박 전 대통령이 어머니 생가를 찾은 것은 2012년 4·11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비상대책위원장...
해밀톤호텔은 개장 1년째 광복절에 문세광의 박정희 대통령 암살 기도 사건으로 일본인 관광객이 급격히 줄며 어려움을 겪었지만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의 영향으로 방한 외국인이 늘어나고 1997년에는 이태원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관광특구로 지정되면서 전성기를 맞게 된다. 현재는 고 이 회장의 아들인 이상용 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
이태원...
괴한은 권총을 쏘며 연단으로 돌진하다 저지당했지만 총탄 한 발이 육영수 여사의 우측 머리에 맞았다.
육영수 여사는 두 차례의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서거했다. 범인인 23살의 재일교포 문세광은 같은 해 12월 교수형에 처해졌다. 당시 정부는 김일성의 지시에 의한 조총련의 조직적 범행이라고 발표해 한일 관계는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현직 대통령이 재임 기간에 부인이나 직계 가족이 상을 치른 사례는 매우 드물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인 육영수 여사는 1974년 8월 15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북한 공작원 문세광이 쏜 총탄에 맞고 별세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0년 2월 평소 어머니처럼 생각하며 모시던 큰 누님 귀선 씨를 여읜 바 있다.
일본에서 벌어진 김대중 납치사건으로 한·일 관계가 격랑에 휩쓸린 지 1년여 지난 1974년 8월 15일, 제29주년 광복절 행사에서 박정희 대통령(1917.11.14~1979.10.26)이 경축사를 낭독하는 순간 재일교포 2세 문세광이 대통령을 저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대통령은 연설대 뒤로 피했지만 귀빈석에 있던 영부인 육영수(1925.11.29~1974.8.15) 여사는 머리에 총탄을 맞고...
◇최순실 사건의 기원은 문세광 사건
일본 인터넷 신문 국제부분에서 28일 오전 11시 현재 가장 많이 읽힌 기사 1위는 최순실 사건이다. 일본인들이 이 사건에 대해 관심이 매우 높다는 것을 여실히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 뉴스는 최순실 사건의 시작을 ‘문세광 사건’으로 봤다. 조총련계 재일동포 문세광이 한국으로 입국해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기도했으나 실수로...
재일동포 문세광으로부터 저격을 당해 숨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의 국장일 1974년 8월19일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국장일 1979년 11월3일도 임시공휴일이었다.
민주화운동의 산물로 탄생한 1987년 10월27일 헌법 개정 국민투표일도 임시공휴일로 지정됐다.
1988년 9월17일 서울올림픽 개막일도 임시공휴일로 지정돼 일선 학교와 관공서가 하루...
15 경축식장에서 육영수 여사를 저격해 살해한 재일동포 문세광 사형 집행
서울 을지로1가 새서울 지하상가 오픈
섬진강 댐 준공
노기남 신부, 한국 최초로 주교에 임명됨
◇ 나라 밖 역사
미국 여배우 브리트니 머피 사망
마카오, 명조 말이후 442년 만에 중국에 반환
미국 천문학자 칼 에드워드 세이건, 골수암으로 향년 62세로 사망. 그는 1980년의...
총 공사비 237억원을 들여 총연장 84.5km 2차선으로 준공된 구마고속도로의 개통으로 대구-마산간 주행시간이 3시간20분에서 1시간20분으로 2시간 가량 대폭 단축됐다
육영수 여사 저격범 문세광 사형 확정
한국-일본 민간어업협정 체결
1961년 5.16 군사쿠데타에 의한 군정 하에서 대통령 중심제, 단원제를 골자로 한 제5차 개헌안 국민투표. 78.78%로 가결돼...
1974년 8월 15일 문세광의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을 계기로 경호실장 박종규가 인책되자 그 후임으로 차지철은 경호실장직에 올랐다. 그가 경호실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대통령 비서실과 또 다른 권력 핵심 기관 중앙정보부의 관계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차지철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있다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탄에 맞고...
경남 거제 출신인 그는 1974년 8월 공안 검사로 박 대통령의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를 피격한 문세광의 자백을 받아내기도 했다. 이후 유신헌법 초안 작성 과정에 참여하고 1988년 검찰총장, 1991년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
법무부 장관 재임 때인 1992년에는 정부 기관장들이 14대 대선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기자고 모의한 것이 도청에 의해 드러나...
◇ 부모 잃은 삶… “산송장처럼 지냈다” = 박 당선인은 22살이던 1974년, 8·15 경축행사에서 어머니가 문세광에게 저격당해 숨지자 프랑스 유학 중 급거 귀국했다. 어머니의 죽음은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처럼 찬바람이 불었다… 한동안 산송장처럼 지냈다”고 할 만큼 생의 큰 고통이었다.
하지만 “소탈한 생활, 한 인간으로서의 나의 꿈, 이 모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