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명언
“저 따지기를 좋아하는 작은 지혜들은 한갓 물건만 볼 뿐 그 이치를 생각 못 한다.”
조선 성리학자로 기호사림파(畿湖士林派)의 중심인물.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우면서 특히 ‘소학(小學)’에 심취해 ‘소학동자’라 자칭했다. 1498년 무오사화(戊午士禍)가 일어나 평안도 희천에 유배된 그는 그곳에서...
정몽주와 길재의 학통을 계승해 김굉필-조광조로 이어지는 조선시대 정통도학의 중추 역할을 한 사람의 아호는 역시 평범하지 않다. 예기 학기(學記)에 이런 말이 있다. “오늘날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그 점필(佔畢)을 되풀이하고 그 물음을 많이 해서 말이 수다하다.”[今之敎者 呻其佔畢 多其訊 言及于數] 그래서 “사람을 가르치되 그 재능을 다하게 하지 못한다.”...
열일곱 살 때 무오사화로 평안도 희천 땅에 유배된 김굉필의 문하에서 공부한 그는 34세에 사간원(司諫院) 정언(正言)에 임명됐을 때 상소를 올렸다. 이 상소에서 언로(言路)를 막은 대사헌(大司憲)과 대사간(大司諫)을 파직하도록 요청함으로써 도학이념에 따른 개혁정치를 펼치기 시작했다.그는 사림파의 경제적 토대인 향촌사회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주자가...
그래서 ‘소학’에서 기본기를 닦고 사서 등 더 높은 공부로 나아가는 ‘하학상달’식 공부를 한다면 누구나 인생의 승자가 될 수 있다고 한훤당 김굉필 선생이 강조하는 것이다. 한훤당은 “글공부를 하여도 천기를 알지 못하였더니 소학에서 어제까지의 잘못을 깨달았구나. 이로부터 정성껏 자식 도리 다하련다”라고 시를 쓰기도 했다.
도쓰카 다카마사가 쓴 ‘세계...
김 원장은 조선 중기의 대학자인 한훤당(寒喧堂) 김굉필(金宏弼ㆍ1454 ~ 1504) 선생의 둘째 김언상의 후손이라고 한다.
김굉필 선생은 기본공부, 인성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소학을 공부의 시작이자 으뜸이라고 주장한다. 선생은 “소학 공부는 모든 학문의 입문이요, 기초이며, 출발로 인간 교육에 있어서 절대적인 원리가 된다”며 소학 공부에 매진했던 것이다....